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 아이와 건담이라는 주제의식
하필 지금에야 이 애니를 봤다. 아니 보기 시작한지는 꽤 되었다. 단지 중간에 일이 많아서 띄엄띄엄 보느라 이제야 22화를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야, 이렇게 건담이라는 주제의식에 충실한 작품도 처음이구나.
처음엔 그저 학원물인 줄 알았다. 시작은 인류에 위협이 된다 여겨지는 건담을 말살하고 배제하기 위한 학살부터 보여주었기에 복수물인가 여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주인공 슬레타 머큐리가 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거의 학원 위주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되었기에 이른바 백합물이라 불리우는 여성간의 감정을 다룬 학원물의 성격이 더 강했었다. 일상물처럼 그저 학교에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성장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동안 건담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많은 작품들에서 우주세기의 그것과 같은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첨예한 갈등과 충돌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았기에 더욱 그런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도 특이한 게 재미는 있겠다.
그런데 그렇게 가벼운 일상물처럼 그려지던 애니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어쩌면 우주세기의 그것들보다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아무로나 까뮤, 쥬도들은 어쨌거나 어른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자신들의 일상을 파괴하고 주변을 말살하려는 어른을 상대로 떠밀렸든 어쨌든 스스로 싸우기를 선택하고 전장에 섰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 애니에서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싸우는 상대는 같은 아이들인 학생들이었다. 어른의 사정 때문이었다. 지구와 우주라고 하는, 그 가운에서도 인류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대자본의 이해가 아직 순수해야 할 아이들 사이에도 정치적인 갈등과 대립을 만들어낸다. 아니 오히려 순수하기에 그러한 갈등은 타협없이 더욱 첨예하게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을 터였다. 자신과 다른 대상을 배척하고, 자기보다 못하다 여기면 차별하고, 자기보다 우월한 이들을 질시하고 증오하는, 오롯이 그같은 감정들에 충실한 너무나 순수한 민낯이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이 아이들다운 순수함으로 학원이라는 공간에 비극을 만들어낸다.
하필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다시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어나가는 뉴스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때문일 것이다. 어째서 샤아는 지구에 엑시즈를 떨어뜨려 지구의 인류를 절멸시키려는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는가. 아니 그런 샤아의 주장에 어떻게 그토록 많은 콜로니의 시민들과 후대의 사람들까지 지지하며 추중하고 있었던 것인가. 정당하게 교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군사력의 투사만으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비대칭적인 상태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들어낸다. 극단을 선택한다. 절망적이기에 더욱 극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좋아하던 순수하고 쾌할하기만 한 소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테러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잃어버린 이들을 위해 어제까지 같이 공부하던 이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역시나 같은 나이의 소녀처럼.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권력이 폭력으로 어린아이까지 죽이는데는 대단한 결심도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일상처럼 학살당하는 지구의 아이들과 일상이 아니기에 모두가 슬퍼하고 분노하는 학원의 죽음이 그래서 너무나 비교가 된다. 지구의 죽음은 저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학생들의 죽음도 저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래서 반란을 획책한다. 작품의 후반은 그래서 이제껏 휘둘려왔던 약자들의 반란일 것이다. 기성의 어른들에 대한 아이들의 반란이고, 지구를 지배하는 스페시언들에 대한 어시언의 반란이며, 인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배제되었던 과거의 상흔들의 복수였다. 무엇보다 이제껏 엄마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어 왔던 슬레타가 엄마와 에어리얼을 상대로 자신의 주장을 하려 한다. 정상을 벗어난 수단과 정상을 벗어난 대응, 그러나 그 끝에 모두가 바라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결과다. 한 번의 실패를 했었다. 지구와 우주의 화해라는 미오리네의 꿈은 오히려 이용당하며 참혹한 결과만 불러왔었다. 그래서 과연 아이들은 어른을 상대로 자신들의 순수한 의도를 관철할 수 있을 것인가.
서로를 이해하려 한다. 서로 다투고 갈등하다가도 서로의 사정과 이유를 듣고 이해하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아이들이기에 가능하다. 어른들은 안되는 것일까. 그런 어른들에 휘둘려 아이들끼리 죽고 죽이는 현실에서 아이들에 의해 어른들이 바뀌는 반전이란 불가능한 것일까. 물론 애니메이션이니까 가능하다. 현실에서는 얄짤없다. 그 아무로도 결국 전쟁의 도구로서 전장에서 싸우다 끝내 스러지고 말았다. 아이들에 의한 혁명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건담 애니메이션들의 주된 주제였다. 미오리네와 슬레타는 다를까. 이야말로 뉴타입이 아닐까. 아이들이다. 예전 X세대가 그랬고 지금 MZ세대가 그런 것처럼. 어른들에게 아이란 괴물이다. 건담의 주제의식이다. 오히려 학원이라 제대로 통했다. 잘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