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이날치 - 수궁가, 베이스와 가락의 소중함

까칠부 2020. 10. 14. 03:44

원래 가락이란 멜로디와 리듬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다. 높고 낮은 것은 멜로디고, 길고 짧고 빠르고 느리고 세고 약한 것은 리듬이다. 그런데 사실 흑인음악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전통음악에서 음의 높낮이란 리듬의 일부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 당장 대중적으로 많이 쓰이던 악기들만 하더라도 거의 리듬악기들 아니던가. 사물놀이를 이루는 징, 꽹과리, 장구, 북이 모두 리듬악기들이다. 그래서 장단이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

 

이날치의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귀를 잡아끈 것은 아마도 장영규의 베이스라인이었을 것이다. 사실 수궁가를 아주 모르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내키면 굳이 판소리나 민요도 찾아듣고 했기에 수궁가의 내용을 대충은 아는 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다른가. 분명 수궁가를 베이스로 했는데 여전히 판소리의 창법을 그대로 쓰면서도 전혀 다른 신명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뭘까? 결국은 이날치의 음악 전반을 흐르는 장영규와 정중엽의 베이스라인이 아닐까. 원래 피아니스트들이 멜로디를 잘 쓰고, 기타리스트들이 코드를 잘 잡고, 베이시스트들이 리듬을 잘 딴다. 전통적인 수궁가의 가락에 현대적인 베이스라인을 적절히 버무리면서 엠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춤도 훌륭히 함께 녹아든다.

 

국악의 리듬이 아니다. 판소리에서 흔히 쓰는 리듬이 아니다. 분명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타는 리듬은 수궁가의 그것과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그러나 어색하지 않다. 이날치의 멤버 안이호가 했던 말 그대로일 것이다. 고려의 가락이 다르고, 조선의 가락이 다르고, 조선 전기와 중기와 후기의 가락이 다르다. 수궁가도 시대에 따라 다양한 판본이 만들어지고 그 내용 또한 서로 다른 부분들이 있다. 대중음악이기 때문이다. 판소리야 말로 농투성이들이 어느집 마당에 모여 듣던 대중음악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때 대중이 가장 좋아할만한 것, 가장 즐거워 할 만한 것들로 항상 내용을 새로 구성해서 내보인다. 그렇게 국악 역시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진화해 왔을 것이다.

 

아무튼 베이스라인만큼이나 장영규라는 확실한 음악적 중심을 확인하게 되었을 것이다. 장영규라는 중심이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뿌리도 확실하게 내릴 수 있도록 해주고 있을 것이다. 어떤 낯선 것을 더하든 그럼에도 지금 자신들의 음악은 긴긴 역사를 통해 계승되고 발전되어 온 우리의 것임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그래서 신기하면서도 익숙하고, 친근하면서도 새롭다. 그리고 그 근간에 면면히 흐르는 것은 원래 우리의 소리가 추구하던 신명 그 자체였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너무 적잘하게 합류했다는 이유다. 그래, 그런 신명이 있어야지. 삶이 고단한 가운데서도 한바탕 흥을 돋우고 나면 다시 내일을 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수궁가 말고 흥보가도 들어보고 싶어졌다. 아니 춘향가의 달달한 사랑이야기나 감옥에 갇혔을 때의 비감한 느낌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무척 흥미롭기도 하다. 확실히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여유가 풍요로움을 만들고 풍요로움이 문화를 더욱 다양하게 고도로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지금 대한민국의 대중문화야 말로 역사상 유례없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 성과가 아닐까. 감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