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역사상식 문제다. 일반 백성들로 이루어진 징집병 부대가 있다. 그리고 급료를 주고 고용한 용병 부대도 있다. 마지막으로 노예들로 이루어진 부대가 또 하나 있다. 내가 지휘관이다. 이 가운데 반드시 한 부대를 희생해야 한다면 어디를 먼저 선택해 희생시킬 것인가. 징집된 백성? 고용된 용병? 아니면 노예? 당연히 용병 아닌가?
용병이 전투 도중 죽어도 그 급료를 유족에게 친절히 전달하고 하는 건 소설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중세 유럽의 전장을 보면 용병들도 죽기 싫어서 전투 대충 치르고 괜히 대치만 하다가 적당히 약탈만 하고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었다. 진짜 죽을 것 같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고, 아예 상황이 불리할 것 같으면 고용주를 바꿔서 창을 거꾸로 잡는다. 스위스 용병들이 괜히 유명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믿지 못할 놈들이 용병이더라. 그런 만큼 지휘관 입장에서도 만일 희생싴켜야 한다면 괜히 살아있어봐야 돈만 더 나가는 용병을 희생시키는 것이 옳다. 그러면 과연 용병 다음은 어디일까?
물론 일반 백성들이야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생산에 종사하게 될 중요한 나라의 노동력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될 수 있으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백성을 살리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 백성이 전장에서 죽었다고 딱히 지휘관으로서 내가 더 피해를 보거나 하는 것은 없다. 왕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전장에 나가 있는 백성들이 모두 죽어도 아직 남아 있는 백성도 적지 않고, 시간만 주어지면 아직 어린 아이들도 자라서 성인이 될 것이다. 실제 30년 전쟁 당시 프랑스의 재상을 지냈던 마자르가 한 말이기도 하다. 전쟁에서 아무리 병사들이 죽어나가도 그 만큼의 아이들의 파리에서는 매일 태어나고 있다. 반면 노예는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재산이고, 따라서 노예가 전장에서 죽으면 그만큼의 재산을 잃게 되는 것이다.
조선에서 노비들에게 군역을 지우지 않았던 이유다. 조선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노예를 징발해서 전장으로 내보내는 경우는 진짜 나라가 망할 지 모르는 위기상황이 아니면 거의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없었다. 그래서 한니발이 칸네의 회전에서 로마군을 괴멸시키자 로마의 시민들도 앞장서서 소유하고 있던 노예들까지 로마를 지키기 위해 내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 마디로 징발이며 헌납이다. 로마 시민들의 애국심과 국가를 위한 헌실을 보여주는 예로 인용될 정도다. 실제 로마의 노예검투사들의 경우도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그렇게 함부로 막 경기 도중에 죽이고 그런 경우는 그다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노예검투사들의 경우도 로마 시민 누군가의 소유였었고,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사들인 재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기껏 소유한 노예가 검투사 경기에서 연승을 거두며 로마 시민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어느 순간 덜컥 죽는다 생각해 보라. 소유주 입장에서 어떻겠는가.
미국에서도 그래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흑인들을 마음대로 린치하고 죽이기 시작한 것이 정작 노예해방 이후부터였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노예주들도 어지간해서는 자기 소유의 노예를 함부로 죽이지 않았었다. 당연하게 남의 노예를 더욱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은 금기였었다. 남의 사유재산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노예해방 이후 자유민으로 임금노동자가 된 흑인들의 처우가 노예시절보다 더 나빠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결혼도 시켜주고 어찌되었든간의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기까지 한다. 왜? 내 재산이니까. 오래전 소가 재산의 전부이던 시절 농민들이 차라리 자식보다도 소를 더 소중히 여긴 것과 닮아 있다 보면 된다. 그래서 이슬람세계에서 운용하던 노예병인 맘루크들이 나중에는 자기들만의 왕조도 세우고 했던 것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소유로써 배신같은 건 생각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더욱 중요한 자신의 친위대로써 특권까지 주며 부리다가 오히려 그에 잡아먹힌 경우였다.
고려나 조선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몇 년 전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었던 최씨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았던 김준 또한 원래는 최씨 집안의 노비 출신으로 대대로 노비였던 터라 대우도 꽤 받았던 경우였었다. 신분은 노비인데 권력자의 노비이기에 오히려 일반 백성들을 눈 아래로 여기고 마음대로 횡포도 부릴 수 있는 신분이었던 것이다. 조선말에도 안동 김씨 일가의 노비들은 오히려 어지간한 양반들보다도 그 위세가 대단했었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노비라고 그를 함부로 대한다는 것인 그 주인인 안동 김씨의 재산에 위해를 가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 소유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내 물건에 함부로 무엇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신분은 노비인데 조정에 소속되어 있는 관노비의 경우 아예 특권층처럼도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라의 재산이기에 감히 누구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다.
웹소설을 보다가 노예병에 대한 묘사가 조금 어이없어서 쓰게 된 글이다. 노예병이라 함부로 죽도록 내버려둔다? 일반 징집병이나 농민병을 위해 노예를 아예 죽으라고 앞으로 내보낸다? 죄수부대와 착각한 게 아닐까? 세상에 공짜 노예란 없다. 아무데서나 마음대로 잡아다 노예로 부리더라도 노예란 곧 그를 소유한 누군가의 재산인 것이다. 노예 하나 잡아오려면 그것도 돈이고,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기에 굳이 노예도 부리는 것이다. 그냥 돈을 내다버리는 것도 아지고 굳이 노예를 사서는 죽으라 내보내는 그 머릿속이 궁금하다. 역시나 세계사 시간에 졸았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노예라고 하니까 막 함부로 잡아다 일시키고 수틀리면 때리고 죽이고 그런 걸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그런 경우는 그다지 많이 없었다. 그런 경우는 오히려 신분이 애매할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개인이 소유한 노예가 아닌 특정 지역을 소유하고 점령지의 주민을 마음대로 징발해 사용하는 경우다. 이건 오히려 맨 위의 경우에서 일반 징집병의 경우에 해당한다. 노예라기보다는 그냥 천민이다. 노예란 수단이라는 것이다. 생산을 위한 수단이며 그렇기 때문에 또한 자신의 재산이기도 하다. 노예관리인이 노예를 함부로 대하다 그 수가 줄었다? 피붙이가 아니면 그것도 크게 책임을 물을 죄가 될 수 있다. 근대의 인권보다 더 먼저 발달한 것이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였다. 근대의 인권이나 국가의 주권 역시 그러한 사유재산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게 더 무서운 것이다. 언제나.
확실히 어떤 웹소설들 보면 공부를 전혀 않은 채 막연한 관념에만 기대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기가 아는 상식을 전부라 여기고 더이상 공부도 조사도 않고 쓰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역사공부를 열심히 한 경우는 아닌 것 같기는 한데. 판타지라니까 뭐든 다 허용되는 것 같다. 그게 더 큰 문제인 것 같지만. 판타지에 리얼리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몰입하기가 쉽지 않을 뿐. 상식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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