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쌍교 2020 - 강소어와 비육지탄...
내가 늙기는 했다. 어렸을 적에는 소어아같은 악동같은 주인공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화무결같은 청명하고 의기로운 인물이 좋다. 워낙 어렸을 적에는 세상에 불만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제멋대로 행동하며 무림의 강자들을 말과 꾀로 골려주는 소어아가 좋았다. 그러나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세상에 불만이 많아진 이유가 무엇인지.
이를테면 삼국지에서 유비와 조조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분명 조조는 파천황의 인물이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그 능력으로 후한말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첨병에 서 있었다. 다만 그래서 조조가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열고자 했던 새로운 시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얼핏 유비는 구질서를 쫓는 고루한 인물로, 조조는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혁명적인 인물로 여겨지기 쉽지만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이 세운 촉과 위가 보여준 가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역사 속에서 생명을 가지고 이어지고 있었는가.
구시대의 가치라지만 유비가 추구한 충과 효, 인과 의, 덕과 예는 이후 2천 년의 역사를 거치며 한결같이 존중되어 온 기본이고 근간이었던 것이다. 반면 조조가 추구한 실력과 이해에 충실한 질서란 조위가 후한을 멸망시킨 것과 같은 과정일 거치며 무너지는 것으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당장 조위를 이은 서진의 후신 동진에서마저 차라리 유비의 촉한을 추앙했지 조조의 위를 추앙하지는 않았었다. 촉한정통론은 서진이 멸망한 그 순간 이미 하나의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어차피 조위도 길게 이어지지 못했으니 진정 역사의 승자라면 조조가 아닌 유비가 아닐까. 원래 삼국지 마니아들도 그래서 유비에서 조조로 옮겨갔다 다시 유비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물론 원작보다 더 각색된 부분이 있기는 하다. 원작에서 소어아는 제멋대로기는 해도 저렇게까지 찌질하지는 않았었다. 덕분에 화무결의 고고함만 더 돋보이는 중이다. 무공도 별 볼 일 없어, 꾀라고 해봐야 잡스런 수작들 뿐이고, 결국 그 좋은 머리로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욕망과 감정 뿐이다. 그게 피곤하다. 화무결이 나오는 장면은 흥미롭고 재미있는데 소어아만 보이면 짜증부터 치민다. 오래전 양조위가 주연한 1984년판을 봤을 땐 이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양조위가 얼마나 소어아를 잘 연기했는가를 알겠다. 그보다 각색의 방향이 너무 최근의 트랜드에 맞춰져 있다. 특히 여자에 대한 인식이 반페미 탈레반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지 않은가.
그나마 의의를 찾으려면 곤륜과 아미라는 무협에 흔히 등장하는 실제 배경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직접 볼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대만이나 홍콩에서 무협드라마를 만들면 산이라고 해봐야 설악산이나 지리산인 경우도 있고, 소림사라고 나왔는데 법주사나 불국사이던 경우도 심심치 않았으니. 중국의 실제 자연과 문화를 중국의 시점에서 실제 볼 수 있다는 점은 무협마니아에게 축복일 것이다. 그래봐야 강소어의 찌질함 때문에 영 보는 재미가 없기는 하지만.
구무협의 완결판 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이어 신무협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다정검객무정검'이 고룡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래서 더 익숙하기도 하다. 한국 구무협을 즐겨 봤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벽사신군이며 십대악인이며 악인곡 같은 설정들이 매우 낯익다. 마두들에게 길러진 공동전인이란 설정도 익숙하다. 이게 벌써 1970년대 초에 나온 작품이다. 이 이상의 작품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 무협 마니아들에게는 저주이기도 하다. 어째서 여전히 중국문화권에서는 김용과 고룡의 작품들만을 반복해서 재생산하고 있는가.
또 하나 느낀 것은 주연 여배우들이 매우 한국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있더라. 비슷한 몽골리안계지만 중국과 한국과 일본의 미적기준은 서로 상당히 다른 편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도 꽤 다르다. 그래서 중국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외국 드라마임을 느끼게 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절대쌍교는 느낌이 꽤 다르다. 중국드라마를 안 본 지 좀 되어서 그런가. 개인적인 느낌이다. 대수로운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