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친노가 공격당하는 이유에 대해...
친노란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치계파와 상당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일단 구심점이 없다.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 모이지도, 그렇다고 특정한 이념을 공통으로 지향하지도 않는다. 아예 당적을 달리하거나, 같은 당에 있어도 또 결을 달리 하는 입장에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도 친노다. 왜?
당연하다. 친노의 핵심은 정치인이 아닌 지지자 자신이니까. 노무현이 아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까지 만들었던 열성적이고 참여지향적인 유권자의 집단이 친노의 진정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을 지지했고, 그리고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하는 누군가를 찾아 지지하고 있으며, 또는 누군가로부터 노무현의 모습을 찾으려 애쓰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그 노무현이란 친노 자신이 내면화한 객관화된 노무현이다.
그래서 한때 노무현을 당에서 나가라 등떠밀었던 정청래마저 친노라 분류되며 친노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박원순 역시 노무현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친노와 우호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작 친노 유권자들은 문재인 이외의 대선후보들에 대해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다. 노무현의 적들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노무현을 탄핵항 당사자였지만 추미애에 대한 인식들은 어떠한가. 노무현이라는 개인이 아닌 노무현이라는 개인에 투영된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이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전히 노무현이 죽은 뒤에도 친노들을 - 심지어 노무현을 지지해 본 적도 없는 이들마저 노무현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모이게 만드는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두 가지다. 내가 그토록 노무현과 노빠들을 싫어하면서도 여전히 그들과 한 방향을 보고 있는 이유다. 지난 탈당사태에서 안철수를 비롯한 당내 분란파들에게 오히려 더 극렬하게 증오를 드러냈던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의 약속이자 신념이었던 정당개혁과 지역주의 타파다. 지난 탈당국면에서 문재인을 비판하던 김부겸에게 일부 친노들이 서운함을 드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부겸만은 노무현을, 아니 문재인을 이해해 줄 줄 알았다. 하지만 문재인 만큼이나 김부겸 역시 열린우리당 탈당사태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을 터였다.
한국의 정치문화를 바꿔야 한다. 정당정치를 보다 선진적으로 바꾸어야만 한다. 노무현의 공약이었고 열린우리당을 주도해서 만든 천신정의 명분이었다. 물론 실패했다. 그 중심에 천신정의 하나이며 결국 열린우리당의 당권을 장악하고 모든 것을 주도했던 정동영이 있었다. 유시민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정치개혁은 겨우 열린우리당의 당권을 장악한 자신의 행보에 방해가 된다. 계파정치인과 조직만 잘 관리;하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당을 움직일 수 있는데 유시민의 방식대로 하자면 당원들의 눈치를 너무 봐야 하니 번거롭다. 열린우리당이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다.
지역주의 타파는 김대중의 오랜 소망이기도 했었다. 호남을 넘어서 전국에서 인정받는 야당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었다. 자신은 아니더라도 누군가 그렇게 될 수 있었으면 바랐었다. 하지만 정작 제 1야당의 정치인들은 아니었다. 호남을 벗어나면 경쟁력이 없었다. 그런데도 전국정당을 명분으로 당선이 확실한 지역구를 떠나 수도권의 격전지로 내던져져야만 했었다. 김대중이 아직 현역에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지만 김대중이 물러나고 나니 사정이 달라졌다. 그냥 속편하게 호남 안에 머무는 쪽이 자기에게 유리하다. 오히려 이때부터 호남의 정치인들이 호남의 지역감정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열린우리당의 분당도 결국 호남의 지역감정에 기대어 당권을 지키려던 구당파와의 갈등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때 호남 지역주의자들은 토호, 혹은 난닝구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었다. 안철수의 지지자 가운데 그때 보았던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은 그래서 꽤나 흥미롭다.
결국 친노가 야당과 여당 모두에게 집중적으로 공격당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면 된다. 역시나 내가 노무현과 노빠들이라면 이를 갈면서도 결국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단 이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정당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지역주의도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개선해야만 한다. 아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처럼은 안된다. 그런데 정작 그런 주장들이 여전히 소수 계파정치인과 지역조직만을 장악한 채 당을 마음대로 하려는 구태인사들이나, 지역기반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맹주노릇을 하고 싶은 토호들에게 무철 불편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영남은 여전히 영남이어야 하고 호남은 영원히 호남이어야 한다. 정당정치는 자신들만의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야당의 비주류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친노를 공격하는데 공조관계에 있다. 국민의당에 가 있는 인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운동권 출신들이 친노라 분류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 역시 과거 김대중 시절의 구태적인 정당문화에 익숙지 않다. 거부감마저 가지고 있다. 오히려 정당정치라는 것을 시작한이 얼마 되지 않았을 수록 더욱 그같은 낡은 현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결국은 그 부분에서 입장을 함께 하게 된다. 친노지지자들도 결집하여 그를 지원해준다. 그것이 기존의 당권파와 지역주의자들에게는 위협이 된다. 진정 그들이 말하는 친노패권이란 당내에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최대계파에 대한 경계가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범하려는 지지자들에 대한 경계다.
차라리 문재인을 좌절시킨다. 문재인을 좌절시킴으로써 그를 중심으로 뭉친 지지자들을 흐트려 놓는다.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 지지층의 주된 전략이었다. 그들 극성스런 지지자들을 당으로부터 떼어 놓는다. 그러면 보다 오른쪽의 유권자들이 자신들을 지지해 줄 것이다. 국민의당의 존재가 자극이 되었다. 비로소 그로 인해 선거에서 참패를 겪을 위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문재인을 불러들인다.
국민의당이 호남의 지역주의를 불붙이고 이용하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친노를 무너뜨리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원히 이어가려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래서 친노는 그들에게 적이 된다. 차라리 친노를 쓰러뜨리기 위해 새누리당과도 손잡는다. 의외로 쉽다.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