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를 사랑한 스파이 - 강아름이 주인공인 이유

까칠부 2020. 11. 23. 04:24

확실히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강아름이다.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설정임에도 여전히 단단하게 스릴러의 긴장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사랑하는 남편이 그동안 자신을 속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울거나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당당히 마주보며 분명하게 자기 할 말을 전한다. 그렇다고 주위를 맴도는 전남편 정지훈에게 휘둘리느냐면 그쪽에 대해서도 냉정하기는 마찬가지다. 하긴 강아름 정도면 데릭 현이든 정지훈이든 되도 않는 남편따위 없어도 얼마든지 혼자서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의지하지 않아도 되고 인정이나 이해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그래서 오히려 애닳는 것은 현남편인 데릭 현과 전남편인 정지훈이란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싶지 않고,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였던 이를 지켜주고 싶다. 단순해질 수 있는 이야기가 그렇게 강아름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꼬이며 두툼해진다. 바로 데릭 현의 정체를 밝히고 인터폴 차원에서 수사에 들어갔으면 그냥 뻔한 수사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정지훈이 팀원 누구도 모르게 소피를 사랑했던 피터와만 접촉하여 데릭 현을 추적해야 했던 이유가 이후 나오게 될 것이다. 팀이 나서서 데릭 현을 추적해서는 안되었을 아주 공교로운 의도된 우연일 것이다. 정석이다. 그런 정도 반전이 없으면 그래도 스릴러인데 너무 심심해진다. 반전과 반전, 그리고 배신과 배신이 곧 스릴러의 묘미다.

 

아무튼 강아름의 존재로 인해 신중해야 할 데릭 현이 성급해지는 만큼 서둘러야 할 정지훈의 수사는 크게 돌아가게 된다. 범인을 쫓아야 할 경찰은 일부러 돌아가고, 경찰을 피해 신중해져야 할 범인은 서두르며 앞서간다. 그리고 여기에 정석적인 캐릭터의 활용을 통해 또 한 번 강아름을 중심으로 사건이 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김동란의 제멋대로인 요구와 그로인한 감정적인 충돌이 자칫 놓칠 뻔했던 소피의 USB를 찾아내게 만든 것이다. 과연 이 새로운 변화는 어떻게 강아름을 중심으로 데릭 현과 정지훈이, 그리고 헬메스와 인터폴이 움직이도록 만들까. 데릭 현과 정지훈 두 사람 모두 강아름을 지키고 싶어 하지만 그들이 속한 조직까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절박해질까? 잔인해질까?

 

뭔가 알 수 없이 뻔한 것 같고 흔한 것 같은데 자꾸 이끌리는 이유일 것이다. 뭔가 아닌 것 같고 빈 것 같은데 꽉 채워진 듯 느껴지는 이유일 터다. 강아름의 캐릭터가 이제까지의 드라마들과 사뭇 다르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어떤 사정과 이유에도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오로지 중심에 자신이 있다. 소주와 라면은 마치 그런 그녀를 상징하는 소품처럼 여겨진다.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루어낸 인물이란 것이다. 그에 비하면 데릭 현이나 정지훈이나 남자들이 얼마나 시시한가 말이다. 진짜는 강아름을 통해 이루어진다. 반진민이 제대로 본 것이다. 그녀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것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국가적인 기밀을 빼돌리려는 산업스파이조직이 있고, 그를 쫓으려는 인터폴이 따로 있음에도 그저 웨딩드레스샾의 사장에 지나지 않는 일개 민간인인 강아름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이유다. 어쩌겠는가. 데릭 현이나 정지훈이나 강아름 앞에만 가면 바보가 되어 버리는 걸. 원래 직업이 가지는 살벌함따위 어디로 팔아 버리고 팔불출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도 그런 자각조차 없다. 비일상의 첩보물을 자신의 일상세계로 끌어와 버린다. 그냥 당연한 자신의 일상속의 이야기로 만들어 버린다. 그마저도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주 당연하게만 보인다. 강아름의 드라마다. 역시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