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스를 지켜라 - 전혀 음험하지 않은 유쾌한 재벌코미디...

까칠부 2011. 8. 11. 08:36

유쾌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 게다. 분명 차지헌(지성 분)과 차무원(김재중 분)은 사촌지간으로 재계서열 10위의 대기업 DN그룹의 경영권을 다투고 있는 경쟁자들이었을 터다. 그리고 대개 이런 경우 서로 적대관계에 있기에 팽팽한 긴장감을 보이면서도 잘 훈련된 교양과 예절로써 자신을 감추고 속이는 세련된 음험함이 자리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무언가. 저 유치한 몸싸움은.

 

그들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차회장(박영규 분)과 신숙희(차화연 분), 굳이 차회장의 입으로 밝히지 않아도 싸우는 모습을 보면 알겠다. 저게 어디 재벌기업 총수이고 그 일가의 사모님의 모습인가. 상류사회라면 당연히 보여야 할 어떤 품위같은 것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아예 때려보라며 머리를 들이미는 신숙희의 모습은 시정의 여느 억척스런 아주머니의 싸우는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진정하라는 한 마디를 안하니?"
"우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는 더 좋아요."
"그래, 그거는 맞아."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울먹이며 화장을 고치는 모습이 묘하게 언밸런스한 웃음을 준달까? 분명 겉보기는 재벌가 사모님인데 그러나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보통의 아줌마로 돌아온다. 무언가 비정하고 음험해야 할 재벌가의 권력싸움이 그래서 한 바탕 가벼운 코미디로 보이게 한다.

 

차지헌과 차무원 사이에서 어떤 사연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서나윤(왕지혜 분)의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나타났을 때는 그리 멀쩡해 보이는 아가씨였는데.

 

"너 생각 좀 찾으면 그때 다시 봐!"

 

그리 도도하게 말하고 돌아서더니만 화장실에서는 마스카라가 지워지도록 서럽게 울고, 그리고 실컷 울고 나서 다시 원래의 도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화장실을 나선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일까? 여자는 자존심이 전부라는 것일까?

 

"우리 사이? 누구 표현대로라면 세르토닌 없이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반 분비된 사이?"
"그래, 네 말대로 우린 오랜 우정을 나누다가 어쩌다가 성호르몬에 져서 다른 종류의 우정을 나눈 거야, 너때문에. 네가 그렇게 색기를 좔좔 흘리잖아?"

 

참 보고 있으면 나쁜 여자의 전형일 텐데. 차지헌과 사귀면서 차무원의 유혹에 넘어가 상당히 깊은 관계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그녀를 멀리하게 된 차지헌에게 다시 뻔뻔스레 접근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뻔뻔한 것도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도리어 순진해 보이지 않는가. 화장실에서 마음껏 망가지며 엉엉 우는 모습과 대비되어 저런 차무원과의 대화가 단지 그녀는 이기적일 뿐임을 깨닫게 만든다. 차지헌에 다가서는 것도 순수한 호의다.

 

하여튼 캐릭터 전반이 그렇다. 재벌이 소재라기에 또다시 재산을 둘러싸고 음험하게 음모나 꾸미는 비정한 재벌가의 이야기가 그려지는가 했었다. 실제 첫회 보여진 차회장의 모습은 비록 코미디이기는 했지만 실제 있었던 재벌회장의 불미스런 사건을 빌려 쓰고 있었다. 어쩌면 소시민인 노은설(최강희 분)의 눈으로 재벌가의 모순을 지켜보고 그것을 바로잡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데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어디 이런 재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탈한 모습이라니. 미디어에는 가식이 없지만 서로 아는 사이에는 어떤 거리도 격식도 없다. 솔직하고 단순하고 어떻게 보면 순수하기까지 하다. 아들이 엇나가게 된 이유가 자기의 폭력이라 생각해서 심지어 자기 손을 술병으로 내리칠 생각까지 하고, 더구나 아들을 찾아가 직접 쭈삣거리며 사과까지 하는 모습에서. 그러니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싶다는 차회장의 결심마저 당연한 부정으로 묘사된다.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그만큼 재벌이라는 소재가 우리에게는 친근하다는 뜻일 게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재벌가의 이미지에서 이런 반전도 시도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올초 방영했던 <로열 패밀리>에서 묘사된 재벌의 모습이 일반적인 재벌의 이미지의 정석이라면, <보스를 지켜라>에서의 DN그룹 일가의 모습은 그러한 일반의 관념을 이용한 파격으로써 코미디로 승화되고 있다. 그보다는 재벌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도 쓰일 수 있다. 하긴 연예인에 관련해서도 <최고의 사랑>에서 여러 금기에 도전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노은설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오히려 그녀의 역할은 DN그룹이라는 재벌보다는 그 회장일가인 차씨집안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기는 그녀에게 있는 것은 남다른 단순함과 과격함 뿐이다. 어떤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로 회사의 실무를 해결할 능력 자체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보이는 것으로는 그렇다. 그렇다면 그녀가 줄 수 있는 도움이란 인간관계에 대한 것일 게다. 특히 잔뜩 일그러진 채 왜곡되어 버린 차씨집안 일가의 관계들.

 

말 그대로 고양이라 할 것이다. 고양이는 사람에게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위협이 되지 않는 대신 위로가 되어 준다. 안심이 되고 무언가 베풀 수 있고. 사실상 아직까지 노은설이 차지헌을 직접적으로 도와준 것은 거의 없지 않은가 말이다. 노은설이 가르쳐준 태아자세처럼. 이성으로 느낀다기보다는 아직까지는 정서적으로 의지한다고나 할까? 가까이 두고 지켜보고 있으면 즐겁다. 괜히 그가 남긴 빵을 노리고 있는 모습처럼.

 

아무튼 알고 보니 노은설의 아버지가 도장을 하다가 망한 재야의 무술고수다. 노은설의 무술실력이 쓰을 때가 있을 것이란 뜻일 게다. 비서실 직원들을 혼내는 것만이 아닌 실제 실력을 발휘해서 무언가 역할을 할 기회가. 지금까지 분위기로 봐서는 차무원이나 신숙희나 그다지 그런 식으로 일을 꾸밀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유쾌하게 가겠지?

 

웃으며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코미디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릭터가 살아있고 반전이 있다. 맞물려 돌아가는 유기적인 개연성이 있다. 노은설이 차회장의 폭행사건과 연루되어 있음이 밝혀졌을 때 정작 차회장에게는 그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고 있는 과정이. 억지스럽지만 일단 웃을 수 있다는 점에서 코미디에서는 최고의 개연성이라 할 수 있으니까. 더구나 그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차회장에 의해 차지헌을 옭죄는 사건의 한 단서로써 작용하게 된다. 그것도 웃기다.

 

한참을 웃으며 보았다. 정확한 롤을 가지고 그 안에서 마치 애드립하듯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각 인물들의 모습에 마치 그 가운데 있는 듯 몰입하며 볼 수 있었다. 코미디라는 것이 마냥 웃긴다고 보는 것처럼 쉽기만 한 것이 아닐 텐데도. 김재중 역시 첫회에 비해 연기가 한결 안정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것 같은데. 기대하며 보게 된다. 재미있다. 웃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