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슈퍼로봇대전과 플과 플투의 기억

까칠부 2023. 10. 4. 17:34

요즘 슈퍼로봇대전이라는 게임을 다시 하느라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지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다. 진짜 오래되었다. 이미 20세기부터 단지 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의 로봇들이 나온다는 이유로 진짜 미친 듯 빠져들어 즐겼던 것 같다. 특히 최근 PC로도 발매된 시리즈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일하다 다치고 시간이 남는 틈을 이용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이다. 요즘에는 그 가운데서도 zz건담의 캐릭터들인 플과 플투, 그리고 건담 UC의 캐릭터인 마리다에 빠져서 굳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모든 노력과 지원을 쏟아붓고 있는 터다. 비로소 떠올렸다. 아주 오래전 보았던 플과 플투의 최후를.

 

아마도 성향적으로 보수에 가까울 내가 진보와 가까운 이념적 지향성을 보이는 이유일 터다. 플과 플투 같은 안타까운 사연이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그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아니 인간이 아니더라도 그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비극은 다시 없었으면 하면 바라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기동전사 건담UC의 캐릭터 중 하나인 마리다는 내게 있어 구원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터였다. 어찌되었거나 살아있었기에 불우했던 과정과 상관없이 딸처럼 사랑해주는 사람도 만났고 이해해줄 수 있는 이들과도 어울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미리다의 죽음을 인지하고 슬퍼하는 이들이 있었다. 플투의 죽음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그저 사람들에게 스치고 지나가고 말았는가 떠올리게 된다. 고작 10대 초반의 아이들이었다. 그저 전쟁을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고 죽어갔던 아이들 가운데 그래도 마지막에는 모두의 속에서 함께 죽음을 맞이한 이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만한 현실을 누리기 위해서는 걸맞는 자격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1만원을 오히려 젊은 세대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한 이유였다. 주 52시간도 주휴수당도 그들은 부정적이었다. 자격이 없는 이들은 더 오랜 시간을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며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격이 있는 이들만이 더 적은 시간을 일하며 복지를 누리고 충분한 임금을 받으며 인간적인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아마 거기서 갈릴 것이다. 아무 자격이 없더라도 그를 위한 어떤 검증도 받지 못했더라도 단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조국이 말한 가붕게와 통하는 부분일 것이다. 전쟁 중 어렵게 살아남아 매춘부로 팔리고, 어린 나이에 낙태수술까지 받으며 불임이 되었더라도 마리다는 살아야 했다. 죽어간 다른 자매들 때문에라도 살아서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를 위해 마리다를 지켜주고 지지하고 함께했던 이들이 그녀가 살아간 이유였다. 자격과는 상관없다. 살아있기에 인간은 살아가야 한다.

 

아마 최근 젊은, 특히 남성들 사이에 유행하는 논리대로라면 복제인간으로 태어나 오로지 전쟁을 위해 길러진 마리다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행동일 것이다. 다른 자매들은 모두 전쟁 중에 죽었는데 매춘부로나마 살아서 아버지를 만나고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현실일 것이다. 어떻게 매춘부 따위가 다른 평범한 인간들과 동등해질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결국에 살아남았기에, 무엇보다 살아있기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우선할 수 있는 명제란 최소한 내게 있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불행한 최후를 맞은 플과 플투가 복제인간 자매인 마리다와 되도 않는 허튼 농담을 주고받으며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에서와 달리 10대 초반인 자신들의 나이대로 때로 철없고 때로 발랄한 평소의 모습을 드러내며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플과 플투의 최후에 안타까워하던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아, 이런 세상을 바랐었다. 이런 현실을 바랐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폭격에 목숨을 잃은 아이들도 이렇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20대 초반 처음 ZZ건담을 보았을 때 플이든 플투든 내게 그렇게 대단한 의미일 수 없을 터였다. 기동전사건담 UC는 아예 보다가 말았을 터였다.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플이란 이름의 소녀가 복제인간인 플투란 이름의 어린 소녀가, 겨우 살아남은 플트웰브, 아니 마리다라는 여성이 있었다. 존재한다면 행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살아있다면 행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최근 슈퍼로봇대전을 즐기며 플과 플투의 되도 않는 만담을 굳이 스킵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고 있는 이유다. 창작된 허구의 존재들이지만 마찬가지로 허구의 이야기 속에 그들은 살아 있었다. 허구의 존재일지라도 살아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행복해야 옳지 않겠는가. 2030 특히 남성들과 내가 구분되는 지점일 것이다. 자격은 필요없다. 그저 존재하고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 플과 플투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만다. 인간의 본질이다.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