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 - 질서가 사라진 아수라장, 적나라한 욕망의 군상들

까칠부 2019. 10. 3. 06:57

오로지 사장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었다. 아무의 말도 듣지 않았었다. 그냥 사장이 시키는대로 따르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었다. 스스로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그 결과에 대한 보람도 없었다. 사장이 알아서 다 잘하겠거니.


그래서 사장이 아직 전권을 휘두르는 동안에는 큰 문제 없이 돌아가는 듯 보이던 회사가 사장이 사라지는 순간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이제껏 억눌려 있던 욕망과 감정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미워하고 원망하며 자기는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들에게 직장이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사실 나 역시 그런 수많은 직장인 가운데 하나라 그냥 나 혼자만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에 크게 동의하는 편이다. 더 충성한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더 열심히 한다고 돌아오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안전하게 아무일없이 큰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느 순간 만만한 사장 하나가 들어서더니 이것저것 자기들이 책임져야 할 일들이 늘어난다. 가장 쉬운 것은 도망치는 것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회사 안에서 자신을 증명해야만 한다.


어차피 서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정확히 관심이 없었다. 나만 살면 되니까. 나 혼자 살아남는 것으로 충분히 버거웠으니까. 이름으로도 거의 불린 적 없는 그깟 미쓰리따위. 정리해고한다고 사람이 잘려나가는데도 안타까워하며 붙잡는 사람조차 두 사람 밖에 없었다. 사실 가장 절망적인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정리해고 막겠다고 어차피 대상도 아닌 사람들까지 나서서 파업할 수 있었던 기업들은 얼마나 끈끈하게 뭉쳐 있었는가. 그럼에도 한 번 흩어지면 또 다시 뭉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람인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만 할까? 누구도 아닌 자신들이 먼저 찾고 고민해야 할 것들이다. 아직 자각하지 못한다. 그저 다른 누군가만을 바라보며. 누군가 자신들에 손내밀어주기만 바라며. 사장을 아직 사장이라 부르는 직원조차 아직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그나저나 회사 사람들은 멍청한 것일까? 순진한 것일까? 대기업까지 다녔다면서 횔령에 쓰인 통장의 명의가 실제 자기 것이라 믿을 수 있는 머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결국은 불신이다. 그보다는 불안이고 공포다. 생각하기를 멈춘 것이다. 너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서. 첫 번 째 고비다. 그리고 시련이다. 위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