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바다 - 격세지감, 넷플릭스를 예찬하며
아마 80년대 말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대중문화 관계자들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째서 SF에 투자하지 않는가. 대답은 두 가지였다. 아니 사실상 하나였다. 돈이 안된다. 한국사람은 허무맹랑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시장에서 SF가 크게 흥행하는 경우란 매우 드물었다. 한국시장에서 SF는 거의 비디오시장에서나 마니아들 위주로 소비되고 있을 뿐 몇몇 블록버스터를 제외하고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과연 그렇게 리얼리스트라서 SF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면 아바타는 뭐고, 스타워즈는 뭐고, 인터스텔라는 뭐였을까?
아마 역시 SF가 한국시장에서 홀대받은 이유 가운데 첫번째는 어느 개자식이 번역했는지 모를 공상과학이라는 요상한 번역 때문일 것이다. 공상이란 말 그대로 헛된 상상이다. 근거도 없고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그야말로 개꿈같은 헛된 상상인 것이다. 80년대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허무맹랑하다며 그나마 싹을 틔워가던 SF를 아예 작살낸 것도 그런 인식에 기반한다. 현실에 없는 것이기에 허무맹랑하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유해하다. 언론과 교육기관을 통해 주입한 그같은 인식의 폐해가 아주 뿌리깊었다. 사람들은 SF를 허무맹랑하다고 보지 않고, 보지 않으니 돈이 안되므로 투자하지 않는다. 그것이 불과 몇 년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격세지감이다. 설마 우리나라에서 '승리호'같은 제대로 된 스페이스오페라 영화가 제작될 줄이야. '고요의 바다'는 더구나 겉보기에 하드한 SF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그래도 호쾌한 활극을 보여주는 스페이스오페라에 비해 정적이고 진지한 분위기라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기 어려운 장르다. 물론 만들기도 어렵다. 사실 그래서 '고요의 바다'에 대한 실망도 무척 컸다. 과학적인 고증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분위기는 하드SF인데 내용은 그냥 SF라는 형식만 빌린 흔한 스릴러물이다. SF라는 껍질을 벗겼을 때 과연 흥미롭게 볼만한 개연성이나 매력이 드 드라마에 있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드라마가 한국에서 한국 배우와 한국어를 사용해서 제작되고 방영되는 자체가 내게는 대단한 것이다.
내가 더욱 넷플릭스란 매체에 대해 여러 이슈들에도 호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넷플릭스라서 가능했다. 과연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오징어게임'이나 '고요의 바다'와 같은 드라마가 가능했을까? 이렇게 돈이 안 된다고 모두가 포기한 장르들이 실제 제작되어 사람들 앞에 선보인다는 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 밖에 방송사와 제휴하여 제작한 드라마들 역시 이전과 다른 형식과 장르의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일단 투자하고 결과만 좋으면 재투자한다. 어디에 투자하고 누구에 투자하는가는 넷플릭스의 역량이고 책임이며 어떤 결과를 내놓는가는 제작자의 재량이다. 그러니까 이런 드라마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아직 많이 어설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런 하드한 SF는 아직 미국을 제외하고 제대로 만드는 나라가 드물다. 그만큼 어렵다. 소설로 쓰기도 어렵고, 만화로 그리기도 어렵고,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하기는 그보다 더 어렵다. 그래서 차마 뭐라 욕하지는 못하겠다. 지루하고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내용에도 이정도라도 어디인가. 나는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는 SF란 장르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봤었거든. 고유성 망하는 것 보고 난 뒤에는 더욱.
어렸을 적 꿈이 SF작가였다. 지금도 그래서 틈틈이 습작을 쓰고 있다. 유일한 취미다. 다만 완성된 작품을 내기란 역시 내 역량으로 너무 어렵다. 그래서 더 반가운 것이다. 더 실망스런 것이고. 그래도 그 자체가 좋았다. SF 마니아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