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몰트로 술을 만들다가, 누룩 만만세!

까칠부 2024. 11. 23. 20:47

흔히 중국의 3대 발명품으로 화약, 나침반, 종이를 꼽는다. 하지만 몰트를 사용해 술을 만들어보고 나는 깨달았다. 중국문명이 위대한 이유는 정작 다른 것이었다.

 

몰트로 술을 만들려면 먼저 일딴 몰트를 굵게 부숴야 한다. 너무 잘면 나중에 힘들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부어 일정한 온도 맞춰가며 당화를 시켜야 한다. 이것만 또 몇 시간인데 여기다 다시 효모까지 넣어야 한다. 맥주를 만들려면 여기에 홉을 넣어 끓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도대체 단계가 몇 개야?

 

그런데 누룩으로 술을 만들려면 쌀을 씻어서 찌고 그리고 누룩과 섞고 끝. 굳이 찌기 싫으면 밥솥에 밥만 해서 섞어도 상관없다. 누룩과 쌀을 섞어서 뒤집어주는 교반이 필요하다는데 사실 굳이 안해도 상관없다. 그래도 일단 물만 잘 맞추면 다른 것 안해도 대충 먹을 만한 술이 나오게 된다.

 

여기서 가장 짜증나는 건 몰트를 당화해서 워트로 만들어 놓으면 바로 상하기 쉽다는 것이다. 벌레도 잘 꼬이고, 잡균이 들어가서 술이 되기도 전에 변질될 수 있다. 그래서 당화하고 바로 차게 식힌 뒤 효모를 넣을 때 산도까지 맞춰 주어야 한다. 그런데 누룩은 일단 쌀을 쪄 놓으면 어지간히 덥고 습한 여름이 아니고서는 조금은 더 버텨준다. 그 사이에 누룩에 포함된 젖산균이 젖산이라도 만들어주면 만사 행복. 

 

몰트로 맥주 만드는 내내 그래서 짜증만 냈었다. 아, 귀찮아. 아, 귀찮아. 아, 귀찮다. 그래서 몰트 사다 놓은 거 죄다 때려넣고 위스키 만드는 중. 몰트만으로 발효시켜서 증류주 만들고 오크칩에 담궈서 가짜위스키 만들려고. 홉 넣고 끓이는 과정이 생략된 것만도 어디냐. 더구나 증류만 할 거면 굳이 워트에서 몰트찌꺼기를 걸러내지 않아도 된다. 중국식으로 증류하면 그냥 몰트째로 증류할 수 있다.

 

아마 중국에서 누룩을 만들어 술만드는데 쓰기 시작한 것이 후한대인가 그럴 텐데, 그 전까지는 중국도 역시 술 만들려면 과일에 붙어 있는 자연효모를 쓰거나 아니면 맥아로 당화시켜 만들거나 그도 없으면 곡식을 입으로 씹어서 만들었다. 예쁜 여자가 입으로 씹어 만들었다고 미인주라는 말도 이때 나왔다. 그때와 비교하면 진짜... 그냥 곡식과 누룩만 섞어도 술이 된다. 더욱 증류주면 술이 좀 시고 떫어도 증류만 반복하면 꽤 괜찮은 술을 얻을 수 있다. 누룩 만만세. 

 

그러면 포도는 어떤가? 포도로 술 만들어보면 안다. 단가가 다르다. 원가부터가 전혀 다르다. 단위면적당 생산량 많기로는 역시 곡식이다. 그 가운데서도 쌀과 밀이 최고다. 보리는 역시 술만들라는 곡식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누룩만만세. 중국인의 지혜다. 인류문명의 광명이다. 새삼 감탄한다. 이래서 중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