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 여느 샐러리맨차럼, 그들의 싸움
솔직히 바로 욕부터 튀어나왔다. 강자는 임바른이 아니다. 당장 판사를 그만두면 생계를 걱정해야 할 지 모른다. 가족이 오로지 임바른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다. 빚까지 상당하다. 아마 다른 판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변호사개업하면 된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당장 불안한 미래로 내던져지는 것은 같다. 그에 비하면 박차오름은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내던 오빠조차 감히 비교할 수 없이 휘황하지 않은가.
두려움을 모르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날개가 있는데 절벽에서 뛰어내린다고 용기있다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임바른의 용기가 눈물겹도록 안타깝기조차 하다. 현실을 알고 나름대로 적당히 외면하며 타협해 온 그가 분노에 자신을 맡긴다. 부정하고 부당한 현실에 분노하여 무모한 싸움에 나서려 한다. 그래서 박차오름에게 더 분노하게 된다. 어차피 남의 인생을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너무 쉽게 단정짓고 비난을 퍼붓는다. 정의감이라기보다는 어려움없이 자란 아가씨의 히스테리에 가깝다고나 할까. 정작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샐러리맨 맞다. 다만 고급 샐러리맨이다. 당장 판사 그만둬도 변호사개업하면 된다. 어쩌면 그쪽이 돈은 더 많이 벌 수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마다 굳이 판사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다. 스스로 선택해서가 아니라 등떠밀려 자신이 결정한 길을 포기하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아픈 일일 수밖에 없다. 판사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판사로서 누구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그것은 여느 개인의 일상적 욕망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겪게 되는 모순과 부조리와 불합리들을 때로 견디며 때로 타협하고 자신을 속이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친다. 그것이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이기도 하다.
택시기사가 어렵게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직장에서 밤샘을 일상으로 하는 자식들 이야기를 하며 임바른의 어려움을 찍어누르려 했을 때는 솔직히 성공충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싶었다. 내가 출세하고 싶으니까. 출세하고 싶어서 일만 하며 오로지 앞으로 달려왔으니까. 그에 비하면 요즘 젊은 판사들은 이기적이고 너무 약하다. 저마다 힘들고 어려운 점이 다 다를 텐데도 누가 더 힘들다며 애써 비교하고 계량하여 타인의 어려움을 무시한다. 그러니 배부른 너희도 더 힘들어야 한다. 심지어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업무로 유산까지 했음에도 유난일 뿐이다.
실제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기업에서 여성을 고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잔업이나 야근을 시키기 아렵다. 남성직원에 비해 함부로 대하기 조심스럽다. 그보다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노동의 공백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된다. 남성은 애를 낳을 일도, 어차피 육아 역시 여성이 거의 도맡을 테니 여성에 비해 유리하다. 괜히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어도 직장을 지키고 싶으면 결혼이든 출산이든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괜히 남자들 따라 과로해서 유산을 해도 여성이 약한 때문이지 자기들 잘못은 아니다. 자기들의 방식은 항상 옳다. 그나마 법을 지키는 법원이라고 그런 몰개념한 판사는 아직까지 성공충 한 사람 뿐인 듯하다.
아무튼 하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재판을 가지고 거래한 정황이 드러난 뒤라 더 의미심장하게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법과 정의와 양심을 지켜야 할 판사들이 불의를 보고도 눈감는다. 부조리와 악을 보고서도 고개돌려 침묵한다. 거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양심마저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인간이기에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지만 그들의 손에는 법이라는 너무나 귀중하고 강력한 도구가 들려있다. 인간의 보편적 상식과 가치마저 지키지 못하는 법원이 과연 이 사회의 법과 정의를 지킬 수 있을까. 그 결과가 결국 영예로워야 할 대법관까지 연루된 사법농단이었다. 법원에 대한 신뢰를 짓밟은 것은 다름아닌 법원 자신이었다.
고장만 기차처럼 정면으로 돌진하려고만 드는 박차오름에 대한 불편함과 함께 그와는 달리 이미 현실을 알고 인정하기깢 하면서 분노를 위해 일어서려는 임바른에게 아프게 공감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박차오름의 말도 옳다. 그래봐야 판사인 그에게는 변호사개업이라는 만일을 위한 뒤가 있다. 강자라는 것이다. 얼마나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최근 밝혀지 바로 법원도 여느 다른 직장과 다르지 않다. 답답해지는 이유다. 그나마 부당하게 혹사당하면서도 불만 한 마디 내뱉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다. 법원에서의 싸움은 어떻게 끝날까.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