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김태원과 정동하, 천재성과 왜곡된 기억에 대해

까칠부 2021. 1. 9. 23:26

오래전 어느 정치사이트에서 놀던 무렵 나도 비슷한 소리를 들은 적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들까지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사이트서 글쓰고 놀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특히 드라마 리뷰를 오랜동안 꾸준히 써 올 수 있었던 이유인지 모르겠다. 원래는 일본드라마 리뷰를 썼었다. 그때 지인이 내 리뷰에 대해 그리 말한 적 있었다. 드라마의 특수한 이야기를 일상의 이야기로 바꾸는 재주가 있다.

 

벌써 몇 년 전이냐? 김태원의 첫사랑이라면 1980년대 초반의 일일 것이다. 대략 계산해 보면 1983년 언저리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때 기억을 무려 2000년대 초반까지 20년 넘게 울궈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네버엔딩스토리 이후로도 지금 아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곡과 가사를 쓰고 있을 것이다. 그게 사실 정상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과거의 일은 망각 속에 묻어둔다. 그런 망각 속에서 그때의 감정만을 오히려 더 예민하게 다듬어 끄집어내는 것이다. 어떻게 정상일까?

 

김태원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정동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 피해망상이지만, 한 편으로 그만큼 타인의 발언에 대해 민감하게 예민하게 자기화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벌써 40년 전의 첫사랑처럼 타인의 감정에 대해, 말에 대해, 행동에 대해 자기화하여 극대화시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때 소다 마사히토의 만화 스바루가 떠오른다. 볼레로를 연습하는 스바루를 보면서 시스테른 발레컴퍼니의 단장은 그리 말한다. 저 이기적인 년을 마음껏 때려주고 싶다. 세상에 자기 혼자 피해자다. 자기 혼자 피해자인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이야 어찌 돌아가든,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었든 자기가 비극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김태원의 감수성이 유지되는 것은 아닐까. 일상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고, 그런 특별한 이야기를 일상의 언어로 멜로디로 담아낸다. 그게 재능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인간은 정상적인 작품밖에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고호가 정상이었으면 고호의 미술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피카소가 남들과 같았으면 피카소의 미술도 세상에 없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나 심지어 슈베르트마저 얼마나 자기애에 찌들어 자기를 학대하며 살았었는가. 그래서 김태원 역시 정동하의 인터뷰에 대해서 자기만의 눈과 귀로, 자기만의 머리로,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화시켜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억삼이란 거짓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자기만의 기억으로 가공해 가지고 있는 사실들이 세상의 그것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동하의 이탈을 배신으로 받아들였던 듯하다. 그보다 앞서 김태원 자신이 정동하가 자신과 함께 있으면 더 성장할 수 없음을 걱정한 바 있었다. 그런데 한 편으로 그것이 정동하에게 자신을 내치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 아마 2008년이었던가 9년이었던가 김태원이 라디오 나와서 정동하에게 히트곡 하나는 안겨서 독립시켜주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 바 있었다. 그래도 몇 년을 함께 해 왔는데 먹고 살 노래 하나는 만들어서 내보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보컬은 반드시 팀을 나가고 따라서 자신은 그 준비를 해야만 한다. 연주자와 달리 보컬에 대해서는 팀의 일원이라기보다 객원으로 여기는 무의식이 있다. 그러런 무의식의 충돌과 갈등이 김태원의 그같은 과잉된 자의식적인 오해를 낳지 않았겠는가.

 

부활의 노래가 쉽다 하면 그게 바로 사기꾼 도둑놈이다. 이승철도 세상에 부르기 어려워하는 게 바로 부활의 노래다. 그 감정의 선은 김태원만의 과잉된 자의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시제와 인칭을 넘나들며 자기 중심으로 재구성한 피카소적인 세계다. 오늘이 어제 같고, 네가 나와 같고, 비가 눈과 같고, 그 속에 사실마저 뒤섞인다. 하지만 또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김태원만의 감수성이니. 아니면 어찌 '소나기'같은 자폐적인 노래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

 

원래 아티스트들은, 특히 천재적이라 일컬어지는 아티스트일수록 정상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광기와 천재성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다. 아니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나 역시 뭘 그리 예민하게 받아들이냐는 말을 하도 들어 왔던 터라. 남들은 그런 의도가 아니어도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만다.

 

내 리뷰를 보면서도 그리 느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뭘 그런 내용을 그렇게까지 확대해서 보려 하는가.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이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김태원이다. 문득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