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술과 식혜에는 고두밥인 이유?

까칠부 2023. 12. 5. 17:55

궁금했었다. 왜 고두밥인 것일까?

 

예전 우리집에서는 그냥 밥을 지어 식혜를 만들었었다. 그냥 밥솥에 밥을 지어서 그것을 엿기름으로 삭히면 식혜였었다. 식혜라기보다 어려서는 감주라 불렀었다. 그런데 레시피 찾아보니 식혜도 고두밥을 지으라 한다.

 

어차피 맥아에 포함된 효소가 전분을 당분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에 의해 익은, 즉 호화된 전분이다. 생전분을 당화하지 못하기에 익은 전분을 만들고자 열을 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두밥과 일반밥의 차이는 무엇인가?

 

물론 아주 없지는 않다. 일단 밥은 서로 달라붙고 뭉개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고두밥은 쌀알들이 그렇게까지 붙어 있지 않는다. 식혜든 술이든 잘 삭히려면 쌀알과 쌀알 사이에 효소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밥도 물을 부터 흩어주면 알아서 쌀알들이 떨어진다. 그래서 찬밥이나 즉석밥을 이용한 막걸리나 식혜의 레시피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혼란, 도대체 어째서 고두밥인 것이고 고두밥이 아니면 안되는 것인가?

 

답은 의외로 내가 너무 싫어해서 관심조차 없었던 찰밥에서 나왔다. 찹쌀은 일반밥처럼 지으면 알아서 삼층밥이 된다. 삼층밥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알겠다. 사실 일반 멥쌀로 밥을 지으면 어지간해서 바닥이 타는 경우는 있어도 위가 설익는 경우는 드물다. 물이 끓으면 쌀알도 안에서 따라서 순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찹쌀은 아니다. 찹쌀은 아밀로펙틴이 100%라 호화되는 순간 서로 달라붙어 그대로 솥에 늘어붙게 된다. 그래서 찹쌀은 일반밥처럼 솥이 아닌 찜기로 익혀 밥을 지어야 한다. 이제 감이 잡히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원래 술이든 식혜든 멥쌀보다는 찹쌀로 만드는 쪽이 당화에 훨씬 유리하다. 더구나 찰기가 적었던 예전 멥쌀을 생각하면 더욱 그 차이는 컸을 터였다. 그래서 예전에는 식혜든 술이든 떡이든 찹쌀을 더 흔히 많이 자주 사용했었다. 밥을 만들 때도 찰기를 주기 위해 찹쌀을 섞었다. 그렇다보니 찹쌀로 식혜나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하게 쌀을 찌는, 이른바 고두밥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 필요치 않은, 아니 품종개량의 결과 찹쌀만큼이나 찰기가 짙어진 멥쌀에도 쌀을 찌는 과정이 필수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생쌀발효는 아예 그냥 생쌀에 누룩과 효모, 그리고 물을 부어 발효를 시킨다. 고두밥도 일정량의 물을 누룩을 섞어서 발효를 일으킨다. 물론 맛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쌀알이 깨어지면 술이 시어진다 그런다. 그런데 역시 이것도 의문이다. 그러니까 생쌀발효로도 술이 시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너무 달아 문제지 시어서 문제인 경우는 없다. 결론은 고두밥으로 술을 빚는 것이 나아 보이기는 하는데 반드시 필수적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손이 너무 많이 간다. 시간이 너무 걸린다. 더구나 멥쌀이라면. 차라리 일반밥을 찬물에 넣어 풀어준 뒤 다시 불리는 쪽이 훨씬 빠르고 수월하지 않을까.

 

문제는 지금 집에 남은 술통이 없다는 것. 발효통을 더 늘리면 그거 다 먹다가 알콜중독으로 죽을지 모른다. 일단 발효통 하나는 비우고 나서 생각해봐야겠다. 생쌀발효로만 술을 만들고 있는데 일반밥으로도 시도해 봐야지. 그보다는 그냥 생쌀을 거름망에 넣어 물에 담가 익히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일하며 취미생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귀찮은 과정은 생략하고 싶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면.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