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2 -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경갈등, 시사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

까칠부 2020. 8. 17. 23:11

주인공이 검사라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나빠져서 그냥 보지 않으려 했었다. 현실에서 검사놈들이 하는 짓거리가 있는데 드라마의 내용이라는 게 그런 검사들을 미화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과연 '비밀의 숲'이 검사를 미화하는 드라마였는가. 그래서 아무 사전정보 없이 뒤늦게 '비밀의 숲 시즌2'를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이거 재미있네.

 

진짜 시의적절이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말일 것이다. 검찰개혁이 가시화되며 검찰과 경찰 사이에 수사권조정 문제로 청와대까지 한바탕 시끄러운 와중이다. 일단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 가운데 수사권을 경찰과 나누려 하니 경찰에 더 줘도 문제 덜 줘도 문제인 상황이 되어 버린 탓이다. 경찰의 조직이 검찰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방대하고 치밀하다. 대부분 시민들 입장에서 평생 검사 얼굴 한 번 볼 일 없는 경우는 많아도 경찰 안 보고 살 수 있는 경우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다. 그렇다고 경찰권력의 비대화를 우려해서 검찰에게 수사권을 보다 많이 보장해주려니 그동안 검찰이 저질러 온 일들이 있다. 아무튼 덕분에 검찰과 경찰 편에서 각각 자기만의 논리를 앞세우며 치열하게 논쟁이 일고 있는 상황에 하필 검사인 황시목과 경찰인 한여진이 각각 검찰과 경찰 편에서 협상의 당사자로 나선다.

 

물론 그렇다고 별 재미도 없는 검경수사권조정 가지고 드라마를 채우려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런 건 망작이라 불리는 '라이프'에서 아마 질리도록 느끼고 깨달은 바 있을 것이다. 주제는 심오하더라도 내용은 재미있어야 한다. 결론이 어떤 대단한 메시지를 담고 있든 결론까지 가는 과정은 무조건 재미있어야만 한다. 검사가 주인공은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아직 경찰의 모든 수사를 지휘하고 최종적으로 결론짓는 것은 오로지 검사의 몫이란 것이다. 더구나 검사와 경찰이 함께 파트너로 때로 라이벌로 등장한다. 수사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건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악인을 응징하며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당연한 이야기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기껏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현재의 이슈를 다루면서 그냥 수사만 한다는 것은 어쩐지 낭비하는 느낌이다. 어떻게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경의 수사를 한 데 녹여낼 수 있을 것인가.

 

절묘하다. 당연히 검찰은 그동안 자신들이 누려 온 수사권의 독점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검찰은 오랜 숙원이었던 수사권의 독립을 반드시 이루고 싶어한다. 그 중간에 누가 더 많이 가져가고 누가 더 많이 잃는가 하는 균형점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상대의 의도를 좌절시키고 자신의 목표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를 위한 치열한 여론전 와중에 서로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한 음험한 경쟁이 이루어진다. 경찰간부가 수사정보를 흘렸다며 검찰은 언론에 흘리고, 검찰이 전관예우로 사건을 묻었다며 경찰 역시 언론을 이용해 여론전을 벌인다. 하나라도 더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을 찾아 명분을 흠집내고 정당성을 약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이긴다.

 

그래서 협상의 상대인 경찰청 정보부장이자 수사구조혁신단장인 최빛의 과거를 뒤져 그 약점을 찾으려 검사들이 나서게 된다. 그 단서를 제공한 것이 전작에서도 출세지향적이었던 서동재였고, 검찰측 담당자인 형사법제단 우태하가 받으며 황시목이 엮이게 된다. 서로 검찰과 경찰의 입장을 대변하게 된 황시목과 한여진이 그 과정에서 서로 얽히게 된다. 아마도 때로 경쟁하고 때로 협력하면서 불순한 목적으로 시작된 수사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함께하게 될 것이다. 과연 수사의 끝에서 그들이 마주하게 될 진실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어차피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검경수사권 조정이 확실하게 결론날 일은 없을 테니 결국은 그것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고 말지 않을까.

 

아무튼 검찰은 검찰 입장에서 경찰은 경찰 입장에서 서로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며 상대의 밥그릇을 빼앗으려 온갖 비열한 수단을 동원하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여전히 검찰이 경찰보다 우위에 있는 현실에서,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로 더이상 완전히 압도하지 못하는 미묘한 경계에서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각자 자신이 속한 검찰과 경찰의 이익을 넘어 명예와 자존을 위해서 필사적인 것이다. 그래서 누구 하나 깨끗한 사람이 없지만 그럼에도 이해못할 악인도 없다. 그래서 흥미로운 것이다. 그런 검사들과 경찰들이 파헤치게 될 사건의 진실이란 것이. 이번에도 하나의 사건만을 쫓아가게 될까.

 

확실히 의학드라마는 아니었었다. 그런데 사실 '라이프'도 주제면이나 각 에피소드의 매력 등에서는 크게 나무랄 부분이 없었다. 캐릭터도 좋고, 소재와 배경도 나쁘지 않은데, 그러나 사건이 허술하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장점은 이같은 검사나 경찰이 등장하는 수사드라마가 아니었을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역시 이수정 작가다.

 

시의성 있는 이슈를 드라마에 담아내면서, 한 편으로 드라마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어쩌면 캐릭터가 평면적인데도 단조롭지 않다는 점도 흥미롭다. 복잡하면서도 선명하다. 다양하면서도 분명하다. 그래서 더 이해하기가 쉽다. 그래서 쉬우면서 이야기도 풍부해질 수 있다. 기대 이상이다. 왜 안 본다 그랬었을까. 때늦은 후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