타인은 지옥이다 - 살인자의 꿈을 꾸는가? 살인자가 꿈을 꾸는가?
다른 고시원의 풍경을 보여준다. 여자친구 지은은 말한다.
"다른 사람들도 고시원에 살아!"
떠밀리고 떠밀려 고시원까지 흘러든 사람들이다. 정상적인 방을 구할 수 없으니 그나마 싼 고시원이라도 구해 들어온 이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싼 곳이 바로 에덴 고시원이다.
내가 이런 곳에 있어도 될까?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인가? 그래서 탈출이라 말한다. 이곳을 벗어나 더 높은 저 안쪽으로 들어가거나, 아예 영양 저 밖으로 튕겨나가 살거나. 그래도 이곳보다는 낫지 않을까. 알량한 희망에 기대 허우적거리며 그런 자신을 비웃으면서도 끝내 먼저 놓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서글픔일 것이다.
하필 작가를 지망하기 때문에. 상상력이 너무 풍부한 탓에.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 그래서 예전 달동네를 보면 두 가지 사람들이 있었다. 쓸데없이 들떠서 분주하거나, 아니면 체념한 듯 아주 조용하거나. 그곳의 분주함은 바깥세상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허구헌날 술에 취해서 남 말 하고 머리끄댕이 잡아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바로 이곳이 지옥이구나. 머리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사실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말이 얼마나 기만적이며 잔혹한 폭력인 것인가.
지은이 바로 보고 있었을 것이다. 서울에서의 생활도 낯설고, 직장에서의 일상들 역시 고단하기만 하다. 바짝 날이 선 상태에서 평범한 사실들마저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을 터다. 지은 역시 직장인이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주변에 치이고 시달리며 고통을 겪고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데 먼저 우는 소리를 하면 뭘 어쩌란 것인가. 잠시라도 만나서 숨을 돌리고 싶은데 그 위에 자기의 짐까지 떠안기려 한다. 세상에 가장 곤란한 사람이 자기만 가장 불쌍하다 여기는 사람이다. 그만큼 윤종우는 이미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도망치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 그러나 어디에도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미쳐가는 것일 게다. 이대로 여기에서 말라죽는 것 말고 다른 아무 희망도 가능성도 보이지 않기에. 차라리 모든 것을 가르고 찢고 부숴 버린다. 세상에서 아예 지워 버린다. 가장 극단의 행동이 자기 자신에 대한 파괴일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살인은 또다른 자기파괴다. 윤종우의 망상처럼. 무엇이 망상이고 무엇이 실제일까? 윤종우가 살인자의 꿈을 꾸는가? 살인자가 윤종우의 꿈을 꾸는가?
드라마를 볼 때마다 아주 오래던 썩은 곰팡내 가득하던 기억을 떠올리고 만다. 악취 가득한 골목과 찌들어 늘어져 버린 사람들. 왜 사는지도 모르고 그저 아무일없이 매일매일을 넘기던 이들이 있었다.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고시원이란 이름이 그를 대신하게 되었다. 잔혹한 것은 그런 현실 그 자체가 아닐까?
임시완은 잘생겼는데 어쩐지 불쌍해 보이고, 이동원은 잘생겼는데도 뭔가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적절한 캐스팅이며 매칭이다. 그러고보니 그동안 두 사람이 맡은 배역들도 대부분 그랬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이미지의 고정이라기에는 변주 또한 계속 이루어진다. 이상한 놈들 둘이 만났다. 잘생겼다는 느낌도 없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