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 강렬하며 단단한 개성과 존재감, 주인공인 이유
처음엔 코유키인가 했었다. 진한 아이라인에 큰 눈, 약간의 울상, 그리고 말려올라간 입꼬리, 아, 일본 배우 이름이다. 여기 드라마 카테고리 맨 처음 올라간 드라마 이전 일본 드라마 한창 빠져 볼 때 몇몇 배우는 이름까지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지? 누군데 이런 느낌을 풍기는 거지? 설마 서예지였을 줄이야. '무법변호사'에서 그 정의감에 넘치던 초짜 변호사가 이런 원숙한 세련됨을 연기하고 있을 줄이야. 원래 이게 본모습이었을까?
원래 바위란 것은 자신이 지나온 세월을 그대로 담아 보여준다. 아주 오래전에 지진이 있었다. 땅이 솟구쳐 올랐고, 혹은 바다로 가라앉았었다. 때로는 화산이 폭발에 용암이 솟구쳤을 것이고, 어디선가 바다와 만나 급하게 식었을 것이다. 호수 밑바닥에는 공룡이 가라앉았었다. 바람이 불고, 눈비가 오고, 어느 해는 무척 추웠었고, 어느 해는 무척 더웠었고, 작은 씨앗 하나가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 곳곳을 뿌리로 헤집기도 한다. 그렇게 백 년, 천 년, 만 년, 그 이상의 아득한 세월을 지나고 나면 지금 우리가 아는 바위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 위에 다시 풀이 자라고, 나무가 우거지며, 짐승들이 뛰어다니면 산이라 불리게 된다.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드라마속 동화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의 내용 역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필 주인공인 문강태가 일하는 직장이 정신병원인 이유인 것이다. 그런 상처들 역시 지금 자신들의 일부인 것이다. 정상을 벗어났다 여겨지는 환자들의 상태 역시 그들이 살아온 시간들의 결과인 것이다. 단지 그것을 이겨내느냐 못하느냐. 그래서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시간을 써가는가 못하는가. 스스로 많은 상처를 품고, 이겨내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견디고 감추면서, 보통 사람처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도 할 것이다. 한 편으로 그런 자신을 있는대로 드러내며 그를 과시하듯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결국은 그 모두가 인간이 살아가는 흔적들이 아닐까.
과거의 상처와 그로 인한 고통과 현재의 상실과 그로인한 괴로움이, 그러면서도 서로 부대끼며 상처를 깎고 다듬으며 살아가는 군상의 모습들이, 그런 가운데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데 어우러진다. 누가 환자이고, 누가 정상인가? 누가 비정상이고 누가 보통일까? 그리고 만난다. 헤어짐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과연 형이 꾼다는 나비의 꿈의 정체는 무엇인가? 정신병원에서 발생한 죽음과 고문영이 말하는 살인과 연관되어 있는 것인가?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그들은 여전히 현실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일 게다.
어쩐지 느낌이 괜찮다. 서예지의 미모나 존재감이 절대 김수현에 뒤지지 않는다. 너무나 강한 개성과 평범하면서도 절대 숨길 수 없는 존재감이 단단히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준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만으로도 그냥 그림이 되어 버린다. 두 사람이 만날 것을 알면 설레고, 만나고 난 뒤에는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그래서 주인공인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어쩔 수 없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이야기인 때문이다. 기대된다. 간만에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