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빈센조 - 블랙코미디의 역설, 마피아가 대기업을 이기는 비결

까칠부 2021. 4. 5. 07:03

예로부터 약자가 강자를 응징할 수 있는 방법은 둘 뿐이었다. 하나는 폭력이고, 하나는 조롱이다. 그래서 앙시앵레짐의 프랑스에서 귀족들은 반체제적인 팜플렛과 연극 등을 후원하고 했었던 것이다. 조선에서도 그래서 백성들이 탈을 쓰고 양반을 조롱하는 것을 용인해주고는 했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죽창들고 달려들지 않을 테니까.

 

물론 그런다고 아무나 아무렇게나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가 있었고 한도가 있었다. 기껏해야 그래도 되는 피래미들만 그 대상이 되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그런다고 뭔가 달라지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제저녁 유행처럼 귀족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연극을 보고서도 오늘 다시 프랑스의 귀족들은 온갖 사치와 향락을 누리며 프랑스 시민들의 고혈을 쥐어짜고 있었던 것이다. 양반네들의 위선과 타락을 조롱하는 탈춤을 함께 웃으며 보고 나서 오늘은 또 누군가 무고한 백성을 빚으로 쥐어짜 노비로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은 폭력이다. 힘으로 위아래를 모두 뒤엎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빈센조가 결국 코미디로 흐를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그나마 처음에는 바벨을 상대하는 방법이 꽤 그럴싸하더니 결국 코미디로 흐르고 만다. 정상적으로 상대해서는 고작 마피아따위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진짜 권력과 싸워 이길 수 없는 것이다. 현직 검사와도 손잡고, 국정원 요원의 도움까지 받고 있지만 그래봐야 저들이 가진 진짜 힘에 비하면 한 줌이나 될까말까다. 최순실이 몰락한 이유도 그만한 힘을 가진 또다른 세력과 적대했기 때문이었지 진짜 약자들의 반격에 응징당한 것은 아니었다. 최순실이 조선일보와 불편한 관계가 되면서 그 지령을 받은 한겨레와 JTBC가 총대를 맨 결과이지 지금 보다시피 한겨레나 경향, 오마이뉴스 등 진보언론들이란 결국 보수언론의 이름만 다른 지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하물며 마피아 따위가 일개 평검사 하나 국정원 요원 하나의 도움을 등에 업는다고 바벨이라도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검찰출석할 때 입은 옷의 브랜드나 중대뉴스로 다루는 언론환경 아래서.

 

그래서 결국 일정 시점을 지나면 싸움은 코미디가 되고, 혹은 빈센조 개인의 활극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그마저도 그보다 더 큰 폭력을 동원한 최명희 앞에서 무력화될 상황에 내몰리고 말았다. 이게 정상이다. 원래 빈센조가 마피아 보스와 적대관계가 아니었어도 바벨 정도 되는 기업에서 충분한 돈만 쓴다면 의리따위 상관없는 게 바로 범죄조직의 속성이다. 그런데도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하며 적대하는 대중이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금가프라자 상인들이 강한 이유는 결국에 서로의 일을 자기일처럼 여기는, 한 점 의심없이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연대였다는 것이다. 개개인은 그냥 약자에 지나지 않는다.

 

바벨의 비자금을 세탁하기 위한 갤러리에 침입해서 페이퍼컴퍼니와 관련한 자료들을 입수하는 장면이 얼마나 억지스러운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로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저 정도 철저하게 자신을 지키는 기득권을 상대로 고작 마피아 출신 변호사와 상인들이 모여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최명희가 늦었다. 더 일찍 마피아를 동원해서 빈센조를 제거했으면 좋았을 것을. 

 

거의 마지막이다. 이제 거의 끝이 아닐까? 어떻게 마무리될까? 박재범 작가가 좋은 점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일 것이다. 오래전 황규영의 무협소설을 즐겨보던 느낌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억지로라도 정의는, 선은 어려움없이 승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피곤하다. 지친다. 고단한 일상에 드라마까지 힘들면 나같은 서민은 어쩌란 것인가.

 

빈센조와 금가프라자 상인들의 활약으로 인한 통쾌함이 오히려 역설로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굳이 그런 활약까지 필요없이 별 일 없이 죄를 지은대로 처벌받고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아, 정상이라 했는가? 그러나 과연 인류역사에 정상적인 국가나 사회가 존재한 적이 과연 있기는 했을까? 그러니까 빈센조같은 마피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겠지만. 차라리 마피아와 같은 조직범죄가 대한민국의 기득권보다 더 정의롭다.

 

금가프라자는 대한민국 사회의 대중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오래전에는 폭력도 정보도 정의도 모두 강자들이 독점하고 있었지만 정보화시대인 지금 대중 역시 온전히 그로부터 소외되어 있지는 않다. 어떻게 그 힘을 모으는가에 따라 오히려 강자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 역시 믿음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통쾌하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