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 운명보다 필연, 그들이 만나고 함께여야 하는 이유

그럼에도 강태에게는 형 상태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자기가 위험한 순간에조차 외면하고 혼자 떠나갔던 상태였지만 그런 강태라도 있었기에 의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태에게도 돌아가 기댈 수 있는, 마음놓고 기대어 화내고 울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강태도 아직 아이였을 텐데. 누군가의 도움이, 보호가 간절히 필요한 아이였을 뿐인데. 그런데도 형 상태라도 없었다면 누구에게 기대어 지금껏 버틸 수 있었을 것인가.

 

형마저 버리고 떠나간 자신을 구해준 순간 강태는 고문영에게서 그런 대상을 보았을 지 모르겠다. 고문영이라면 온전히 자신을 받아주고 자신을 품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도망친 것은 기대와 다르게 고문영조차 자기가 감당해야 할 무엇으로 여겨진 때문인지 모른다. 역시나 당시의 강태는 아직 작고 약한 아이일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강태의 예상과 같이 고문영은 여전히 자신이 기댈 대상을 찾에 헤매고 있었다. 온전히 자신을 바라봐주고 받아줄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가족과 같은 대상을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강태라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강태가 그동안 형 상태와 함께 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누군가를 지키고 보실판다는 것이 반드시 일방적인 행위만은 아니라는 사실일 터였다. 자신이 형 상태를 지키는 동안 상태로 인해 자신 역시 지켜지고 있었다. 형 상태를 보살핌으로써 자신까지 보살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형 상태는 자신이 돌아갈 집이며 자신이 지키고 기대야 할 가족이었다. 형 상태가 아니었으면 강태가 지금껏 아무렇지 않게 고단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올 수 있었을 것인가. 구속이고 족쇄인 동시에 형 상태의 존재는 자신을 버티는 든든한 기둥이고 벽이었다.

 

여전히 자신은 없지만 그래서 다시 고문영에게 돌아간 것이었다. 온전히 그녀를 채워주고 지켜주지는 못해도 함께 기대며 있을 수는 있지 않을까. 고문영이 자기에게 기대고 싶은 것처럼 자기 역시 고문영에게 기대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가족이다. 다만 아직 고문영은 깨닫지 못한다. 그런 가족이란 존재가 어색하기만 하다. 자기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것임에도. 그냥 가족이 되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지켜보며 납득하며 함께하면 되지 않겠는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너무 큰 것을 기대하지 않으며, 그냥 있는 그대로만.

 

차라리 정신병원의 환자보다도 더 불안정해 보인다. 고문영만이 아니다. 문강태는 물론 간호사인 남주리까지도 어딘가 한참 정상에서 벗어난 듯 보일 때가 있다. 누군가 상처를 헤집고, 혹은 역린을 건드리며, 그래서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이 나치 자신이 아닌 듯 날뛰기조차 한다. 그럼에도 붙잡지 않는 것은 붙잡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정확히 그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문강태라면. 문강대를 지탱하고 있는 문상태의 존재라면.

 

형에게 버림받고도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자신이 형의 것이 아닉고 형이 자신의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함께일 수밖에 없다. 차라리 강태가 상태를 버리기를. 상태가 강태를 떠나기를. 하지만 그런 것이 가족이라면 자신도 그런 것을 가지고 싶다. 사랑이라기보다는 목마름에 가깝다. 강태가 고문영에 대해 느끼는 감정 역시 비슷할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그들의 처지가 너무 절박한 탓이다. 그들은 과연 온전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될까?

 

고문영의 과거가 하나씩 껍질을 벗는다. 그녀의 상처와 그녀의 목마름과 그녀의 이유들이다. 문강태의 과거 역시 하나씩 들추어진다. 역시 그의 상처와 그의 목마름과 그의 이유들이다. 그런 것들이 지금의 그들을 만든다. 그들을 위한 이유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그들은 만났고 그들은 함께일 수밖에 없다. 먼 옛날 두고 온 후회처럼. 그리고 어느새 마음에 가지게 된 기대처럼. 과연 누가 사이코일까? 너? 나? 아니면 모두가? 그래도 괜찮다.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