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토브리그 - 백승수의 수완가와 인간적인 양면성, 그리고 권경민의 분노

까칠부 2020. 1. 11. 13:31

어차피 자기는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탐욕은 차라리 분노로 바뀐다. 시기도 질투도 넘어 증오로 바뀌고 만다. 어째서 나는 할 수 없는데 너는 당당히 해내는 것인가. 나는 감히 욕심조차 내지 못하는 그것을 너는 어찌 그리도 자랑스레 내보이고 다니는 것인가.


리더란 것이다. 고용된 월급쟁이지만 구단의 경영과 운영을 실제 책임지는 책임자인 것이다. 자신을 고용한 고용주의 요구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관리자로서 자신의 책임 아래 있는 직원과 선수들의 정당한 요구 역시 당당히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중간관리자가 어려운 것이다. 권경민이 백승수에 대해 분노를 넘어 증오의 감정마저 품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실상 자기가 구단주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구단을 위해 삼촌인 회장에게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다.


아마 야구를 얼마나 좋아하고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경영자로서 자신의 책임 아래 있는 야구단인데 전혀 아무 관심도 없다면 오히려 거짓말이기 쉬울 것이다. 그렇다고 회장이 자기에게 그런 것처럼 아예 모든 것을 맡기고 책임까지 지워버리는 일은 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야구단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애착을 회장과의 관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억눌러야만 한다. 회장이 야구단에 대해 전혀 아무 관심도 없이 그저 거추장스럽게만 여기는 이상 그에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의 책임 아래 있는 야구단에 대한 애착과 그를 철저히 거부하고 부정해야만 하는 회장과의 관계 사이에서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선택 같은 건 없었다. 선택하는 순간 자신은 회장에게 버려진다. 지금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그 앞에 느닷없이 백승수란 인간이 나타난 것이다.


자기와 비슷한 부류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동안 자기가 단장으로 있던 팀들을 우승과 함께 해체시켜 온 전력들을 보면서 어쩌면 백승수 역시 자신과 같은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을까. 그저 위에서 시키는대로 팀을 우승시키고, 위에서 결정한대로 팀을 해체시키기까지 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백승수는 권경민이 생각한 이상으로 자신의 일에 대한, 즉 단장으로서 자신이 맡은 팀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당연하게 생겨나는 유형의 인물이었다. 진심으로 팀을 위해 우승시키고 싶어하고, 그를 위해서 기꺼이 고용주인 자신과도 맞서려 한다. 그래서 자신은 감히 거스르지 못하는 회장처럼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백승수는 당당할 수 있을까?


그동안 권경민이 백승수에게 내주었던 숙제들은 야구단을 위한 것이 아닌 백승수에 대한 자신의 시기와 증오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백승수가 실패하는 것을 보고 싶다. 백승수가 좌절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래서 자신과 같이 비루한 모습으로 무릎꿇고 고개숙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지만 선을 넘었다. 오히려 백승수로 인해 자기가 위태로워지게 생겼다. 그나마 지금 위태롭게 지키고 있는 자신의 위치마저 위협받게 생겼다. 아마 그래서 작가도 회장과 그 아들로부터 철저히 모욕과 멸시를 당하는 권경민의 모습과 백승수를 만나고 분노한 모습을 교차해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즉 백승수란 권경민에게 현실의 이유로 인해 철저히 억눌러야 했던 자신의 또다른 내면이기도 했던 것이다. 서로 비슷하기에 차라리 증오할 수밖에 없다. 달리 근친증오라 하던가. 물론 백승수는 권경민의 그런 사정따위 아예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그 사실마저 더욱 권경민이 백승수를 증오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사실 이것은 백영수가 잘못한 것이다. 오해가 생길 만한 일은 스스로 알아서 피하는 것이 옳다. 그만한 책임과 권한을 가진 자리다. 따라서 그에 따른 구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자리다. 그러니까 운영팀의 한재희도 아직까지 낙하산 별명을 이름처럼 달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하긴 그렇다고 상대팀 전력분석팀으로 들어가면 그 자체로 또다른 구설이 생길 수 있을 테니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주위에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으면 처신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히 동생을 데려다 쓰려면 오히려 공개적으로 모두에게 알려서 뒷말이 없도록 처리를 하던가. 과연 이세영 팀장이나 유경택 전력분석팀장이나 백승수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를 채용했다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연봉협상과정은 백승수의 수완가적인 부분과 인간적인 내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적절한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물론 구단 프론트를 소재로 하는 만큼 스토브리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는 했다. 구단주가 연봉을 30% 삭감하라 하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어 그대로 따른다. 선수를 더이상 방출하지 않으면서도 깎인 연봉을 선수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차라리 협잡이라 여겨질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침내 계약을 모두 끝내는데, 그런데 모든 계약이 끝난 순간 백승수 단장은 언론사에 전화를 한다. 설마 연봉총액이 크게 삭감되어 선수들을 위해 자기 연봉을 내놓겠다는 제안이 모기업의 경영상태를 의심케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나 역시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이 역시 협잡이지만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협잡이었다. 착한 형  곽한영과의 계약에서도 팀을 위해 필요하다 여기는 장진우를 위한 협잡을 더한다. 장진우가 계약을 포기한 대가로 더해진 5천만원을 곽한영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장진우에게 이렇게 야구를 그만두면 나중에 야구를 추억할 수조차 없을 것이란 말을 전하게 한 것은 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진심인 것을 알았기에 장진우에게 야구를 그만두라 권했던 선배도 다시 야구를 해 볼 것을 권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모욕을 주기 위해 연봉으로 5천만원을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가치가 5천만원이기에 필요한 만큼 연봉을 제시했던 것이었다. 지금 자기 실력이 그것 밖에 안된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야구를 계속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전히 자신을 따르며 자신에게 배우고자 하는 올곧은 후배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런 장진우를 믿고 곽한영에게 주고자 했던 5천만원을 남겨 계약서를 준비하고 기다렸던 것이었다.


확실히 남자들 뿐인 야구단에서 그리 많지 않은 나이로 운영팀장까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무리 백승수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역시나 선수들을 만나서 무리없이 계약서를 받아낸다. 감히 선을 넘으려는 서영주에게는 다시 보지 않겠다는 각오로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평소 선수나 스탭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과는 달리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단호해질 수 있고 강경해질 수 있다. 하긴 그냥 사람이 좋기만 해서 한 부서의 장까지 올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운영팀장이 야구단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데. 포수 서영주를 윽박지르는 모습은 보는 사람까지 주눅들 정도로 박력이 넘쳤다. 원래 연기가 좋은 배우인 것은 알고 있었다. 더구나 예쁘기까지 하다. 이렇게 젊고 예쁜 운영팀장은 프로구단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옥의 티라 했던가. 야구와 팀을 사랑하는 마음은 역시 진심인 듯하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역시 인터뷰를 멋대로 편집해서 내보내는 너무나 사실적인 기자와 언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공중파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요즘은 TV채널부터 너무 많다. 스포츠를 다루는 채널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식으로 편집을 통해 장난질치는 언론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대부분 시청자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시청률을 위해서. 화제성을 위해서. 설사 구단에서 항의를 하고 심지어 고소까지 하더라도 남는 건 시청률과 화제성인 것이다. 기자가 아닌 기레기여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너무 적나라해서 오히려 실소만 난다. 아마 기자를 연기한 걸그룹출신의 소진 역시 그런 경험이 연기에 그대로 녹아난 것은 아닐까.


시간은 정말 빨리 간다. 권경민과 백승수의 관계와 같다. 하나의 숙제가 전회 마지막에 주어지만 다음회에 숙제를 마지하고 마지막에 또다시 숙제를 내는 구조다. 용병을 구하고, 그리고 30%삭감된 액수로 재계약을 맺고, 마지막은 부정채용으로 인한 불명예퇴진이다. 잘린 것이다. 단장이 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내쫓긴 것이다. 지금 상황을 또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 아주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그 흔한 사랑조차 할 시간 없이 비시즌 야구단의 일과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만다. 구단주대리 권경민과 단장 백승수의 갈등과 대립이 본격화된다. 과연 백승수는 다시 구단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덕분에 잠시 관심을 멀리했던 프로야구에 대한 뉴스들도 간간히 찾아보게 된다. 해태가 기아로 바뀌면서 유니폼까지 바뀐 것이 야구를 멀리한 가장 큰 이유였었다. 해태의 붉은 색과 검정 색의 원정유니폼을 좋아했었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지만 사실이다. 원래는 청룡을 좋아했었는데 유니폼때문에 응원팀을 바꿨다. 옛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