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어차피 소풍 당일날은 가 본 적 없어서 몰라! 그래, 맨날 땡땡이치고 병원 가느라 못 갔어, 왜?"
"나는 어려서 아이언맨이 되고 싶었어. 아이언맨의 여기 달린 게 인공심장인 줄 알았거든. 나도 그걸 달고 지구 최강의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었어."
6월 2일 <최고의 사랑> 요약이다. <최고의 사랑> 최고의 스포일러는 작가 자신이다. 탁월한 메타포. 마치 기타리프처럼 짧은 대사 하나 작은 소품 하나가 이야기를 예고하며 변주하고 연주해준다.
어려서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항상 병원에 가느라 소풍이라고는 가 본 적 없었던 소년. 그에게 소풍날은 항상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비가 내린 것처럼 그에게는 소풍이 허락되지 않았다. 구애정의 마음을 얻으려는 순간 느닷없이 내리고 만 심박계의 고장처럼.
그렇게 설레고 기대하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창밖에는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그러고 보면 필자 역시 소풍 전날이면 항상 비가 오지나 않을까 불안해하며 두근거리던 기억이 있다. 아마 중학교 때였던가 당일날 비가 와서 학교에서 자습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나면 기억도 남지 않을 일들이 당시에는 어쩌면 그렇게 간절하고 절실했는지.
그런 마음을 아는 것일까? 한 번은 비를 맞으며 소풍을 갔던 적도 있었다. 소풍을 출발하고 나니 비가 내렸다. 소풍지에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피하며 그래도 김밥을 먹고 어떻게든 아이들은 어울려 놀고 있었다. 건강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하늘이 허락한 축복이다.
제리 하이머 감독으로부터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헐리우드이고 그가 그토록 꿈꾸던 슈퍼히어로다. 하지만 제리 하이머 감독을 만나러 가기 직전 다시금 병약한 미소녀의 심장이 균열을 일으킨다. 단 한 번만이라도 소풍을 함께 가고 싶어 병실 창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그 시절처럼 다시금 그는 제리 하이머 감독과의 소풍을 포기하고 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아마도 헐리우드라고 하는 소풍도 포기해야 할 지 모른다.
하기는 띵똥 구형규가 소풍을 가기로 한 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 설레고 기대했었는데. 그래서 기대를 가지고 구형규를 데리고 소풍을 가려 했다. 구애정과 함께 모든 준비를 마치고 소풍을 떠나려 했었다. 자신도 데려가 달라. 그러나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마찬가지로 구애정의 집에도 윤필주(윤계상 분)이라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구애정의 집 안에 쳐 놓은 작은 텐트에는 그가 들어갈 자리란 없었다. 그때도 소풍간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비가 내리는 차창만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삶이란 어쩌면 이리 불공평한가. 하늘은 어째서 나에게만 이렇게 불공평한가. 마침 제리 하이머 감독과 만나기로 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서도 TV에서는 소풍가는 아이들이 비쳐지고 있었고, 그는 그곳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심장과 마주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하지만 그는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그는 독고진이었다. 한류스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슈퍼스타. 삶과 죽음의 간극에서 그는 그것을 깨닫는다. 인공심장에 이상이 생기고 성공가능성도 희박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병원 로비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온 환자복을 입은 소녀는 그것을 그녀에게 일깨워준다. 그는 영웅이었다. 히어로였다.
"너무 많아서 못 해드리니까 받아적으세요. 독! 고! 진! 뒤에 하트~♡"
그는 영웅이 되기로 한다. 다시금 창밖을 바라보는 병약한 소년으로 돌아가기보다 차라리 멋있는 영웅으로 남고자 한다. 그가 병원을 나선 이유다. 더이상 그는 병약한 소년이 아님을. 그는 이미 영웅이었고 영웅이어야 했다. 죽음 따위에 져서는 안된다.
"나 오늘 최고로 멋있어야 돼!"
"당연하지! 계속 멋있게 기억해."
"그래야만 돼. 오늘은 특별히 내 인생 최고로 멋있어야 되니까."
그리고 그래서 그는 구애정의 옷에 커피를 끼얹은 장실장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대로 쫓아가 장실장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만다. 영웅은 불의를 보고 참아서는 안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울린 상대를 그대로 참고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순백의 드레스와 그 위에 끼얹어진 커피의 얼룩은 순결한 처녀를 지켜야 하는 영웅의 피를 들끓게 만든다.
"난 안 가. 굳이 내가 지키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지구 대신에 반드시 폼나고 멋지게 지켜줘야 하는 게 여기 있거든."
소년은 영웅이 되었고 왕자는 기사가 되었다. 이미 기사로써 자신의 레이디를 받들고 있는 윤필주와 비로소 같은 선상에 서게 되었다. 소년의 순수가 영웅의 열정과 만나며 그는 진심으로 구애정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이야기의 끝은 아더왕일까? 지크프리트일까? 아니면 그다 바라던 아이언맨일까? 부와 명예와 사랑과... 한 편의 동화같은 서사시를 기대해 본다. 아름다운 비극보다는 우스꽝스러운 해피엔드를.
하여튼 참 공교롭다. 구애정이 독고진에게 말한다.
"항상 그렇게 우기고 뗑깡 피우면 사람들이 다 들어줬어요? 아니 그러면 안된다고 혼내주는 사람이 없었나봐?"
그리고 조금 지나서 윤필주와 만나는 자리에서 강세리(유인나 분) 또한 말한다.
"지금 저 야단치시는 거에요?"
"못된 짓 했으면 야단 맞아야죠!"
그렇게 화장실에 숨어 울면서 윤필주를 비난하면서도 그러나 그녀는 어느새 잊고 있던 순수를 떠올린다.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매니저나 주위 사람들 몰래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고 동경하고 사귀고 하던 순간들을. 그때 그녀의 곁에는 항상 그녀를 도와주던 구애정이 있었다.
"이번에 독고진이랑 몰래연애하는 거 내가 도와준다고 했으면 윤필주와 방송 시작 안 했을까?"
아이에게는 때로 야단을 쳐 줄 어른이 필요하다. 애정이 담긴 진심어린 야단은 아이를 울게 만든다. 원망이나 억울함이 아닌 깨달음과 반성의 눈물이다. 순수의 눈물이기도 하다. 역시 강세리는 악역이라기보다는 단지 야단 쳐 줄 어른이 필요한 그저 제멋대로인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아마 덕분에 더욱 진심이 되어 윤필주에게 꽂히게 된 것 같지만.
그녀도 어쩌면 상처를 받았던 것일까? 자기는 괜찮았다며 국보소녀를 왜 해체했는지 모르겠다 했을 때 그것은 그녀 나름의 구애정에 대한 원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기가 맞은 사실보다 국보소녀의 해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지 않을까.
역시 한민아(배슬기 분)가 나서야 밝혀질 부분일 것이다. 어째서 국보소녀는 해체되었는가.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리고 지금 그들 사이에 무엇이 남은 것인가. 결국은 유인나가 윤필주와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구애정 아버지 구자철과 윤필주의 어머니와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그리고 문득 귀에 잡히는 윤필주의 어머니 박원숙 여사의 진심이 담뿍 담긴 외침,
"같이라면... 아버지에 오빠에 조카까지 이렇게 다들 구애정에게 들러붙어 사는 겁니까?"
어느 연예인이 결혼하면서 그랬다 한다. 절대 하던 일 그만두지 말라고. 가족 중에 한 사람 연예인으로 성공하고 나면 모든 가족이 그 연예인 한 사람만 바라보며 살아가게 된다. 하던 일도 접고, 그러면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모습이 가족매니저다. 아마도 박원숙 역시 그런 모습들을 많이 보아 왔을 테니. 정준하나 한진희 또한 마찬가지.
몰래 다른 아이돌과 쪽지를 주고받던 유인나의 모습은 마치 그 나이 또래로 돌아간 듯 귀여웠다. 파란 물이 들어버린 구애정의 모습에 당황해하면서도 웃던 모습은 확실히 소녀의 그것이었다. 구형규의 그림일기에 오늘의 잘못한 일을 적고, 구형규의 소풍을 위해 김밥을 마는 구애정의 앞에서 김밥을 주워먹는 독고진의 모습은 병약한 미소년 시절의 어린아이 그대로였다.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이유가 아닐까. 구애정이 왈칵 갑작스레 문을 여는 바람에 부딪혀 아픈 와중에도 애써 아닌 것처럼 웃어 보이던 윤필주의 소년같은 순수한 웃음처럼. 그러고 보면 구애정만이 유일하게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김밥을 싸며 나란히 앉은 독고진과 구형규를 바라보는 구애정의 눈빛은 말썽꾸러기 아들 형제를 보는 엄마의 그것이었지 않을까.
시들어가는 감자와 구애정과 윤필주에 의해 감자샐러드에서 한 쪽으로 치워지는 감자. 독고진이 광고하는 구애정의 협찬폰은 더 크고 더 밝아지고 더 슬림해졌다. 비가 내리고 소녀의 꽃물이 든 옷처럼 구애정의 옷에도 커피물이 들었다. 소년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
비극은 아닐 것을 믿으며. 우연처럼 만나서 필연처럼 어울리고 운명처럼 서로에게 헤어지고는 예정된 듯 헤어진 어느 단편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병약한 소녀는 그렇게 비를 맞고 있었다. 소녀를 모르는 새 떠나보내야 했던 소년은. 마치 시원한 여름비처럼 순수한 이야기일 것이다. 좋은 이유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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