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적사 건담 - 건담이 짐보다 우월한 기체인 이유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공업력은 그야말로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대부분 고철과 공작기계들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미국과 전쟁을 벌이게 되었으니 이후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기술에 그나마 전쟁전에 수입한 공작기계들마저 고장나거나 부실해지면서 일본은 설계한대로 생산할 능력조차 가지지 못하게 된다. 설계나 시제품 단계에서는 그래도 쓸만하던 것들조차 실제 양산에 들어가면 결함투성이로 돌변하는 마법을 부리게 된 것이다. 물론 설계능력 자체도 일본은 한참 열강에 미치지 못했었다.
원래 무기 뿐만 아니라 어떤 제품을 생산하든 설계나 시제품 단계에서는 아직 미완성 상태일 수밖에 없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결함이 숨어있을 수도 있고, 이후 테스트나 실전을 통해 개량될 부분들까지 감안하면 역시나 아쉽고 부족한 것들 투성이일 것이다. 더구나 보다 먼 미래를 보고 생산이 개시될 시점의 기술발전까지 고려했다면 그때문에 불완전한 상태로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경우마저 없지 않다. 결국 시제품을 통해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고, 더구나 양산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헤아릴 수 없이 실전을 거치면서 개선과 개량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제성능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설계의 구현을 위해 시험적으로 제작한 시제품이 실제 양산된 제품보다 더 우수하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건담 시리즈를 보면서 항상 가지고 있던 의문이었다. 건담은 말 그대로 이후 연방의 양산형 모빌슈츠인 짐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제작된 시험기였었다. 건담과 함께 생산이 아닌 제작된 건캐논과 건탱크는 그런 건담의 성격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과연 연방군은 지온군의 모빌슈츠에 대항하기 위해 어떤 모빌슈츠를 개발해야 하고 실제 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이것저것 가능성을 시험하던 끝에 건탱크도 만들어지고, 건캐논도 나오다가 건담이라는 하나의 완성품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건캐논의 데이터는 이후 건담을 베이스로 한 짐의 설계에도 반영되어 짐캐논이라는 이름으로 양산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렇게 고성능의 모빌슈츠를 실제 설계하고 시제품까지 만들었음에도 오히려 다운그레이드된 짐을 양산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분명 건담의 성능이 짐에 비해서도 훨씬 압도적인데 더 개량해서 더 고성능의 모빌슈츠를 양산하지 않고 이미 있는 것들까지 뺀 열화판으로 생산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냥 일본이라서 그렇다. 결국 내가 내리게 된 결론이다. 2차세계대전의 경험은 마치 유전처럼 일본인들의 사고에 깊숙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껏 설계를 해도 설계대로 생산되지 않았던 경험과, 시제품까지 그럴듯하게 만들었어도 실전배치가 되어서는 전혀 기대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들일 것이다. 공업능력이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껏 독일로부터 항공기용 고성능 액랭식 엔진의 설계돌을 입수하고서도 정작 고성능을 발휘하던 히엔의 엔진으로 그동안 자신들이 만들어 오던 공랭식 엔진을 바꿔 달아야 했던 것이었다. 물론 오식전투기 자체도 그렇게 못쓸 물건은 아니었지만 분명 기술적으로 다운그레이드된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설계가 훌륭해도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현실의 역량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건담을 만들어 놓고도 여러 한계를 고려해서 짐이라는 훨씬 성능이 떨어지는 열화품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다시 건담 이상의 성능을 가지는 또다른 시제품을 병행해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당시 독일과 일본과 같은 추축국의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일단 양산을 시작했으면 짐의 개량에 모든 노력과 자원을 쏟아부어야 했음에도 그 상당부분을 돌려 양산도 못할 시제품에 낭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연방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지온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모두 군사적으로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을 경쟁하듯 하고 있었다. 역시나 작품을 만든 이들이 바로 그런 경험을 가진 일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도 티거를 만들고 티거보다 값싼 염가판 전차를 따로 만들지 않았었다. 티거는 티거대로 개량해서 더욱 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무기로 만들어 쓰고 있었다. 판터가 주력전차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그러타고 티거의 열화판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막 양산된 티거와 판터는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데뷔전에서 치욕을 겪기도 했었다. 하지만 일본이었으니까. 그렇게 대중문화에는 역사적인 무의식까지 녹아든다. 그래서 짐은 건담보다 성능에서 열등한 것이다. 열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건담의 영향은 이후로도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 심지어 우리나라의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나중에는 아예 양산도 하기 전 기술을 실증하기 위한 기쳬로써 그 어떤 양산품보다 우월한 압도적인 성능의 기체마저 등장하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슈퍼로봇의 영역이다. 더이상 양산품으로 싸우는 리얼로봇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런 점에서 가장 리얼로봇에 가까운 작품이라면 보톰즈와 다그람 정도일 텐데. 패트레이버도 그런 과정들을 잘 보여준다. 역시 현대가 배경이라서일까. 애니메이션을 통해 역사를 배운다. 별 것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