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팔리지 않는 이유? 스스로 쌓아올린 벽
원래 와인은 그렇게 어려운 술이 아니었다. 당연하다. 그냥 포도 발효시킨 술이다. 포도 표면에 효모가 이미 함께하고 있었기에 그냥 즙을 내어 안에 함유된 당을 발효시키면 되었던 터라 맥주와 함께 가장 오래전부터 만들어 먹던 술 가운데 하나이기까지 했었다. 한 마디로 원래 시작은 우리나라의 막걸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석회질 지반 덕분에 물이 좋지 않았던 유럽에서 맥주와 더불어 물을 대신할 수 있는 음료로써 그렇게 아주 오랜 세월동안 폭넓게 소비되어 온 술인 것이다. 거기에 뭐 복잡한 논리나 예법 같은 것이 있겠는가?
사실 와인산지들에도 보면 테이블와인이라고 해서 그냥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종류의 값싼 와인들도 존재하기는 한다. 하긴 요리할 때도 물 대신 와인을 때려넣고 하는데 그때마다 몇 만 원 씩하는 와인들을 갖다 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가볍게 저녁 먹으면서 한 잔 하려는데 거기다 몇 십만 원 하는 와인을 딸 수도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 원래 그 지방들에서 와인은 말할 것처럼 일상적으로 소비되던 술의 종류 중 하나였을 터다. 문제는 와인을 고급화하는 과정에서 와인과 관련한 아주 복잡하고 상세한 여러 논리와 이론과 절차같은 것들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원래는 귀족들만이 향유하던 문화였겠지만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대중들에게까지 전파되며 와인은 반드시 그렇게 즐겨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런 것들을 제대로 모르고서는 와인을 즐길 수 없는 것처럼. 그런데 그래서 그게 뭔데?
그냥 값싸게 집앞 주류백화점에서 병에 5천원 하는 와인 사다 먹으면 이상한 눈으로 보는 인간들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그냥 가볍게 맛이나 보려고 칠레산이나 혹은 캘리포니아산 와인 가운데 값싼 것으로 대충 주워와서 그것도 플라스틱 컵에 따라 마시고 있으면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딴죽을 거는 놈들도 어느샌가 생겨난다. 참고로 나는 고양이랑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집에 있던 유리로 만든 모든 잔들을 죄다 내다버린 바 있다. 그래서 지금 집에 있는 잔들은 모두가 스태인레스이거나 아니면 플라스틱 소재 뿐이다. 와인잔 같이 깨지기 쉬운 종류의 잔은 당연히 갖다 놓지 않는다. 그러니까 와인을 먹고 싶으면 그냥 대충 아무 잔에다 따라서 아무 안주에나 그냥 먹는다. 그러면 아주 기함을 한다. 와인도 모르는 놈.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와인 가지고 무슨 예술이라도 하는 것처럼 요란을 떨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그냥 여러 종류의 술 가운데 하나로 평범하게 일상에서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 두 종류의 사람들이 현실에서 충돌할 때다. 그러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주저하게도 된다. 그래서 저걸 먹어 말어? 그렇지 않아도 가격까지 비싸다. 값도 만만치 않은데 제대로 즐기려면 뭐 알아야 하는 것도 너무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너무 많다. 너무 번거롭고 성가시다. 그냥 다른 더 편리한 술을 찾고 만다.
막걸리만 해도 그냥 잔에 따라 마시면 그만이다. 십 몇 만 원짜리 막걸리도 그냥 아무 잔에나 따라 마신다고 뭐라 지랄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막걸리 그 돈 주고 사 마신다면 일단 지랄을 시작하기는 한다. 위스키는 어떨까? 버번은 그나마 나은데 스카치는 좀 지랄하는 놈들이 주위에 아주 없지는 않다. 잔은 뭘 써야 하고, 온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고, 얼음을 넣으면 안되고 기타등등등등... 하긴 데낄라나 맥주 가지고도 그런 지랄 하는 놈들이 없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단지 그 빈도와 강도의 문제일 것이다. 와인은 유독 유난을 떠는 놈들이 많다. 그래서 정보화시대에 지레 와인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는 아예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많아지게 된다. 와인은 마시는 놈들이나 마시는 술이다.
지나친 고급하에 의한 형식화, 양식화가 낳은 부작용일 것이다. 와인 자체가 너무 고루해져 버렸다. 너무 복잡하고 귀찮은데다 성가시기까지 한 그저 비싼 술이 되고 만 것이다. 여전히 그런 점들을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런 점들 때문에 시작도 하기 전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와인은 도대체 뭔 맛인지 모르겠다. 그냥 대충 먹으면 꽤 먹을만한 맛있는 술이기는 하다. 그럴 그렇게 엄격하게 따져가며 마시기에는 너무 귀찮을 뿐. 스스로가 대중과 장벽을 쌓아 버리고 말았다. 와인이 그런 비싸고 고급스러운 술들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도.
그냥 아무때나 아무렇게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술이 아니게 되어 버린 것이다. 왠지 어울리게 격식을 갖추어야 하고, 그에 걸맞게 이것저것 도구들도 장만해야 하고, 그리고 와인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공부도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인식을 만들어 버렸다. 그런 이미지를 고착화시켜 버렸다. 그래봐야 그냥 술인데. 더 잘 어울리는 와인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와인이나 먹는다고 크게 문제가 될 것은 또 없어야 할 텐데. 자업자득이라고나 할까? 위스키도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특히 스카치. 버번이야 그냥 아무나 먹는 술이라. 그게 맞는 것일 텐데. 술은 맛있고 즐거우면 그만이다. 그게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