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 야구단을 바꾸기 위한 싸움, 혁명이 아닌 개혁을 위해서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한창 일본 드라마에 빠져 있던 무렵 오히려 드라마를 통해서 어째서 일본 사회가 저토록 보수적이고 정체되어 있는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조직을 바꿔보겠다고 누군가가 나타나면 내부의 구성원들은 단단히 뭉쳐서 그에 저항한다. 그동안의 비효율이나 모순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필요에는 공감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기존의 구성원들을 다치게 하는 방법이어서는 안된다. 하는 일 없이 그저 돈과 시간이나 축내던 인사들이 몇몇 계기를 통해 자신의 필요성을 입증하고 그로 인해 오히려 개혁을 위해 나타난 외부인마저 내부에 동화되고 만다. 아마 이런 것이 일본인들이 그토록 중요시 여기는 '와'의 정서일 것이다.
물론 고도성장기 일본의 발전을 이끈 것은 이같은 와의 정신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함께. 서로가 하나가 되어서. 너와 내가 따로 없고 따라서 개인과 집단 간의 구분도 없다. 한창 성장 중일 때야 오히려 사람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해서 문제일 테니 당연히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조금씩 성장과 발전이 정체되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조직과 구성원 개인의 문제가 조금씩 드러나게 된다.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오는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비효율과 모순들이 어느새 거대하게 자라나 모두의 앞을 막아서게 된다. 그래서 어떤 조직이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전면적인 자기반성과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아니면 자칫 말라 굳어버린 문제들이 조직의 숨통을 옭죄게 될 지도 모른다.
첫째 문제는 구단주인 모기업 총수의 무관심과 방치일 것이고, 둘째는 그런 틈을 노리고 구성원들이 저마다 자기 잇속을 챙기려 한 것이다. 성적도 인기도 바닥인 구단에서 유일한 스타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이용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팀을 만들려 했던 임동규의 시도 역시 그런 하나였었다. 오랜동안 반복되어 온 실망과 좌절이 어느새 모두와 내일이라는 단어를 잊고 자기와 오늘만을 위해 살게끔 만든다. 열정은 사치고 희망은 공상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자신을 자기만의 논리로 합리화시키려 한다. 더 첨예하게 더 정교하게 가다듬어진 논리는 차라리 정의라 할 만하다. 과연 그런 조직을 외부인인 신임단장이 바꿀 수 있을 것인가.
팀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임동규의 트레이드는 그 시작이었다.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팬들의 지지가 두터워도 가차없이 내보내야 한다. 물론 그냥 내보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최대한 활용해서 더 가치있는 다른 선수를 영입하는 수완도 보여준다. 팀에 필요하다면 존재감없는 무능한 감독도, 파벌싸움 끝에 아예 경기장에서 패싸움까지 벌인 코칭스태프도 그대로 내버려둔다. 그리고 이제 다시 프론트의 스카우터들에 메스를 가져다 댄다. 어째서 그동안 매년 꼴찌를 도맡아 하면서 신인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권을 가져왔음에도 쓸만한 신인이 하나도 없었던 것인가. 어느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저 타인과의 좋은 관계에만 안주해 있던 이세영마저 그에 합류하여 스카우트 팀장 고세혁의 뒤를 캔다. 자신들은 과연 그동안 최선을 다해오고 있었던 것일까.
최선을 다했는데도 성적이 나오지 않은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대단한 성적 같은 건 기대도 않고 딱 투자한 만큼의 결과만을 기대하는 경우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반드시 우승을 하고자 하면 그만큼 막대한 돈도 노력도 필요하기에 그냥 적당히 팀을 유지하는 정도에서 만족하는 프로스포츠팀들이 의외로 현실에는 많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엄격한 전제가 따라붙는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기에 좋은 유망주를 찾아내고 성장시켜 그를 통해 구단을 유지할 비용을 마련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런 약소 팀들이 강팀들을 위한 스타플레이어의 공급처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다만 성적이 다른 팀보다 특별하게 뛰어나지 않을 뿐 그 안에서 최선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마저도 아니라는 것이다. 선수라도 팔아서 운영비용을 댈 수 있다면 구단주 입장에서 팀을 해체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을 리 없다.
팀 성적도 바닥인데, 더구나 팀의 내일을 책임질 유망주차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최악인 성적을 거둔 당사자들의 나이마저 30대로 노쇠할대로 노쇠한 상황이다. 누구의 책임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에 대한 책임을 물려야 하는 것일까?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저 사이좋게 좋은 사람이 되어 끝내는 것은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질 것이다. 차라리 때로 모두를 위해 칼질하는 망나니가 필요할 때가 있다. 백승수는 그럴 수 있는 인물인가. 성적도 내부도 엉망인 드림즈를 다시 일으켜세울 인물일 것인가.
사실 야구보다는 세상 이야기이고 사람 이야기일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비효율과 모순이 내부에 누적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외부의 충격으로 허물어지고 만다. 그렇게 세계최강의 제국도, 최고의 이익을 누리던 기업들도 역사의 뒤안으로 하나둘 사라져 갔었다. 혁명이 아닌 개혁을 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차라리 혁명은 쉽다. 팀을 아예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면 하나하나 바꿔나가는 것보다야 몇 배 더 쉬울 수 있다.
설마 야구단 프론트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나올 줄이야. 그것도 그냥저냥 알콩달콩한 그저 야구단 프론트가 배경일 뿐인 사랑이야기가 아닌 살벌하기까지 한 현실의 이야기다. 다만 그래서 어느 정도 극적인 장치는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야구단 프론트의 역할을 극적으로 시청자가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꾸며 보여줄 것인가. 그런 점에서 시작은 아주 좋다. 개혁은 어렵다. 나라든 사회든 조직이든 구조든. 더 치열한 싸움이다.
겨우 이사를 마치고 드라마를 볼 여유가 생겼다. 일이 끊이지 않는다. 이사짐 싸는 동안에도, 이사짐 풀고 집안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물론 아직도 할 일은 많이 남았다. 이사는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