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정황상 의심스럽다는 것은 그가 범인이라고 하는 혐의에 대한 충분조건에 불과하다. 범인이니까 정황상 의심이 가는 것이지, 정황상 의심이 가기에 그가 범인인 것은 아니다. 정황상 의심이 가더라도 그가 범인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증거와 논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구체적인 증거란 아무것도 없다. 증거를 확보한 것도 아니고, 확실한 논리를 찾아낸 것도 아니고, 단지 이 사람 저 사람 주장만을 듣고 적당히 짜맞춘 뒤 결론을 내린다. 아니 그 전부터 결론은 내려져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사건이 일어난 그 순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강성철 그 사람이 범인일 것이다."
그리고 증거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정황만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에 맞춰 수사를 진행한다. 심지어 수색영장조차 없이 남의 병원으로 쳐들어가 우격다짐으로 뒤지기까지 한다. 결국 증거를 발견하는 것도 용의자로 여겨지는 사람의 집을 영장조차 없이 무단으로 침입해 뒤진 결과였다.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경찰의 수사방식일까? 경찰이란 이런 식으로 사건을 수사하고 범인을 잡아내는가? 제목은 <강력반>인데 정작 어디에도 경찰도 강력반도 없는 느낌이다. 마치 붕 떠 있는듯 개인들이 섣부른 정의감에 좌충우돌하고 있을 뿐.
하기는 출발부터 드라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싸인>과 마찬가지로 사건을 추적하는 것보다 경찰이라고 하는 조직과 싸우는 것이다. <싸인>이 메디컬수사드라마를 표방했으면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검찰, 정치권을 아우르는 암류와 맞서싸우는 드라마였듯 이 드라마도 결국 주인공 박세혁(송일국 분)이 직접 맞서싸우는 것은 정일도(이종혁 분)와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경찰이라고 하는 조직이다.
처음부터 드라마는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작 경찰물이면서 경찰이라는 조직 자제를 부정하고 들어가니 과연 제대로 된 경찰이 등장할 수 있겠는가? 경찰이라고 하는 조직을 부정하고 그와 맞서 싸우려는데 그 수사방식은 얼마나 경찰의 상식과 원칙에 충실할 수 있겠는가? 경찰은 당연히 수사를 방해하고, 따라서 강력반 형사들은 경찰과 맞서싸우며 수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찰을 소재로 하지만 전혀 경찰과는 상관없는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득 경찰드라마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과거 MBC의 장수드라마 <수사반장>을 떠올려 본다. 당시 시대도 시대였거니와 <수사반장>에서 경찰들이 맞서 싸우는 것은 범죄 단 한 가지였다. 그 이면에 무엇이 있든 경찰들은 단지 범인을 검거하는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그것이 오히려 범죄자들이 당시 <수사반장>을 통해서 범죄수법을 배운다 할 정도의 치열함과 치밀함을 만들어냈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주적은 간부'라 하는 군대의 속설처럼 '범인을 잡는 정의의 가장 큰 적은 경찰'이라는 드라마의 논리는 처음부터 이 드라마가 수사드라마로써 한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스스로 예고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번 사건만 해도 그렇다. 정작 사건은 성형외과의사 김석규의 살인사건이건만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었던 것이 박세혁에 대한 내사였다. 어떻게 범죄동기와 수법을 밝혀내고 범인을 찾아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내사가 박세혁에게 우호적으로 종결되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사가 어디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로 인해 박세혁이 곤란을 겪고 그로부터 벗어나는가에 많은 분량이 할애되고 있는데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질 리 없다. 2주 안에 더구나 사건 하나를 마무리지으려면 더욱.
그리고 결국 그렇게 경찰조직과 관련한 정치로 절반을 채우고 나면 나머지는 정치의 반대 치정이다. 알고 보니 과거의 인연이라는 것일까? 요즘은 순정만화에서도 이런 식의 전개는 유치하다고 쓰지 않는다. 조민주(송지효 분)와 박세혁이 그렇게 아옹다옹하면서 얼굴을 마주해 왔는데, 알고 보니 예전 어떤 사연이 있다더라. 아마도 두 사람 다 최악의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스치듯 보았겠지.
"이제 박형사님 얼굴을 어떻게 봐?"
그 대사가 결국 시작이다.
여기에 그러고도 부족했던 것인지 허은영(박선영 분)이 나타나며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꼬아 유치한 삼각관계로 만들어 버린다. 설마 허은영이 박세혁의 전처였을 줄이야. 박세혁과 정일도의 관계에 다시 허은영까지. 그런데 이게 궁금증과 흥미를 더하기보다는 오히려 짜증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뭘 어쩌란 것일까?
드라마가 수사보다는 오히려 정일도와 박세혁의 관계나, 혹은 허은영과 조민주의 로맨스, 그리고 이들에 얽힌 치정드라마로 흘러갈 것을 조심스럽게 예상해 보는 이유다. 벌써부터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수사는 단지 곁가지, 그래서 오히려 수사를 주도해야 할 강력반 멤버들 남태식(성지루 분), 진미숙(선우선 분), 신동진(김준 분)의 비중읜 거의 엑스트라 수준으로 없다. 그나마 개그캐릭터로 양념 역할을 하는 남태식이나 분량이 있지 진미숙이나 신동진이 드라마 내내 한 대사란 거의 없다.
과연 다음주에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너무나 당연히 경찰드라마라면 궁금해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그러나 그보다는 과연 허은영과 박세혁, 허은영과 정일도, 박세혁과 정일도, 박세혁과 조민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혹은 진미숙과 남태식은 러브라인으로 발전할 것인가?
경찰드라마인가? 아니면 경찰을 소재로 한 치정드라마인가? 그나마 보이던 가능성마저 조민주가 가지고 있던 박세혁의 팬던트와 박세혁의 전처 허은영의 등장으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리고, 차라리 <강력반>이라는 제목 자체가 낚시로 여겨질 정도다. 제목이 <강력반>인 이유는 <강력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치정드라마라서?
더 지켜보아야 할까? 하지만 이미 이 정도면 보여줄 것은 다 보여줬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드라마는 <강력반>을 떠나 멀리 어디론가 표류하는 느낌이다. 보고 있는 필자 자신마저도. 이제는 궁금하지조차 않다. 얼마나 어디까지 가려는가.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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