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심판 - 가해자의 비겁한 눈물에 대한 분노
확실히 인간이 어떻게 자연선택에 의해 악해지는가를 알 것 같은 에피소드였다.
곽도석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곽도석은 물론 죽은 희생자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거는 것을 주저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이기가 그녀를 살렸고, 그녀를 살리고자 했던 이타가 곽도석을 죽였다. 그러면 결국 살아남는 것은 누구인가?
언젠가부터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여성이 자신의 수치를 지키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타인을 희생시키는 건 당연하다. 여성의 정조와 자존이야 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다. 진짜 그러한가? 더구나 사진도 지웠다면서?
그런 분위기를 드라마가 만들어간다. 그런 상황에서 진술하지 않는 건 장당하다. 오히려 피해자다.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이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진실을 감춘 그녀의 눈물은 피해자이기에 정당하다. 그녀는 과연 피해자이기만 한가? 그러면 죽은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식물인간이 된 사람은?
반여성주의가 크게 확산되기 시작한 계기를 기억한다. 폭력을 당하는 여성을 지키기 위해 뛰어들었는데 오히려 여성의 외면으로 인해 전과자가 되었다. 여성을 구하고자 하는 행동이 자신을 가해자로 만들었다. 그런 여성을 언제부터인가 성인지감수성이란 이름으로 옹호하기 시작했다. 그런 여성을 과연 남성이 지킬 필요가 있는가?
안타까운 사정은 이해하지만 차라리 울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 자기연민이다. 내가 이만큼 불쌍하다. 내가 이만큼 죄책감을 느끼고 있고 괴로워하고 있다. 그리고 끝이겠지. 영영 진실은 밝히지 않을 것이고 가해자와 피해자는 뒤바뀐 채일 것이다. 하지만 울었으니 끝이다. 내가 제일 불쌍하니까.
끝까지 보고 나서 쓰려 했는데 하도 열받아서. 하긴 사회분위기도 문제다. 그런 사진이 퍼지면 피해자를 오히려 죄인으로 만든다. 그런데 과연 어떤 여성인들 그것을 견뎌낼까?
미디어가 가장 큰 원흉일 것이다. 근본이다. 어떻게 세상은 이렇게 되어 버렸는가. 한숨만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