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과 한류, 보편성에 대한 집착과 성과
원래 고전 유학에서 중요시여겼던 것은 리理가 아닌 기氣였다. 당장 중용만 보더라도 무수이 변화하는 실체로서 기를 그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희가 성리학을 만들고 난 뒤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양명학도 나오게 된 것이었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에 있지 그 밖에 더 이상의 다른 무엇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요하를 건너 한반도에서는 그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조선말에 이르면 이이의 주기론을 이어받은 서인 가운데서도 일심론이라는 게 나타나고 있었다. 심이란 기이면서 리다. 각개의 변화이자 현실이면서 그 모든 근본이다. 그래서 조선의 사상가 가운데 유독 이황이 돋보이게 되는 것이다. 원래 하나였던 이와 기를 분리하고 그 가운데 리를 중심에 놓으려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리란 불변성이다. 당연히 절대성이다. 그러므로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보편성일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그것을 믿었다. 모든 시대 모든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치, 단 하나의 정의를. 그래서 바로 조선 사대부들만의 리얼리즘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의 초상화를 보면 그저 놀랄 수밖에 없다. 정교한 표현이 어려울 것 같은 붓으로, 아직 서양식 화풍이 들어오기도 전에 조선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사실적인 화풍이 완성되고 있었다. 오죽하면 조선시대 그려진 초상화를 근거로 모델이 되었던 역사적 인물의 질병까지 유추할 수 있었겠는가. 어떤 시대에도 같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공통되어야 한다. 그런 보편성이 조선만의 리얼리즘을 완성시켰다. 초상화만이 아닌 인간의 세계 전반을 아루는 가치로써 보편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민족인 여진은 물인가 인인가. 그를 과연 보편의 세계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아닌가.
최근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에서 영향력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보편적이다. 국경과 민족을 넘어 대부분 사람들에게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반적인 가치와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럴 수 있기를 믿는다. 한국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관없는 다수로부터 어떻게 평가되고 받아들여지는가를 끊임없이 신경쓰고 그를 반영하고자 한다.
과거 미국은 국경을 초월한 그 자체로 보편적인 존재였었다. 미국의 정의는 세계의 정이고, 미국의 가치는 인간의 가치였다. 반면 한국은 그런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이 추구할 수 있는 오로지 한국인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에 천착한다. 나의 당연한 이야기들이 너에게도 당연하다. 나에게 뻔한 이야기들이 너에게도 뻔하다.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된다.
조선의 성리학이 현대의 한국 대중문학에 끼친 결정적 영향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리를 추구한다. 절대성을 추구한다. 보편성을 추구한다. 그저 한국과 한국인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추구한다. 그를 위한 노력이다. 그를 위한 시도들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대중문화는 어느새 국가의 위력과 상관없이 세계의 대중속에서보편성을 획득한다. 너무 겉넘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다.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