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조 - 마피아가 영웅이 될 때, 악이 정의가 되는 모순의 현실
전근대 중국에서 방회란 곧 흑사회였다. 흑사회란 한 마디로 죽련이나 삼합회 같은 범죄조직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 방회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조합의 성격도 있었다. 조직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대신 조직은 철저히 조직원을 지킨다. 오래전 미국에서 경찰들이 중국인 사회에 암약하는 이른바 차이니즈 마피아, 즉 흑사회를 검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인종차별도 극심했던 미국에서 중국인 이민자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흑사회의 보호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마피아 역시 그런 시칠리아 토착민들의 조합적 성격에서 출발했었다.
법이 자신들을 지키지 않는다. 제도가 규범이 무엇보다 권력이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마을에서는 마적이나 화적떼들에 협력하여 그들의 보호를 받기도 했었다. 세계사적으로 오히려 매우 흔한 경우일 것이다. 법밖에 존재하는 집단이 차라리 범죄자들에 협력하며 그들의 보호를 받는다. 그래서 김두한이란 신화도 존재하는 것 아니던가. 일본이라는 불의한 권력의 지배를 받던 당시 조선의 민중들과 그 법을 거스르며 저항하던 범죄자의 존재가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한 편의 로망스를 만든다.
검찰과 경찰과 언론과 각종 정부부처와 시민단체들이 이익을 매개로 하나가 된다. 그들 자신이 법을 만들고 법을 운용하고 법을 집행하는 주체들인 것이다. 이 사회의 규범이고 질서고 제도들이다. 차라리 법을 만들고 사회의 정의와 규범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든다. 약자들을 외면하고 강자들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려 한다. 노조라고 예외가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조차 기득권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를 바랄 뿐 진정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다. 그토록 분개하던 사회적 참사에 대해 고작 월세 올려받은 사실보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는 몰골들을 보라. 그런 상황에 사람들은 누구를 믿고 누구에 기대어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일까.
마피아가 영웅이 되는 이유다. 그동안 아쉽게 지나치는 듯 싶던 언론의 적나라한 현실이 드러난다. 바벨이 약속한 대가를 쫓아 바벨이 제공한 보도자료대로 오로지 찬양하는 소설들만 써대고 있다. 노조탄압혐의로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는데 입은 양복의 브랜드가 뉴스가 되고, 조사받는 동안 밥을 먹으며 깍두기를 추가로 시킨 것이 속보로 보도된다. 부패는 타락이 아니다. 권력이 있고 책임이 존재하는 한 어느 사회에는 부정과 비리는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있다. 그것을 고발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가의 여부가 그 사회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말하는대로 두 손 곱게 모으고 받아쓰다가 그 반대편에 대해서는 티끌 하나도 놓치지 않는 것을 객관이라 공정이라 언론의 사명이라 주장한다. 권력형 부정과 비리와 범죄들에 대한 비판 한 마디 없이 한 쪽의 과연 잘못인지조차 의심스러운 사실들만 대서특필하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수많은 철거민들을 죽게 만든 참사에 대해 그 죽음에 분노하던 진보인사들마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침묵한다. 당시의 죽음은 철거민들의 폭력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지한다. 이익이 되니까.
그러니까 표창장 위조하고, 월세 올려받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마음에 안 드는 놈들 죄다 쏴죽이고 베어 죽이고 물에 빠뜨려 죽일 수 있는 빈센조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변변치 못하게 경제성 평가를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고, 성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출국금지시킨 일로 범죄자로 내몰리는 그런 어설픈 인간들이 아닌 진짜 총을 쏘고 폭탄을 터뜨리고 칼질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런 범죄자가 차라리 낫다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전 보았던 어느 일본만화를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하다하다 그냥 다 죽여버리자며 복제인간들로 테러를 저지르고 다니던 만화였었다. 저 새끼들 그냥 다 죽여버리면 그것으로 속은 더 후련해지지 않을까?
노조라면서 최저임금인상에 반대하고, 노동자를 위한다는 진보주의자들이 근로시간단축에 반대한다. 좌파란 것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트집을 잡아서 비판을 일삼는다. 다 나와 상관된 이야기들이다. 덕분에 내 월급도 오르고, 쉬는 시간도 늘었고, 알량하나마 정규직까지 될 수 있었다. 노조를 때려잡고, 진보좌파들을 몰아내고 차라리 마피아 출신들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긴 그래서 미국이나 이탈리아나 범죄조직들이 노조와 깊이 결탁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멀쩡한 놈들이 도움이 되지 않으니.
무상급식을 철회한다는데도 찬성, 각종 사회적 경제정책들을 폐지한다는데도 지지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지식인, 언론, 정당조차도 결국에 기득권으로서 자신들의 이익이 최우선인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서는 나같은 노동자는 더 적은 임금에 더 오랜 시간을 일하고 해고도 쉽게 당해야 한다. 그런 주장을 펴는 정당이 진짜 노동존중의 정당이다. 빈센조가 필요한 이유다. 차라리 이탈리아 가서 마피아나 할까. 마피가아 오히려 그런 놈들보다 더 정의롭게 보인다. 하물며 이미 기득권에 속한 검찰 경찰 언론 지식인은 말할 것도 없다. 개같은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