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바둑 리쉬안하오의 치팅논란과 관련해서
끊임없는 약물논란에도 보디빌딩이 아직까지 대중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것은 약물만으로는 불가능한 인간만의 재능과 노력의 영역이 아직까지 크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프로보디빌더라면 약물은 기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아마추어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쓰이는 스테로이드는 물론 성장호르몬에, 인슐린에, 아무튼 근육이 자라는데 도움이 된다 여겨지는 약물들이 거의 제한없이 쓰이다시피 하는 중이다. 물론 대중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 환호한다. 약물을 쓰는 건 아는데 그럼에도 그들이 이루어낸 성과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인간이 약물의 힘을 동원해서도 이루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결과다.
약물을 쓴다고 과연 모두가 프로 보디빌더들처럼 몸이 좋아지는가. 아니 약물을 쓰는 건 같은데 어째서 누군가는 로니 콜먼이 되고 누군가는 그냥 근육 좀 있는 돼지로 끝나는가. 무엇보다 미스터 올림피아 무대에 설 수 있는 보디빌더조차 전체 가운데 고작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타고난 유전자가 다르고 노력이 다르다. 기술이 다르고 열정이 다르다. 단지 그 위에 약물이 더해지는 것 뿐이다. 약물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마 다른 종목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약물이라는 기술까지 동원해서도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한계란 어디까지인가. 만일 모든 스포츠에 약물이 허용된다면 그것은 그러한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극한의 약물사용으로 인간은 어디까지 빨라질 수 있고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가. 그래서 약물 논란에도 여전히 레전드인 선수가 있고 대중적인 스타로 떠받들어지는 선수들도 있는 것이다. 약물을 사용한 것을 알았어도 그가 이루어낸 것이 아주 가치가 없지는 않다. 다만 그럼에도 오로지 순수한 자신의 재능과 노력 만으로 이루어낸 성취들을 위해서라도 공정한 경쟁에서 약물은 배제되는 것이 옳다.
서양에서 체스의 인기가 급락한 이유일 것이다. 개인간의 여가활동으로서 체스의 인기는 여전하지만 프로스포츠로서 체스의 위상은 전과는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인공지능에 의해 일찌감치 인간의 노력과 실력이 박살난 것도 있었지만 인공지능의 개입으로 별다른 재능이나 노력 없이도 결과가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컸을 것이다. 보디빌딩이나 파워리프팅과는 달리 인공지능이 개입한 체스란 인간의 존재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므로.
리쉬안하오의 치팅논란이 바둑계에 있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슬금슬금 바둑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 관심을 보일 정도로 꽤나 크게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부정을 저지르는 의혹을 가지는 선수가 최강자들을 누르고 승자로 올라서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공지능에 의해 인간 프로기사들이 만방으로 박살나며 관심이 시들해진 상황에서 아예 인공지능을 사용한 치팅으로 승자가 갈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바둑에 과연 자신의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이유가 있을 것인가.
인간이 두는 바둑을 보고 싶은 것이다. 인간으로서 같은 인간이 보이는 재능과 실력에 감탄하며 열광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은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인공지능의 실력을 보고 싶으면 해당 프로그램을 찾아 단순히 실행시키기만 하면 된다. 인간의 바둑에 들이는 비용과 노력에 비하면 한참 적은 수고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인간이 두는 바둑을 챙겨 보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바둑마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좌지우지한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
모르긴 몰라도 프로바둑이 망한다면 지금의 방관과 방치가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프로기사들이 반발하는 이유인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바둑인생까지 걸고 그를 비판하며 바로잡기를 요구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 바둑협회는 당장의 성과에 고무되어 방치하고 있는 중이다. 그 미래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
바둑에 크게 관심이 없다. 어려서 몇 번 둬 보기는 했는데 역시 나에게는 너무나 먼 세계일 뿐이다. 그래서 전혀 몰랐는데 어쩔 수 없이 최근 귓등으로 전해듣게 되었다. 꽤 오래된 것 같다. 논란 자체는. 이런 나조차 알게 된 이슈가 이리 방치되고 있는 것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물론 그럼에도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냥 오지랖이다. 의미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