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도, 꽃 - 박화영이 서재희에게 집착하는 이유...

까칠부 2011. 11. 25. 10:01

박마담 박화영(한고은 분)의 서재희(윤시윤 분)에 대한 감정을 처음에는 어떤 사랑의 감정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했었다. 분명 박화영의 서재희에 대한 집착은 그렇게 볼 만한 부분이 있었다. 착각이었다. 아니 잊고 있었다. 이 드라마상처투성이 인간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남편이 죽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서재희에 의해 남편이 한 순간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욕했다. 비난했다. 탓하고 원망했다. 그러나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서재희는 제대로 걸음조차 걷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고, 서재희가 망가지자 그녀의 삶 또한 망가지려 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서재희를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 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기에.

 

죄였다. 그것은 분명 박화영의 죄였다. 남편의 죽음에 대한 아내 박화영으로서의 죄이고, 태어난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 박화영의 죄였다. 스스로 전혀 준비되지도 납득하지도 못한 용서는 그렇게 죄가 되었고 그녀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였다. 그녀는 죄인이다. 그리고 서재희는 그녀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든 원흉이다. 공범이다. 그녀가 저지른 죄의 증거다. 그녀가 자신의 죄로 인해 지옥에 있다면 마땅히 그 죄를 짓게 만든 원흉이며 공범이고 그 증거인 서재희 또한 그녀와 함께 지옥에 있는 것이 마땅하다.

 

놓아줄 생각이 없다. 결코 자유롭게 행복하도록 그를 놓아 보낼 수 없다. 박화영이 계속해서 그로 하여금 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할 것을 권유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해야 한다. 그녀가 서재희가 관심을 보이는 차봉선(이지아 분)에 대해 적개심을 보이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서재희는 결코 자신을 떠나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

 

확실히 4회에서 박화영이 서재희에 보이는 모습은 결코 선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사랑이라거나 어떤 호감을 가지고 그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냉정했다. 아니 냉정하다기보다는 냉혹했다. 여전히 서재희는 박화영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 서재희와 함께라면 박화영은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로 인한 죄와 함께. 그것은 어쩌면 박화영 자신에 대한 혐오이고 증오였을 것이다. 그런 자신이 증오스럽기에 서재희도 증오스럽다. 증오하면서도 더욱 집착하게 된다.

 

하기는 환자다. 그래서 박태화(조민기 분)가 있다. 그는 듣는 사람이다. 들어주는 사람이다. 그는 차봉선에게서도 듣는다. 윤시윤으로부터도 듣는다. 박화영으로부터도 듣는다. 박태화를 통해 차봉선, 윤시윤, 박화영, 세 사람은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게 된다. 평소 보이는 일상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들이 박태화를 통해 청자에게 들리는 것이다.

 

이중구조다. 마치 연극무대의 세트를 보듯 일상의 모습과 이면의 감추어진 모습을 동시에 보이게 된다. 드라마를 처음 본느 순간 문득 든 생각이었다. <나도, 꽃>의 '꽃'은 어쩌면 김춘수의 '꽃'이 아니었을까? 소리없는 아우성. 그것은 이름을 불리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돌아보도록 느끼도록 그래서 이름을 부르도록. 이름을 불리기 위한 안타까움이라고나 할까? 이름이 붙여지기 전 이름없는 꽃의 아우성을 시청자는 그를 통해 지켜보는 것이다.

 

갈수록 흥미롭다. 점차 드러나는 등장인물들의 상처에 대해. 자신을 떡볶이 가게에 맡겨 놓고 남자를 만나려 여관에 갔던 어머니. 당연히 할 수 있는 이혼이고 재혼이건만 차봉선이 유독 버려졌다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같은 거리감이 더욱 어머니 김도미(김지숙 분)로 하여금 차봉선과 거리를 두고 김달(서효림 분)만을 집착하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상처가 상처를 만들고, 그 상처가 또다시 상처를 키운다. 차봉선에게 김달이란 그러한 어머니 대신이다.

 

무언가 외롭다. 외롭다기보다 삭막하다. 그런데 따뜻하게 감싸는 것이 있다. 차봉선같다. 결국에는 모두가 환자라. 고도화되고 거대화되는 현대사회에서 거의 상당수 사람들이 환자일 것이다. 그래도 위로를 받으려 한다. 구원을 찾으려 한다. 싸우고 부딪히며 어떻게든 살아가려 한다. 박화영이 박태화로부터 듣고 싶어 했던 그 이야기처럼. 그것은 죄가 아니었을 텐데.

 

어쩌면 현실이 곧 지옥일 것이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그 체온에 기대어 끌어내리며 버티며 사는 지옥일 것이다.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지옥에서도 살기를 바라는 이들. 구원이란 지옥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 지옥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위로일 것이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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