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을 잡아라 - 경찰을 부정하기에 경찰이어야 하는
결국 경찰이라 해도 대부분 우리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생활인들이라는 것이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 만큼 월급을 받아서 자기의 일상을 누리고 가족이 있으면 가족까지 부양해야 한다. 경찰이라고 대단한 무언가를 기대하기에는 괜한 사명감을 앞세우다가 사고라도 치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곤란해질 수 있는 것이다. 유령이야 혼자 사니 그래도 상관없겠지만 어머니 요양병원비도 밀려 있는 고지석 입장에서 감봉은 너무나 뼈아프다.
다만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요양보험도 있고, 치매국가책임제로 건강보험에서도 많은 부분 지원을 해 주어 치매환자의 요양비용이나 간병비용이 그렇게까지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닐 것이란 점이다. 하긴 내가 아는 요양병원과는 시설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규모도 크고, 간호사도 많은 것 같고, 보아하니 독실인 듯하다. 어머니 위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렇게 사채까지 써가면서 그렇게 무리하게 모셔야만 했을까 의문을 가지게 된다. 대부분 서민들은 그보다 더 작고 허술하고 북적한 시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직접 찾아가 도왔었던 병원들이 대부분 그랬었다. 한국드라마에서 서민은 서민이 아닌 것이 오래되었기는 하지만.
아무튼 경찰력의 행사를 제한하는 수많은 규정들이 경찰을 옭죄고, 다시 경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민을 옭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선배들을 탓해야 한다. 그동안 경찰이 수사를 핑계로 범인을 잡는답시고 얼마나 막장 짓거리를 저질러 왔었는지. 경찰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들으면 한 편으로 동정하면서도 한 편으로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돌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도 차라리 불이익을 감수해가며 오로지 피해자의, 시민의 안전만을 위해 날뛰는 경찰이 있다. 경찰이라기보다는 아직 피해자의 가족이다.
경찰에 몸담고 있지만 정작 경찰을 불신하고 있다. 어쩌면 경찰을 혐오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 경찰로서 규정을 무시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규정들 때문에 시민인 자신이 경찰로부터 외면당했다. 정작 경찰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억울함과 고통 속에 방치되어야 했었다. 그래서 자기가 해결하려 한다. 경찰의 도움 없이, 그래서 경찰이라는 신분을 손에 넣어,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자신의 문제를 풀고자 한다. 열쇠까지 훔쳐가며 혼자서 스크린도어 너머 터널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은 그래서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한 절망마저 느끼게 한다. 경찰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지도 사실을 말하지도 못한다.
진실은 분명 터널 안에 있다. 그러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모두가 아는 누군가일까. 이미 드라마에 등장한 누군가의 얼굴인 것일까. 유령의 동생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고, 이제는 유령의 사진을 대신 붙여 놓는다. 고지석의 일상은 여전히 고단하고, 유령은 미묘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수사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지하철 경찰로서 - 아니 지하철을 넘어 경찰로서 해결해야 할 비일상의 일상은 빠뜨리지 않는다. 사채업자에 고통받는 소외된 이들의 모습이 역시나 사채까지 써야 하는 고지석의 처지와 겹쳐 보인다.
그러고보면 한 편으로 묘하게 닮았는지 모른다. 여러가지로 두 사람 모두 경찰을 부정하고 있다. 마치 거울처럼 서로가 부정하는 경찰의 부분들이 대칭을 이룬다. 생활인으로서 지켜야 하는 수많은 규정과 제약들과 그럼에도 경찰이기에 지워지는 무거운 책임과 사명들. 유령은 과연 경찰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고지석은 과연 경찰로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그 전에 과연 경찰 월급으로 고지석은 언제까지 어머니를 그렇게 시설 좋은 요양병원에 모실 수 있을 것인가. 역시 생활인으로서의 의문이다. 사소한 곁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