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표절논란에 대해
디스코라는 장르를 특정하는 기준은 다른 것 없다. 그냥 아무 음악이나 갖다가 특유의 베이스라인을 얹어 주면 된다. 사실 그런 단순성 때문에 디스코를 폄하하는 시각이 생겨나기도 했었고, 그로 인해 디스코 폭파의 밤이라는 초유의 문화말살이 시행되기도 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비슷한 스타일이니 디스코는 다 표절인가.
김현철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었다. 바로 본질을 꿰뚫는 한 마디였다. 태초에 여러 음악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비슷한 것들을 모아 장르라 부르는 것이다. 그것을 클리셰 이전에 장르적 유사성, 혹은 동질성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판타지소설에서 마법사가 쓰는 파이어볼 같은 것이다. 판타지소설에서 마법사가 파이어볼 쓴다고 다 표절일 것인가. 악인들의 공동전인이 등장한다고 모두가 절대쌍교의 표절인 것은 아니다. 그 전에 절대쌍교조차 김용과 와룡생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이다. 김용과 와룡생은 이전의 기협소설들에 영향을 받았고.
서부영화에서는 뻔하게 마을 한복판에서 결투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고, 공포영화에서는 외딴 집에서 괴물들에게 쫓기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긴 고립된 공간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탐정이 범인을 추리하는 것은 추리물의 고전적인 구성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코난도 그렇게 하고 김전일도 그렇게 하며 우콘도 그렇게 한다. 그래서 다 표절이냐면 개소리 마시라 말해주고 싶다. 표절이란 그 이상의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에서의 인용을 특정지을 수 있을 경우에 한정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럼에도 작가의 편리를 위해 그 이상의 노력을 포기하고 다른 이의 상상력에 기대려 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아마 일본에서 건너 온 놀이일 것이다. 사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어린 시절 놀았던 많은 놀이들 가운데 일본에서 건너온 것들이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놀았던 놀이를 매개로 데스게임을 만든다. 누군가의 그런 아이디어에 착안하여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 또한 하나의 장르이며 유사성인 것이지 표절일 수는 없는 것이다. 죽이는 방식부터 어떤 초월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의 악의에 의한 것이다. 알지 못하는 어떤 힘에 의해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무대에서 인간이 만든 도구에 의해 놀이는 진행되고 살인까지 이루어진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인간의 악의이며, 그 악의 아래 펼쳐지는 군상극인 셈이다. 외형이 비슷하다고 내용까지 같지는 않다.
결국은 뭐냐면 권력이다. 권력이 되고 싶은 것이다. 심판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벌을 주고 싶은 것이고, 그를 통해 자신이 권력임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타진요 사태 이후 내가 주목하며 보는 부분이다. 죄가 있어서가 아니다. 잘못이 확실하게 있어서가 아니다. 없어도 만든다. 비슷하면 그것으로 죄가 되고 잘못이 되어야 한다. 그를 판단하고 정의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권력이 무지와 만난다.
박정희나 전두환도 그랬었다. 음악이 저질이다. 창법이 저속하다. 드라마가 미풍양속을 해친다. 하긴 일본노래와 비슷하다며 수많은 노래를 금지시킨 것이 또 이승만 때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뭔가 제대로 알고 떠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오징어게임' 표절논란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