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거짓말 - 마침내 드러난 참혹한 진실, 그리고 남은 이들을 위해
그래도 반은 맞췄다. 단지 그 협력자가 김서희가 아닌 진영민이라는 점이 달랐을 뿐. 사고로 의식불명이 아니라 뇌종양으로 시한부였었다. 괜한 말이 아니라 지난 글 보면 분명 말했을 것이다. 이것은 정상훈 주변의 누군가가 정상훈의 희생을 담보로 진실을 알리기 위해 꾸민 자작극이었을 것이라고. 다만 너무 교묘하게 치밀하게 무엇보다 처절하게 상황을 꾸민 탓에 너무 멀리 돌아와 버렸다.
아무것도 잃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영문이든, 진영민이든, 인동구든. 역시나 전에도 말했지만 대기업치고 그 정도 했으면 나쁘다 문제있다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환자가 발생한 것을 인지하고 바로 치료를 지원하는 등 피해자들을 위한 노력은 하고 있었다. 심지어 신재생사업마저 계속해서 피해자가 생겨나니 강제로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것이었다. 물론 시멘트 공장 지하에 묻힌 마지막 증거들을 회수하는 목적도 포함된다. 여기에 조금만 더 일찍 진실을 밝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하는 노력들이 더해졌다면. 차라리 그동안의 치료비지원에 대해 진상을 파악하는 동안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포장하는 것도 가능했었다. 하지만 절대 그 사과만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들을 잃었다. 유일하게 마음을 주었던 아들마저 그렇게 참혹한 모습으로 잃고 말았다. 아마 김승철이나 김서희나 인동구, 혹은 진영민 따위는 정영문의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돈이었음에도 김승철을 죽이라 지시했었고, 사랑하는 아들의 아내인 김서희 역시 자동차 사고로 위장하라 지시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자신의 모든 것을 지키려 했었건만 정작 그로 인해 가장 소중한 아들까지 잃고 말았다. 그래도 드라마라서 다행이었을까. 현실이라면 더 참혹한 결말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무엇보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아마 진영민은 처음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을 것이다. 죽음이 아니더라도 이 모든 일들이 끝났을 때 그 역시 모든 것을 마무리지으려 했었을 것이다. 그런 절박함이다. 그런 간절함이다. 그런 필사적인 의지가 정영문이라는 거대한 힘과 맞서며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와 버렸다. 차라리 자기의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차라리 친구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거두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란 약자의 절망이란 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가. 그래서 어떤 이들은 스스로 몸에 휘발유를 붓고, 어떤 이들은 신체의 일부를 잘라낸다. 그런 참혹함마저 그저 언론에 단신으로 처리되면 그 의도마저 너무 허무해진다.
그래도 정상훈이었으니까. 그래도 재벌집 아들에 유력정치인의 사위였으니까. 현직 국회의원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죽음이 의미가 있다. 그 희생이 가치가 있다. 어디 빌딩에서 화장실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몸에 불을 질러봐야 언론은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다. 언론이 보도해도 세상은 침묵한다. 이 또한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정치인 김서희가 지켜야 하는 가치이며 추구해야 할 사명일 것이다. 물론 현실에도 그런 정치인들이 적지 않기는 하다. 정치인 모두가 쓰레기는 아니다. 실제 드라마에서도 김서희를 가장 적극적으로 돕는 것은 또다른 야당의 국회의원이었다. 쓰레기같은 놈들이 너무 높은 자리에 있을 뿐.
무엇보다 경찰이 주인공이란 점이 마음에 든다. 수사는 이렇게 발로 뛰는 것이다. 취조실에서 관계자들 불러놓고 협박이나 일삼는 게 아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불러서 몇 시간이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사돈의 팔촌까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으면 죄다 불러서 별건으로 협박하고 압박해서 필요한 진술을 받아내면 그게 증거다. 수사는 발로 뛰는 것이다. 직접 현장을 뛰어 증거를 찾는 것이다. 현실의 검찰들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검사 한 명이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한 둘이 아니라서. 물론 20명 넘는 검사가 표창장 위조만 석 달 넘게 수사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너무 간절하게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정상훈을 보내기 위한 과정이었다. 아마 조태식도 김서희와 같이 그런 의식을 치르고 있었을 것이다. 간절하게 찾는 과정에서 조금씩 과거를 기억속에 묻기 위한 준비를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최선을 다하는 시간속에 조금씩 기억속에 묻어 간다. 그래서 결국 닿은 진심이 더욱 간절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억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마무리까지 완벽하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