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2 - 쉬운 길을 찾아서, 인간이 악하지 않고 약한 이유
그러고보니 그동안 몇 번이나 아주 질리도록 반복해서 말해 왔을 것이다.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다. 약하기 때문에 굳이 힘들고 어려운 길보다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벌기보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당연히 더 편하고, 어렵게 설득해서 돈을 내놓게 하기보다 폭력으로 위협해서 내놓도록 만드는 것이 더 쉬운 것이다. 나중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죽여서 아예 증거를 인멸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더 쉬운 수단이 있다. 더 편한 방법이 있다. 더 빠른 지름길이 있다. 그러면 당연히 그리로 가는 것이다. 멀리 돌아가려면 피곤하기에 들어가지 말라고 세워놓은 표지판마저 무시하고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을 지혜라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지 말라고 한다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류 지성의 역사란 그런 쉽고 편한 길들과의 투쟁의 역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왜 가서는 안되고, 어째서 가면 안되는 것이고, 그러므로 간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가. 그것이 법이고 윤리고 도덕이고 관습이다. 규범이다.
물론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사회적 규범과 강제에도 불구하고 더 쉽고 편하고 빠른 길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드라마의 시작에 바닷가에서 입수금지 표지판을 훼손함으로써 발생한 사망사고가 다루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남들에게 보여줄만한 괜찮은 사진을 찍기 위한 목적에서였었다. 그래서 표지판과 경시줄을 아무 생각없이 치웠더니 그로 인해 위험한 바다에 들어갔다 사망한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금줄이라 할 수 있는 전관예우를 이용한 부분도 그래서 매우 상징적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가 판사시절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서 사건을 덮고, 돈과 권력을 이용해서 피해자의 주변인들을 회유하고 협박하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분통터질 일이지만 자칫 가해자로 기소될 지 모르는 당사자들로서야 너무나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편법과 반칙들의 연속이다. 경찰 정보부장 최빛은 언론을 이용해서 검찰의 약점을 퍼뜨림으로써 검경수사권 조정에서 우위에 서려 하고, 검찰 역시 경찰이 감추고 있다 여겨지는 사건을 파헤침으로써 경찰의 약점을 쥐려 한다. 검경수사권조정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려 검찰이 애써 묻어 준 국회 법사위원장의 자식과 관련한 사건을 이번에는 검찰이 파헤치려 하고 있다. 자신들이 가진 정보능력 수사력을 오로지 검찰과 경찰이라는 자신들의 조직과 심지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쓰고 있는 중이다. 왜? 어째서? 쉬우니까. 편하니까. 그러는 쪽이 더 쉽고 더 편하고 더 빠르게 자신의 이익을 달성하는 방법일 테니까.
그 사실을 황시목도 서부지검의 문제를 해결하려 자신과 함께 서부지검 출신이던 동부지검장 강원철을 찾은 자신의 모습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황시목만이 아니다. 황시목이 해결하고 싶었던 전세사기사건 용의자의 구속영장발부는 벌써 경찰들부터 서부지검에서 근무했었다는 이유로 황시목을 통해 방법을 찾고 싶어했었다. 지름길이 있으니까. 그래서 우태하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맥도 능력이다. 그러니까 황시목과 친하고 한여진과 친한 서로의 인맥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서로가 가진 정보를 알아내 가져 오라. 맥락은 하나다. 쉬운 길이 있다면 당연히 더 쉬운 길로 가야 한다.
무엇이 인간을 악으로 이끄는가. 무엇이 한 사회를 죄악에 물들게 만드는가. 임대인이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려도 그것은 임대인의 권리인 것이다. 임차인이 아무리 억울해도 임대인이 마음대로 임대료와 계약기간을 정할 수 있어야 임차인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임대인으로부터 받은 전세금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몇 채나 가지며 시세를 올려도 당연한 개인의 욕망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의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환자의 목숨을 도외시하는 것도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속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암묵의 금기는 벌써 오래전부터 있어왔었다. 하지만 그러자니 너무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 그러니까 편법을 통해서라도 전관을 통해 쉽게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라도 좋다. 왜 인간은 악해지는 것일까?
사실 무어라 감상을 쓰기가 어려운 구성이고 전개일 것이다. 각 화마다 주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전체가 거대한 구조를 가지고 느긋할 정도로 묵직하게 이어지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나서야 무어라 한 마디 할 수 있을 듯하다. 검경수사권조정이라는 자체가 그리 말하기 쉬운 주제도 아니고, 더구나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 역시 상당히 복잡하고 깊은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는 이쯤에서 한 마디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보다는 그동안 내가 해 온 말들의 연장에서 한 마디 거드는 쪽이 더 낫지 않겠는가.
인간은 악하지 않다. 오히려 선하다. 너무 정의로워서 문제일 정도다. 다만 약하다. 그래서 악이 선이 되고 불의가 정의가 된다. 악을 선으로 만들고 불의를 정의로 만든다. 죄의 끝은 선을 만들고 정의를 만드는 것이다. 법을 만들고 도덕을 정하고 윤리를 강제한다. 가장 정의로운 자가 가장 불의하다. 가장 선한 자가 가장 악하다. 인간은 과연 스스로 정의와 선을, 도덕과 윤리를,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감정이 지워진 황시목이 그 답을 찾아간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