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도시 서민과 갓구운 빵? 전근대 도시의 주거환경

까칠부 2024. 11. 18. 17:18

중세 비스무리한, 꽤나 근세에 더 가까워 보이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른바 장르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장면일 것이다. 갓구운 따끈한 빵, 혹은 갓구운 빵에서 나는 고소한 향기... 당연히 그 배경이 대단한 귀족이거나 혹은 부유한 상인의 저택이 아니라면 그냥 거짓말이다. 그런 건 없었다.

 

당장 바로 이웃한 중국이나 일본같은 나라들에서 우리보다 더 일찍 매식업 - 즉 식당업이 정착해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것 없었다. 전근대의 도시에서 서민들의 주거에는 식사를 조리할만한 주방이 없을 때가 더 많았다. 당연한 것이 음식을 조리하려면 불을 다뤄야 하는데, 불을 다룰 정도면 더 많은 비용을 들여서 공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그런데 당장 한 푼도 아쉬운 처지의 서민들을 위해 그만한 투자를 했을 것인가.

 

유럽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아니 굳이 도시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시골에서도 서민의 주거에 빵을 구울 수 있는 오븐이 딸려 있는 경우란 거의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없었다. 아, 그러니까 사람 초대해 놓고 과자를 구워 내오는 것도 생판 오류가 된다. 물론 이 경우도 바로 불에 직접 구워 만드는 정도는 아니니 아주 오류까지는 아니다.

 

그러면 전근대 도시의 주거에서 식사는 모두 사서 해결했는가? 물론 다 그렇지는 않았다. 제한적이지만 서민의 주거 안에서도 조리가 어느 정도 가능하기는 했다. 바로 난방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난방을 위한 설비 위에 냄비 하나 올려서 간단한 스튜나 국 같은 것을 끓여 먹는 정도는 어지간히 가난한 집이라도 가능했었다. 당연히 아예 그조차도 없는 그야말로 하코방들도 그 시대에는 넘쳐났었지만. 무엇보다 그런 난방기구가 있어도 땔감을 구할 돈이 없어서 얼어죽는 일도 그 시대에는 비일비재했었다.

 

그래서 온돌이 사기라는 것이다. 하긴 온돌 역시 그것을 제대로 설치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공간을 따로 할애해야 하기는 한다. 그래서 도시화에 온돌은 꽤나 걸림돌이 되고 있기도 했다. 집의 층고를 높이기도 어려웠고, 단층일지라도 주방을 따로 할애해 두어야 했었다. 그런데도 구한말 한양의 인구가 10만을 넘어갔으니 이런 비효율도 따로 없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조선에서는 도시에서도 대부분 서민들이 온돌에 가마솥 올려서 직접 밥을 지어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밥을 지어먹기 곤란한 경우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한 매식업 또한 조선후기 이후 계속해서 발전해가고 있었다. 냉면과 술국을 배달시켜 먹기 시작한 것이 바로 조선후기였었다. 하물며 온돌도 없던 다른 나라들이야.

 

유럽의 도시들에 당연하게 빵을 구워 파는 빵집들이 들어서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니 도시 이외의 시골에서는 마을 공동의 화덕이 있어서 거기서 여러 집들이 날을 정해 한꺼번에 빵을 굽고는 했었다. 중세에는 바로 그 화덕 역시 영주의 소유라서 빵을 한 번 구울 때마다 세금을 내야 하기도 했었다. 아마 아침 일찍 빵을 막 구워 내왔을 때 사서 먹으면 갓 구운 빵을 운좋게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과연 집에서 구운 빵을 그렇게 먹을 수 있었을까 당연히 회의가 드는 이유다. 물론 판타지세계이니 현실과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는 있겠다. 

 

도시에서 서민가정이 집 안에 오븐과 화구를 두고 직접 음식을 조리해 먹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석탄이 중요하게 연료로 쓰이기 시작하고, 나아가 가스와 전기가 조리에 이용될 수 있게 되면서 그런 것들도 가능해진 것이었다. 어린 시절 음식 좀 해먹겠다고 아예 집앞에다 연탄풍로를 내어 놓고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이던 모습들을 떠올려 보면. 난방을 위한 연탄아궁이로는 한계가 있었던 터라 따로 연탄을 쓰는 풍로를 조리를 위해 쓰다가 석유를 연료로 하는 곤로를 쓰고, 이제는 그 역할을 가스렌지와 인덕션이 대신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비교해보니 바로 드러난다. 기술의 발전이 얼마나 주방이라는 공간을 쾌적하게 만들었는가를.

 

요즘 냉동생지 사다가 오븐에 구워 먹는 재미에 빠져 있는 터라. 진짜 갓구운 빵이 너무 맛있다. 막 오븐에서 꺼내서 반으로 쪼개면 닭고기처럼 찢어지면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향기가 진짜 죽음이다. 하지만 과연 과거 중세의 유럽에서도 그랬었겠는가. 혹은 근세의 유럽 도시들에서도 이런 일들이 가능했겠는가. 대부분 소설들의 배경이 되는 농촌들은 어떨까? 어째서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요식업이 발달했던 것일까. 중국에서 이미 송나라 때부터 요리에 석탄을 쓰고 있었던 이유다. 자칫 지나치기 쉬운 지난 시대들에 대한 오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