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좋아하지만 홉의 쓴맛은 싫다? 산업화와 대중성, 그리고 시대의 변화
커피를 좋아하는데 커피 특유의 쓴맛과 신맛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믹스커피들 보면 커피의 개성을 최대한 죽이는 방향으로 조합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맥심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한 번은 초콜렛 먹고 커피를 마셨는데 진짜 아무 맛도 안나더라. 초콜렛의 단맛이 먼저 들어가니까 정작 맥심에서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의 선입견 때문에 지금도 당장 귀찮아서 믹스커피를 먹더라도 맥심은 절대 피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커피가 다 그런 것 아닌가. 초콜렛의 맛과 향이 얼마나 강한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간식 먹을 때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 초콜렛 들어간 단과자나 빵이랑 커피를 같이 곁들여 먹는 것이다. 적당한 산미와 적당한 쓴맛과 커피의 강한 풍미를 곁들이면 당연하게 초콜렛의 맛도 더 살아난다. 원래 커피든 홍차든 단 음식과 같이 먹자고 발전해 온 것이다. 그런데 단 거 좀 먹었다고 맛이 죽어 버리면 그게 커피일까? 실제 예전에도 커피의 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맥심 좋아라 하던 사람의 얘기도 들었던 적이 있다.
얼마전 맥주를 직접 만들면서 진짜 엄청 진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어느 정도 진했냐면 찌꺼기까지 완전히 걸러내지 못해서 과장 조금 보태서 거의 막걸리 수준이었다. 홉도 어마무지하게 넣었다. 알콜 도수도 높고, 단맛도 강하고, 그러면서 홉 특유의 쌉쌀한 맛에, 시트러스 향이 강해서 처음 무슨 귤주스 잘못 꺼냈는 줄 알았을 정도였다. 그러고 나서 흥미가 생겨 찾아보니 원래 맥주란 그렇게 독특한 풍미가 강한 술이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맥주가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이 싫어할만한 맛과 향을 줄이다 보니 지금의 밍밍한 맥주가 된 것이다. 더구나 한국 사람들이 홉의 쓴 맛을 싫어해서 더욱 한국 맥주는 홉향이 느껴지지 않는 말오줌이 되어 버린 것이고. 아니 맥주를 마신다면서 홉향은 싫고 탄산의 목넘김만 좋아 한다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소주도 마찬가지다. 얼마전부터 증류식소주가 꽤나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데 그런데 시중에서 유통되는 증류식 소주 대부분이 소주 특유의 맛과 향을 최대한 죽인 감압식 소주라는 것이다. 그냥 집에서 상압식으로 만들면 조금 과장 더 보태서 물을 추가해서 희석하면 숭늉맛이 날 정도로 곡식의 향이 진하다. 더구나 원래 술을 발효할 때 누룩을 쓰니 누룩향도 강하고, 증류기 안에서 술이 눌러붙어 탄내가 나기도 한다. 물론 탄내는 어지간하면 피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또한 너무 화력이 강해서 술이 타거나 하지 않도록 꽤나 신경써서 관리하는 편이다. 아무튼 그런 것들이 싫다 하니 대충 아무 맛도 향도 안나는 감압식이 대세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웃기는 일도 벌어지는데, 원주를 그리 신경써서 만들고서는 정작 증류는 맛과 향을 죽이는 감압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보드카를 먹지. 보드카야 말로 아무 맛도 향도 없느 순수한 알콜의 극치일 테니.
사실 상압식으로 증류할 때 소주에서 나는 맛과 향들이야 말로 해외에서 명주라 불리는 술들이 중요하게 내세우는 술의 개성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좁쌀로 증류주를 만드니 술에서 사과향이 나더라. 아마도 역시 좁쌀이란 재료와 누룩과 더불어 발효조건이 만들어낸 조화의 결과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수에 중국 누룩을 써서 고량주를 만드니까 또 시중에서 파는 고량주에서와 다른 강한 곡식의 향에 과일향이 진하게 풍기는 독특한 풍미가 나온다. 역시 집에서 예전부터 하던대로 바로 불을 때서 그 열로 원주를 증류해서 만드는 상압식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소주들은 그런 것들을 어떻게든 죽이지 못해 안달하고 있으니.
그러고보니 어렸을 적 소고기뭇국을 먹으면 진짜 악취와도 같은 소고기 냄새가 아예 집안 전체를 진동했던 기억이 새롭기도 하다. 향신료를 써서 고기의 향을 죽인다고 아주 향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강한 고기의 풍미 만큼 강한 향신료의 향이 조화를 이루며 정신이 어찔할 정도의 맛과 향을 내는 것이다. 오래전 먹었던 시장표 순대국밥이 그랬었다. 역할 정도로 강한 돼지 내장의 냄새와 그에 맞서는 고추와 후추와 마늘의 향이 진짜 한 입 만 먹어도 제대로 포만감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청국장조차 냄새없는 청국장만을 찾게 되었으니.
아마도 산업화로 인한 대중화의 어두운 그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맥주의 경우만 하더라도 원래 생산된 인근에서만 소비되는 경우가 많은 지역맥주들이 거의 대세를 이루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냉장기술이 발전하면서 맥주가 지역의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지역에서 더 다수의 불특정한 대중들에 의해 소비되면서 그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게끔 개성을 하나씩 죽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돼지냄새를 아랑곳 않는 사람도 냄새를 죽인다고 못먹는 것은 아니지만 돼지냄새가 진짜 싫으면 아예 입에도 대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고기 냄새가 역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람까지 고려하려면 고기에서 아예 냄새가 나지 않는 쪽이 나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그런 냄새를 개성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선택지가 갈수록 좁아지게 되었다.
예전 종편의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던 이경규가 생선의 비린내를 살려서 요리해 달라 요구했던 장면도 그래서 지금 순간 떠올리게 된다. 비린내란 어떤 사람에게는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선에서 느낄 수 있는 강한 개성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은 그런 소수를 배려하지 않고 따라서 다수에 의해 그런 개성들은 갈수록 배제되는 방향으로 발전해간다. 이른바 보편이라는 것이다. 일반이라는 것이고, 표준이라는 것이고, 평균이라는 것이며, 극단적인 경우 이것을 정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크래프트 맥주같은 소수의 취향을 위한 다극화라는 것도 존재하게 된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그같은 소규모 생산자들마저 경계의 너머에 존재하는 또다른 소수의 소비자와 이어주고 있기도 한 것이다.
아무튼 커피를 좋아하면서 커피의 쓴맛과 신맛을 싫어하고, 전통주를 좋아하면서도 누룩의 맛과 향을 싫어하고, 맥주를 즐겨마시면서도 홉 특유의 쓴맛과 향에 거북함을 느낄 수 있는 대중이 실제 존재하고 오히려 대세인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청국장을 먹고는 싶은데 냄새는 싫다. 소고기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냄새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에 맞추는 것이 또한 시장이겠지만 그래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다시 살아나는 현실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집에서 에스프레소 내려 먹으면 커피의 맛과 향에 대한 고민도 사라진다. 커피는 초콜릿의 맛과 향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진한 것이 좋다. 맥주 역시 귤주스인가 싶을 정도로 시트러스 향이 강한, 사치스러울 정도로 홉을 듬뿍 넣은 진한 맥주가 좋다. 역시 맥주도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겠다. 그래서 막걸리도 이제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한다. 누룩의 향이 없으면 그건 맥주가 아니다. 내가 별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갈수록 집에서 무언가를 해 먹는 경우가 많아지는 이유다. 맛있는 것이 좋다. 그 맛을 위해 향이 강한 것을 좋아한다. 향이 강하려면 무엇보다 진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그래서 어디 나가서 먹으면 만족하고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무언가를 해 먹어야 하는 팔자다. 그래도 지금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고를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기는 했다. 어찌되었거나 시대는 발전해간다. 고무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