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도 - 악을 악으로 처단해야 하는 이유
법도 믿지 않는다. 정의도 믿지 않는다. 그러면 인간은 믿을까? 세상을 나누는 중요한 경계일 것이다. 인간의 선의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악의만을 전제하여 경계할 것인가? 그래서 순자는 교육과 형벌로써 인간이 선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인간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되니 더 강력한 억압과 통제로써 대중이 바른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가프라자인 것이다. 금가프라자의 상인들은 그런 인간의 대신이다. 때로 비겁하고 때로 비굴하고 때로 비루하면서도 때로 정의로울 줄도 안다.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의심하고 배척하면서도 그를 위해 행동에 나설 줄도 안다. 그런 금가프라자의 상인들이 있기에 그들에 강요당하고 때로 기대면서 빈센조든 홍차영이든 바벨이라는 대기업과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면서 한 편으로 그럼에도 인간의 선의를 믿고 그들을 위해 행동에 나설 수 있다. 다만 홍유찬과 달리 홍차영이나 빈센조가 그런 무모한 싸움에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이유는 바벨이라는 거악에 대한 순수한 분노와 증오인 것이다. 바벨만 혼내 줄 수 있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 그 다음이 문제인 것이다. 과연 홍차영과 빈센조는 홍유찬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
오랜만에 보는 아들임에도 어머니 오경자는 빈센조의 정체를 알아챈 듯하다. 어머니가 자식을 버리고 배신해야 하는 상황이란 어떤 것일까? 인간의 악에는 어떤 슬픔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그와는 상관없는 순수한 악이란 것도 존재한다. 빈센조와 홍차영이 홍유찬으로부터 물려받은 세계와 장준우와 법무법인 우상이 존재하는 세계를 나누는 기준인 것이다. 욕망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계와 인정과 그로 인한 슬픔이 존재하는 세계가 정확히 대비된다. 서울의 화려한 밤풍경만큼이나 인간의 세계는 다채롭기만 하다.
한 번 재판을 뒤엎고 다시 빈센조가 증인이 되어 법정에 출석하면서 반전을 꾀한다. 역시 장준우 역의 옥택연에게는 모든 악의 배후로써 그 배역의 무게가 버거운 듯하다. 한승혁은 얄밉고 최명희는 무서운데 장준우에 대해서는 아무 느낌도 감정도 없다. 장한서에 대해서도 미친 놈이란 혐오감과 경멸의 감정마저 생기는데 장준우는 홍차영의 후배를 넘어서기 힘들다. 과연 장준우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악이 악인 이유다. 악으로써 악을 처단해야 하는 이유다. 악이 정이가 된다. 악이 선이 되고 도덕이 되고 윤리가 된다. 악의 거짓이 진실이 되어 사람들을 속인다. 속이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 자체로 악의 거짓은 진실이 되어 받아들여진다. 현실의 이유다. 판사가 재판을 거래하고, 검사와 변호사가 법을 수단으로 삼는 가운데 억울함조차 제대로 호소하지 못하는 약자들이 존재한다. 언론에게는 책임이 없을까? TVN임을 다행으로 여긴다. TVN에는 뉴스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