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별책부록 - 고유진 이사의 의도? 사각관계의 시작
어쩌면 고유진 이사가 그저 나쁜 마음으로 강단이를 괴롭히려고만 그러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강단이가 진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와 이전에 다른 일을 했지만 결혼으로 일을 그만두었다가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된 경단녀인 것을 알았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한 마디로 들뜨지 말라.
처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다. 지나치게 자신을 과신하는 나머지 너무 쉽게 경계를 넘고는 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상을 하려 하고, 자기가 해야 하는 이상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사고를 친다. 사고를 치지 않더라도 스스로 너무 큰 기대를 만들고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 좌절하고 만다. 그리고 영영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마저 있다.
지혜의 시작은 자기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제 겨우 일을 시작한 입장에서 폼나 보이는 남의 일에 더 욕심을 내고, 더구나 작은 성취에 도취되어 원래의 일마저 잊는다면 자칫 아무것도 아닌 채 끝나버릴지 모른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것이라면 그렇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고, 다시 사회로 돌아온 것이라면 이전과 다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만 한다. 강단이도 안 것 같다. 모든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러고보면 강단이가 하는 업무지원팀의 업무란 것도 출판사 업무 전반에 대한 이해 없이는 어려운 것이다. 결국에 잡무지만 그렇기 때문에 회사내 모든 부서에 걸쳐 잡다하게 걸쳐 있는 일들이 많다. 그런 여러 부서에서 강단이에게 필요한 여러 일들을 맡기고 그러면서도 굳이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바로 다음 업무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한 걸음부터. 밑바닥부터. 아직까지도 과거 성공한 카피라이터라는 기억에 갇혀 자기가 출판사에서 신입사원이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은 아닌가.
이혼하고 돌아선 부부의 눈물이 너무 서럽다. 터무니없는 애송이들의 오해가 더해지며 통곡이 아프게 들린다. 이미 먼저 이혼을 경험한 이가 있었다.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어떤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부부라는 이유로 어떻게든 함께 하고자 무던히도 노력해 왔을 것이다. 수없이 인내하고 때로 자신을 탓하면서 어떻게든 지금의 인연을 끝내지 않고자 발버둥쳐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시간들이 이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냥 이혼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이혼이 쉬운 세상이라지만 결혼이라는 약속을 끝내는 것이 그렇게 쉽고 간단할 수만 없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오는 곳이 강단이와 차은호와 지서준과 송해령의 너무나 흔하고 뻔한 로맨스일 것이다. 때로 유치하고 때로 아련하고 때로 설레고 그래서 때로 절망적이기까지 한. 강단이를 진지하게 생각하던 전회와 달리 그저 질투심에 못이겨 민망할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차은호가 귀엽기까지 하다. 그런 차은호의 마음도 모르는 채 강단이는 새로운 인연에 막연히 설렌다.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인연이 아닌 의지로. 강단이와의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은 지서준의 결심이 차은호를 흔들어댄다. 그리고 송해령은 그런 차은호를 어쩔 수 없이 눈치채고 만다. 그렇게 뻔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데.
네 사람의 사각관계도 한 걸음 진전되고, 지서준이 궁금해하는 강병준 작가에 대한 비밀도 조금씩 드러나고, 무엇보다 출판사에서의 일을 하나둘 알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자기 일을 사랑하게 되고, 그리고 어디선가는 아픈 사랑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 한 편으로 그런 군상극이다. 드라마의 미덕이다. 코미디라는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게 현실의 인간들을 보듬는다. 위로받는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해피엔딩을 꿈꾼다.
이제 시작이다. 예전 어디서 무슨 일을 했었든 지금 여기서 자신은 신입사원에 지나지 않는다. 하긴 나도 새로 직원이 들어오면 항상 말하고는 한다. 너무 잘하려 하지 말라. 너무 열심히 하려고도 마라. 할 수 있는 일들만 하라. 해야 하는 만큼만 하라. 아마도 아니었을까? 새삼 고유진 이사에게 공감하게 된 이유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