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PC주의와 검열의 추억, 대한민국에 가난은 없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대부분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30대 이하에서는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주 지랄같고 좆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내 또래들이면 거의 알 것이다. 오래전 만화가 어떤 취급을 받았었는지. 그래서 어떤 개같고 거지같은 검열들이 존재했었는지.
시발은 씨발같은 전두환이 쿠데타로 집권하면서부터였다. 괜히 록 좋아하고 만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면 눈쌀부터 찌푸리는 게 아닌 것이다. 지금이야 민주화운동을 깎아내리면서 박정희와 전두환을 찬양하는 것이 신세대 문화처럼 되어 버렸지만 최소한 내 또래들에게 그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박정희가 한국 대중음악을 어떻게 조져놨고, 전두환이 한국 만화를 어떻게 망쳐버렸는지 안다면. 아, 물론 전두환보다 먼저 한국만화를 작살낸 것은 박정희 정권에서이기는 했다. 그 씨발좆같은 합동만화. 원로만화가들 찾아가서 한 번 물어보라. 합동만화가 어떤 존재였는지. 한국만화의 발전을 최소 30년은 늦춘 놈들이 그놈들이고, 그놈들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박정희 정권과의 유착이었다.
아무튼 전두환이 집권하고 그 마누라인 이순자가 뭔 짓거리를 저질렀는가. 그래도 권력자의 마누라랍시고 여성단체들 이끌고서 뭔가를 하기는 했었는데, 그것이 교육상 좋지 않은 만화들의 내용을 순화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북한이 보고 선전에 쓸 수 있으므로 만화에 너무 가난한 판자촌이 나와서는 안되었다. 길창덕이나 신문수의 명랑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대부분 자기집을 가진 가정 출신인 것이 그 한 예일 것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족을 그리는 만화들에서조차 가족들이 각방도 쓸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자기집에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낮고 좁고 누추한 파자집이었는가면 그것도 아니었다. 울타리도 최소한 미국처럼 나무를 잘 다듬어 둘러놓아야 했었다.
당연하게 성별이 다른 부모자식이나 혹은 남매가 한 방에서 자는 것도 윤리적으로 좋지 않으므로 만화로 그려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부모없이 어렵게 사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수정의 만화 '일곱개의 숟가락'에서도 남매들은 방도 여럿 있는 집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집도 그나마 형편이 나아져서 방 두 개짜리 집에서 살게 된 것이 1980년대 후반부터다. 그러고보니 1988도 가만 보면 꽤 먹고 살만한 집안 이야기일 터다. 일단 단칸방이 아니지 않은가. 좁은 방 하나에 다섯이나 되는 일가족이 구겨지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만화에 그런 것을 그려서는 안되었다.
그러면 과연 이런 것들을 누가 심의하고 있었는가? 얼마전 세상을 떠난 고유성 선생님의 일화다. 어느날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삭제와 반려가 이루어졌기에 화가 나서 소주를 진탕 마시고 다 때려죽이겠다고 야구방망이들고 심의하는 곳으로 쳐들어갔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거기서 그를 맞이한 것은 놀라서 겁먹은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여학생들이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 여학생들에게 그나마 그 심의마저도 내맡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시대를 그리워하고 찬양하는 놈들이 있다는 자체를 내가 인정도 이해도 못하는 이유다. 그런 시대가 진짜 좋나? 심지어 그런 놈들이 표현의 자유랍시고 PC주의를 성토하고 있으면 그냥 어이가 가출하는 수준이다.
아무튼 내가 왜 이 이야기를 갑자기 끄집어내느냐면 바로 반PC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이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당연히 다양한 인종들이 존재한다. 흑인과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과 히스페닉과 아시아인과 기타등등등... 그리고 당연하게 성소수자들 역시 존재한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남자가 여자이고자 하고, 여자가 남자이고자 하고, 아예 그런 성별의 구분이 의미없는 경우도 있고, 분명하게 내가 사는 현실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실재아고 사실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불편하고 기분나쁘니까 그런 건 아예 다루지도 말라. 백인들끼리만 옹기종기 모여살던 19세기 이전의 유럽도 아니고 보다 다양한 인종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백인들만의 이야기였으니 백인들만으로 작품들도 만들어야 한다. 성소수자는 근대 이전에는 차별받던 존재였으니 동등한 인격으로써 비중있게 다루어서는 안된다. 왜? 내가 불편하니까.
현실에 다양한 정체성들이 공존하니 창작물에서도 그것들을 반영해야 한다. 그럴 수 있다. 현실에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자체를 인정할 수도 없고, 하물며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창작물에서 그런 것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서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왜? 어째서 흑인은 인어공주가 되면 안되고, 히스패닉은 백설공주가 되면 안되는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들이 아시아인이거나 흑인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인가? 중세를 배경으로 한 게임에서 성소수자가 등장하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참고로 중세 유럽에서 특히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기사들 사이에서 동성애는 공공연한 관습이자 문화이기도 했었다. 괜히 가톨릭 교회가 근친혼과 동성애에 대해 발작하듯 지랄한 것이 아니다. 이유는 하나다. 내가 보기 불편하다. 내가 보기 불쾌하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 군사독재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대중이 권력이 되어 있는 중이다. 마오쩌둥이 말했다. 저 새는 해로운 새다. 그래서 참새가 중국에서 멸종할 뻔했다.
타진요 사태 때도 그래서 내가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대중이 권력이 되었다. 대중이 과거 권력이 하던 짓거리를 반복한다. 말 그대로다. 나의 심기를 거스르게 하는 것이니 금지해야 한다. 흑인은 못생겼고 히스패닉은 혐오스러우므로 백인들로만 영화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웃기는 것이다. 아시아인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싫어서 흑인을 일본 전국시대에 갖다 놓았더니 그것도 PC란다.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것 아닌가. 아시아인을 차별해서 흑인으로 그를 대체하는 것이다. 그런데 맞는 말이긴 하다. 역시 게임을 할 때는 작고 가늘고 어린애같은 아시아인보다는 근육도 우람하고 몸도 날렵한 흑인이 더 맛이 나긴 한다. 당장 육상선수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몸 자체가 다른데? 그래서 그런 생각들이 옳은 것인가?
정태춘이었나 황미나였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도 심의에 걸려서 그때마다 내용을 수정했더니 나중에는 자기가 뭘 그렸는가 기억도 나지 않더라 그랬었다. 작품에 대한 애정까지 모두 사라지더라. 아마 황미나의 만화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였을 것이다. 처음 보면서 예상했던 전개와 전혀 다르게 급조한 듯 결말이 나서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드라마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배경이었다. 핏줄이 이어지지 않은 고아 남매를 입양한 채로 몰락하여 달동네에서 살고 있는 가장과 입양된 남매들의 이야기였었다. 좆같은 기억이다. 그런 시대를 그리워한다고? 미친 것 아닌가? 게임 쪽에 유독 그런 인간들이 많은 듯하다. 박정희를 찬양하는 이제는 원로가 된 개발자도 보았었으니. 하여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