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문득 1990년대 양준일과 DJ DOC를 떠올리며

까칠부 2019. 12. 13. 13:26

1990년대는 도전의 시대였다. 한 편으로 반동의 시대이기도 했다. DJ DOC의 시대였으면서 한 편으로 시대유감의 시대이기도 했었다. 1980년대 이후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세대의 도전은 거셌지만 한 편으으로 기성세대의 반격 역시 완고했다. 그래서 김태원과 김도균이 나란히 마약사범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것이었다.


유현상은 음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김태원을 필두로 당시 록씬의 많은 음악인들이 약물로 잡혀들어가자 바로 체포되어 고문까지 당해야 했었다. 너같은 무리가 약물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니 불어라.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러고보면 대마관리법부터가 원래 박정희가 신중현 잡아죽이겠다고 만든 법안이기도 했었다. 이 새끼들은 세상의 질서를 해치는 반사회적 종자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청년들의 도전은 거셌다. 들국화가 해체되고, 김태원이 잡혀들어가고, 신해철이 전과자가 되는 와중에도 청년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주장하고 있었다. 아마 양준일도 그 가운데 있었던 모양이다. 기억도 희미한 가운데 '아가씨'란 노래를 들으니 비로소 조금 기억이 나는 것 같다. 말할 때마다 영어단어를 섞어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퍼포먼스가 너무 자유분방한 것도 불쾌하다. 사실 DJ DOC가 허구헌날 싸움만 하고 돌아다닌 이유 가운데 이런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저 새끼들은 뭔가 모르게 재수가 없다. 욕설주의. 하지만 때로 욕설이 보다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솔직히 지금 기준으로 - 그보다는 당시 정서를 기억하는 입장에서 양준일이 그렇게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춤을 퍼포먼스로 이해한다. 아트라기보다는 아크로바틱이다. 아직 멜로디가 더 중요하던 시절 멜로디가 뽕끼 하나 없이 착 감기지 않았고, 춤이라는 건 곡예 비스무리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이 무대에서 노는 게 더 중요했다. 김완선과 함께 무대에 선 것을 본 순간 바로 느낀 부분이다. 김완선은 그런 와중에도 우아할 정도로 절제되었다. 그게 그 시대 무대의 의미고 가치였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음악인들이 부딪히고 또 부딪혀며 부숴 온 벽이란 것이다. 그렇게 분방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자유로워서는 안된다. 음악이란 절제된 것이어야 한다. 무대란 절제된 공간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한계를 넘어서고자 많은 음악인들이 도전했고 또 좌절해야만 했었다. DJ DOC를 지금도 사랑하는 이유다. 기획사와 싸우고, 언론과 싸우고, 세상과 싸우고, 심지어 팬들과도 싸운다. 그럼에도 자기들은 이렇게 살겠다. 이런 음악을 하겠다. 오로지 음악과 무대로서만 자신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차라리 록보다 힙합이 지금 이 시대에는 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신대철마저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 지독한 마이웨이였을 것이다.


너같은 놈은 꼴보기도 싫다. 이해해야 하는 것은 길가다 담배피는 여자 보이면 바로 따귀부터 올려붙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여성의 흡연이 급격하게 늘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그래서 트로트가 가요차트 1위에 오르기도 하고, 성인가요가 청년들 사이에서 대세가 되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 이박사 같은 이레귤러가 나타나 세상을 뒤집어 엎기도 했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황금기는 1990년대인 것이다.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성과 역동성이 지금에 이르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중심을 만들고 있었다.


양준일이 누구인가 싶었다. 거의 기억에도 희미하다. 아니 그보다는 없다. 아가씨 들으면서 겨우 기억났다. 그보다는 그를 거부했던 시대를 떠올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로부터 대한민국 대중문화는  DJ DOC라는 이레귤러를 메인스트림으로 올려놓고 있었다. 양준일을 보면서 DJ DOC가 생각나는 이유다. 지금이라면 어림도 없다. 허구헌날 싸움이나 해대는 대중음악인이란. 그런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그저 한 남편으로 아버지로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목표다.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순수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무모한 도전도 할 수 있었던 것일 테지. 히트하는 방법이야 누구나 안다.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다. 다만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는 오로지 용기가 있는 자들만이 시도할 수 있다. 그런 시절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