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을 나에게 축하하는 이유
어릴 적 영화라면 헐리우드 영화 뿐이었다. 음악은 당연히 빌보드였다. 한국영화나 음악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니 설사 좋아하는 것이 있어도 티를 내서는 안됐었다. 한국영화와 음악은 수준이 낮다. 하긴 영화와 음악 뿐이었을까. 주말에 TV에서 방영해주는 영화프로그램에서도 오프닝은 바로 이 아카데미 트로피로 시작되고 있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몇 개 분야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몇 개의 상을 수상했다. 영화포스터에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오스카 트로피는 수상한 상 만큼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아다시피 아카데미는 영어권 이외의 영화들에게는 너무나 높은 장벽이었었다. 그동안 아예 수상하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온전히 비영어권 국가에서 자국 자본에 자국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로 감독상과 작품상과 같은 주요 본상을 수상한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대사건이라는 것이다. 이안 감독 등 그동안 비영어권 출신으로 상을 받은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마저도 대부분 헐리우드와의 협업을 통해 받은 경우였었다. 더구나 그마저도 한국 영화는 그동안 단 한 번도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영화제라면 그나마 우리에게도 해당사항이 있는 유럽 영화제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게 어느날 갑자기 강수연이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며 온통 언론들이 난리가 났던 것이었다. 그때 베니스영화제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었다. 베를린, 칸과 더불어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린다는 사실 역시. 60년대에도 '마부'와 '이 생명 다하도록'이 베니스 영화제 특별 은곰상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너무 먼 이야기라 실제는 1981년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가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분에 오르면서부터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1987년 '씨받이'으로 강수연이 앞서 말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아제아제바라아제'로 역시 여우주연상을, 같은 해 몬트리올에서는 배우 신혜수가 '백치 아다다'로 역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었다. 아, 우리 영화도 이제 슬슬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구나. 그럼에도 아카데미 만큼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확실히 영화를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으면 베니스니 베를린이니 칸이니, 심지어 몬트리올이나 낭트, 모스크바 같은 것들은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장 즐겨 보는 것은 확실한 재미를 보장해주는 헐리우드 영화들이었고, 따라서 그런 자신이 관심이 있는 영화들에 주어지는 상들이 더 가깝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뭔가 대단한 것 같기는 한데 한 편으로 지루할 것 같은 이들 영화제들에 비해서 아카데미라면 확실하게 완성도와 재미를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대중문화로서의 영화의 가치를 증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영화제에서 몇 번이나 상을 받았던 임권택 감독도 아카데미 앞에서는 초라해질 뿐이었었다. 그래서 아마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아카데미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을 것이다. 저건 남의 이야기이니 아예 신경쓰지 말자.
외국어영화상만 해도 대단하다 여겼었다. 어찌되었거나 아카데미니까. 그래도 잘만 하면 분위기도 좋으니 하나 더 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바로 어제 각본상 탔다고 했을 때 끝났구나 아예 관심을 끊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감독상까지 탈 줄이야. 각본도 좋고 연출도 좋으면 작품상 아닌가. 그래서 그때부터 각잡고 수상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 나는 절대 목에 칼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TV조선 같은 건 보지 않는다. 게시판에서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작품상.
그러니까 어렸을 적 해외영화를 소개하며 항상 따라붙던 수식어라는 것이다. 몇 년 도 아카데미 몇 개 노미네이트에 몇 개 수상이다. 2020년 아카데미상 6개 부문 노미네이트에 4개 부분 수상이다. 그것도 연기상을 제외한 대부분 본상을 휩쓸었었다. 감독으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은 거의 다 받은 셈이다. 어찌보면 봉준호 감독 말마따나 그냥 로컬 영화제에 지나지 않는데 그래서 그 느낌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아카데미의 위상이 한국영화의 발전과 함께 많이 떨어진 지금에 과거를 기억하는 입장에서 더욱 특별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드디어 한국영화가 아카데미를 정복했구나. 진짜 그런 느낌이었다. 아카데미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넘어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되었다. 봉준호 개인의 성과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자본이 만든 한국어 영화로 한국인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다.
평소 영화 '기생충'을 좌파영화라며 낮추어 보던 지인도 그 순간 평가가 달라진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그의 표정이 전혀 달라지고 만다. 그런 의미인 것이다. 그만큼 아카데미란 이름이 주는 의미가 남다른 것이다. 그런데 한국 영화가 그 상을 받았다. 난리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전세계 최초다. 비영어권 영화로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모두 수상한 경우는.
빌보드는 이미 BTS가 숙원을 풀어준 바가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한국 대중음악에서도 빌보드에 오르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박진영도 정점에 있던 원더걸스를 굳이 미국까지 데려갔었던 것 아니었던가. 음악을 한다면 빌보드고, 영화를 한다면 아카데미다. 그래미는 아무래도 느낌이 좀 다르다. 여기까지 왔구나. 그 과정들을 실시간으로 지켜봐 왔었다. 막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1981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만다라'가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을 구경꾼으로나마 낱낱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느낌이 더 남다른지 모른다. 진짜 한국영화라면 남부끄러워서라도 봐도 봤다고 말을 못했었는데.
그런 과거의 기억들을 위한 축제인 것이다. 수 십 년 맺힌 한풀이와도 같은 것이다.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사실은 지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정리한 내용들일 것이다. 아, 그랬었구나. 그때는 그랬었다. 그래서 아카데미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일 수밖에 없다. 아마 세계 어디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야말로 주류 중의 주류인 것이다. 말 그대로 대중문화로서 영화인들에게 인싸의 무대인 것이다. 헐리우드에 발을 딛는다. 그런 헐리우드의 정점에 선다. 물론 봉준호 감독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나를 축하한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