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 가족에 대한 적나라한 에세이
너무 가까워도 보이지 않는다. 자기는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초점 안쪽에 흐릿하게 왜곡된 모습을 보며 본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남편이니까, 아내니까, 자식이니까, 자매니까, 형제니까, 부모니까, 혹은 가까운 친구이고 연인이니까, 그래서 내가 더 잘 안다 생각하기에 더 알려 하기보다 관성에 맡기고 지레 판단하고는 한다. 그래서 사랑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미워하고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싫어지고 멀어지고 있다고. 다만 가족이 특별한 이유는 그럼에도 헤어지면 남인 부부나 연인과 달리 여전히 가족으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아마 그래서 김은희는 9년을 연애하고 헤어졌는지 모른다. 가족처럼, 서로의 가족들과도 가까이 알고 지내던 사이조차 한 순간에 마음이 돌아서며 완전히 파탄나고 만다. 우연한 기회에 한 번의 실수를 계기삼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을 지켜보고 자기가 바라봐 온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항상 같은 모습인 줄 알았는데 자기가 알았던 모습들까지 단지 자신의 착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돌아오니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자매가 되고, 가족으로 돌아간다. 마치 그런 가족처럼 찬혁은 항상 은희 곁에 머물고 있었다.
알고 있다고 여겼었다. 남편에 대해, 아내에 대해, 부모에 대해, 자식에 대해, 형제들에 대해서,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서로 정작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터무니없는 오해들과 그로 인한 너무나 쉬운 엇갈림들이 하나씩 세월의 먼지처럼 상처를 쌓아 간다. 가족이라 너무 밉고, 가족이라 너무 싫고, 그래서 가족이라 차라리 멀어지고만 싶다. 가족으로부터 헤어나기 위해서,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가족이 너무 숨이 막히도록 답답해서, 그런데 알고 보니 단지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이 원인이 되고 있었다. 그냥 처음부터 속시원히 털어놓고 이해를 구했다면 아무일도 없었을 것을, 너무나 서로를 잘 안다는 자신감이 긴긴 엇갈림의 이유가 되고 만다. 겨우 진실을 알기까지 그들은 그저 그 오해들은 진실로 여기고 살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 김상식은 22살 젊은 과거로 돌아가야 했던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수많은 오해들과 상처들로 얼룩진 지금으로부터 한참을 떨어져 모든 것을 지켜보기 위해서. 아버지와의 거리가 가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모습을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자신들은 어떤 가족이었을까? 아버지로써 엄마로써 남편으로써 아내로써 딸로써 언니로써 누나로써 동생으로써 자신들은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그리고 한바탕 광풍처럼 모든 혼란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는 것은 그래도 자신들은 가족이라는 것. 그 수많은 오해와 상처들에도, 그로 인한 좌절과 고통과 절망들에도 자신들은 여전히 가족일 수밖에 없더라는 것. 그래서 엄마도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더 먼 곳에서 자신을 보고 가족들을 보고 그 진실을 깨닫는다. 아무리 밉고 싫어도 그래서 멀리하고 버리고 싶어도 그래도 자신들은 가족이다.
어쩌면 이런 것을 사랑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이 그 자체로 바라보고 인정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남들과 다른 아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정상으로 되돌리고 싶어서 발악하듯 달려 온 부모의 마음이 어떻게 자식과 주변들에 상처를 주어 왔었는가. 그냥 그 사람이 사랑하고 있더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 같더라. 미움도 분노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그러므로 그런 그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참 오랜 시간이 걸려서 겨우 가족이 되었을 때 헤어져야 했다는 것이 또 하나 아이러니였을까. 가족이 될 수 없었지만 유일하게 그곳에서만 윤태형은 가족이 될 수 있었다.
가족에 대한 너무나 적나라하고 그래서 담담하기까지 한 한 편의 에세이가 아니었을까. 소설만큼이나 극적이고 격정적이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바라보는 감정은 추억처럼 회상처럼 담담하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자신들은 가족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족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마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막내 지우가 사기당하지 않고 먼 외국에서 결혼해 살았더라도 그들은 끝내 가족이지 않았을까. 그냥 무심히 돌아와서 눈치밥 얻어먹고 누우면 무심히 잡아주는 따뜻한 손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그 마음처럼.
그래서 자신들은 가족이다.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그래서 사실 서로에 대해서 다 잘 이해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때로 성가시고 부담스럽기까지 한 이들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은 그저 가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의 먼 과정들처럼. 아주 먼 길을 돌아 끝내 서로가 연인이 된 은희와 찬혁의 관계처럼. 바로 서로가 돌아갈 집 그 자체인 것이다. 뒤늦게 보기 시작해서 이런저런 사정들로 인해 겨우 조금 전에야 마지막편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진지하게 가족을 바라보는 드라마가 나오지 않았을까. 늦게 본 것이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