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전통소주에 대한 몇 가지

까칠부 2025. 3. 1. 22:11

조니워커 블랙라벨과 산토리 가쿠빈을 먹은 다음날 집에서 만든 시어진 막걸리를 증류한 소주를 먹은 적이 있었다. 솔직히게 그냥 막 증류해서 먹은 소주가 더 맛있더라. 쌀의 단맛이 진한 게 그냥 물만 더 넣어 희석하면 숭늉이겠다 싶었다. 아, 이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굳이 소주를 오래 숙성해서 먹을 생각을 안했었구나.

 

보리로 만든 소주를 4개월간 항아리에 숙성했다가 고구마소주를 대신 넣으면서 꺼내서 맛을 봤다. 아, 맛없다. 객관적으로 보면 분명 맛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쌀로 만든 소주에 비해서는 분명 아쉬운 부분이 많다. 고구마소주 역시 고구마 향과는 별개로 쌀과 누룩이 들어갔을 때 맛과 향이 더 풍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솔직히 고구마소주 숙성하지 말고 그냥 바로 다 먹어버릴까 잠시 생각했을 정도로 비교할 수조차 없이 보리소주보다는 맛이 있었다.

 

주곡물이 주곡물인 이유가 있는 갓이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가능하면 쌀과 밀을 주식으로 삼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전분의 함량이 가장 높고, 더구나 단백질까지 곡물치고 풍부하다. 그래서 술을 만들면 들어가는 재료대비 나오는 양도 많고, 그 맛과 향도 그 자체로 훌륭할 때가 많다. 굳이 숙성까지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맛이 있는 술이 되는 것이다. 밀로도 한 번 소주를 만들어 볼 생각인데 한 번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아, 럼도 그런 점에서 숙성이 필요없는 술일 것이다. 당밀의 단향이 숙성없이 바로 마셔도 어지간해서는 도수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거부감을 줄여준다. 

 

덧붙여 어째서 전통적인 소주증류방식에서는 초류와 후류에 대한 이야기가 따로 나오지 않는 것인가. 소줏고리로 술을 증류하는 영상을 보는데 밑술이 일단 끓기 시작하면 그제야 소줏고리를 올리더라. 즉 가장 먼저 끓어서 올라오는 초류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 그제서야 그 위에 소줏고리를 올리고 밀폐한 뒤 소주를 내리는 것이다. 후류는 그냥 향을 맡아보면 안다. 익숙해지면 술에서 나오는 향기만으로도 대충 도수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굳이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결론은 원래 쌀로 만든 증류식 소주는 무척 맛있는 술이라는 것. 어째서 희석식소주에 당류가 들어가는가 이유를 알게 된다. 원래 쌀로 만든 전통소주는 그 자체로 무척 달다. 그 단맛을 재현하려니 희석식소주에는 당류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주위의 지인들도 놀라더만. 그냥 소주만 먹는데 이렇게 달다고? 자가양조를 하는 이유다. 술이 맛있다. 당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