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특수사건전담반TEN - 불어터진 짜장면이라도 입에 쳐넣으면 살아갈 힘이 되는 거야!

까칠부 2011. 12. 3. 09:08

"독사야, 딱 한 대만, 딱 한 대만 제대로 때리자! 한 대도 못 때리면 개코한테 면이 안 서잖아?"

 

솔직히 감탄했다. 처음은 피해자인 형사 개코 안상택의 집으로 프로파일러 남예리(조안 분)이 무단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프로파일링자료를 수집하면서였다. 쌓여 있는 짜장면 그릇들을 보고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켰는데 그것이 영 맛이 없었다.

 

"음, 맛이 영 아니로구만. 그동안 어떻게 시켜 드셨을까? 뭐든 잘 먹는 타입."

 

그리고 거의 마지막 장면, 형사 백독사 백도식(김상호 분)이 범인인 카페 'DOORS(도어즈)'의 주인과 마주하는 자리에서 그 이유가 나온다.

 

"개코가 죽고 싶어 했다고? 내가 그 새끼 병아리 때부터 뭣부터 가르쳤는지 알아? 형사생활 아무리 힘들고 아무로 좆같은 꼴 많이 봐도 다 버티면 살 만 하다고. 불어터진 짜장면이라도 입에 쳐 넣으면 살아갈 힘이 생긴다고 그것부터 가르쳤어, 이 개새끼야!"

 

형사 안상택이 매일같이 시켜 먹던 그 맛없는 짜장면은, 그렇더라도 개코 안상택에 있어 살아갈 힘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과도 떨어져 살고, 빨래고 청소고 할 여유조차 없이 집조차 거의 들르지 못하는 형사생활에서도 그 짜장면이 있기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들을 그리워하고, 형사로서 범인을 쫓고, 그리고 집이라고 돌아와 잠시의 휴식을 취한다. 그런 힘든 가운데서도 안상택은 얼마나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충실하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이 말은 다시 범인이 백도식을 쓰러뜨리고 절뚝거리며 도망치다가 TEN의 추격에 쫓겨 하마트면 고가에서 떨어질 뻔했을 때 그에게 붙잡고 올라 오라고 지팡이를 내밀며 반복된다.

 

"너 아주 겁장이라며? 죽을 용기도 없잖아, 너? 확 밀어버리기 전에 잡어! 그래, 살아라! 너같은 쓰레기라도 살다 보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그렇게 믿는 게 용기니까!"

 

바로 이번 에피소드의 주제가 아니었을까? 하필 스스로 죽을 용기조차 없어 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야 했던 피해자들이었다. 범인 역시 자신의 악의를 드러낼 용기조차 없어 죽고자 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여지훈(주상욱 분)이 처음 범인을 두고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타입의 연쇄살인범이라 추측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지나치게 드러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강한 자의식과, 그러면서도 철저히 범죄를 은폐하는 이중성, 하지만 결국 범인 자신이 겁장이라 자신의 강한 자의식마저 숨어서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 범인에 비하면 줄곧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하는 상황에서도 다만 한 대라도 때리고자 달려드는 백도식의 모습은 얼마나 처절하고 아름다운가?

 

모든 상황이 끝나고 범인마저 체포하고 난 뒤 여지훈에게 백도식은 이렇게 허세를 부린다.

 

"나는 겉으로 티나는 스타일이고, 저 새끼는 속으로 아마 골병 엄청 들었을 걸? 저 새끼 이제 오래 못 살아, 저거. 아야!"

 

몇 년 되었을 것이다. 팀 버튼 감독이 기성세대와 화해하며 만든 영화 <빅 피쉬>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노인시설에 봉사활동을 가거나, 아니 가까이 계신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그렇게 자신에 대한 과장과 허세가 심하다. 그조차 없다는 것은 참으로 가련한 것이다. 그 만큼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만큼 자신이 대단하던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다시 그 만큼 그 시절 열심으로 부딪혔다는 뜻일 것이다. 제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부딪히고 때로 깨지며 지금까지 살아 왔다. 그에 대한 훈장이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할 것이다. 마치 불어터진 짜장면처럼. 그렇더라도 지금 이순간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스스로를 살아있게 만든다.

 

하기는 그래서 군대 갔다온 사람들은 그렇게 허풍이 심하다. 세상 고생은 혼자 다 한 것 같다. 세상 신기한 일은 혼자서 다 겪은 것 같다. 그 만큼 힘들었으니까. 그 만큼 힘들었기에 그것을 견뎌낸 자신이 대견한 것이다. 그 대견함으로 더 힘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람은 비관에서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만 낙천에서 살아갈 힘을 갖게 된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어떤 누구라도 살아가다 보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살아가라.

 

사실 죽을 용기라는 것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죽고자 하는 상황이라면 용기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 사람이란 아주 간단하게도 목숨이 끊어지고 한다. 오히려 더 두려운 것은 삶과 마주하는 용기다. 사람을 죽이는 용기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용기다. 그까짓 사람을 죽이고서도 죽인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용기 따위 어디에 쓰는가? 설사 죽음을 선택했더라도 자신의 죽음과 마주하지 못하는 용기란 용기가 아닌 것이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였다. 그들은 삶도 선택하지 못했고 죽음도 선택하지 못했다. 범인 역시 살인자도 선택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평범한 삶을 지키지도 못했다. 약물에 의지해서야 겨우 목숨을 끊을 수 있고, 약물에 의지해서야 겨우 죽일 마음을 먹을 수 있다. 뭐가 그리 대단할까?

 

어떤 상황에서도 한 대라도 더 때리고자 하고, 칼에 맞고서도 범인을 놓칠 수 없어 먼저 쫓으라 말하고, 이내 상처입은 몸으로 뒤쫓아 지팡이로 떨어지려는 범인을 구한다. 아끼던 후배를 죽인 범인을, 그것도 자기의 몸에 칼을 박아 넣은 범인을 기꺼이 살릴 수 있는 용기. 백도식이라고 어찌 그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없을까? 그조차 이길 수 있는 그것이 진정한 용기일 것이다. 그토록 아끼던 후배의 전화번호이건만 자신의 핸드폰에서 그 번호를 지우며,

 

"잘 가라 개코야. 언젠가 저 문 밖에서 만나자."

 

죽은 이와 마주하는 것은 죽고 나서도 충분하다. 살아있는 동안은 살아가는 것이다. 죽은 이에게 언제까지나 얽매이기보다 그 죽음마저 가슴에 묻고 딛고서 살아가는 것이다. 장례란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지 죽은 이를 부여잡고 평생을 함께 살자는 것이 아니다.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될 때는 만나게 되더라도 지금은 잊고 살아가려 한다.

 

어쩌면 이야말로 형사 백독사 백도식을 위한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맞선을 보러 다니며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는 그같은 노력일 것이다. 항상 웃으려 하고, 항상 여유를 잃지 않고, 삶 그 자체를 즐기려 한다. 살아있다고 하는 그 자체를 즐긴다. 아마도 그만큼 형사생활을 하며 보아온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어둠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하지만, 어떤 이들은 어둠이 있기에 더욱 빛을 찾게 된다.

 

아마도 그래서 더욱 상징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연쇄살인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윤성민의 어두운 방안에서 창으로 비쳐드는 불빛을 거울로 반사하여 비추고 있는 남예리의 모습은. 마치 윤성민의 내면에 깃든 어둠과 그것을 밝히고자 하는 남예리의 해맑은 의지를 대비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범죄자의 내면에 깃든 어둠에 법과 질서라고 하는 빛으로 비추고자 하는 경찰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아마 감독이 의도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매우 양식적이고 장식적이다. 아니었을까?

 

그리고 또 하나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이 경찰대학원 교수이기도 한 여지훈이 강의를 듣고 있던 경찰들을 대상으로 자살로 결론지어진 사건의 비밀을 풀어내는 장면이었다. 추리란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추리라고 하는 어떤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이다. 하지만 그저 교육을 받으러 온 일반경찰들이었음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훌륭히 범인의 트릭을 밝혀낸다. 어쩌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쉽고 당연한 상식이지만 얼핏 그냥 넘어가기 쉽기에 자살로 규정지어진 사건들이었다.

 

파격이었을까? 원래 이같은 추리물에서 경찰이란 한결같이 바보 멍청이로만 그려지는 터라. 경찰이 주인공인 수사물이라 할지라도 주인공을 제외한 경찰이란 모두가 바보에 멍청이들이다. 오히려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을 방해나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다행일 것이다. 물론 드라마도 역시 그러한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경찰의 경찰로서의 지식과 경험에 의지해 사건성을 밝혀내는 장면은 무척 신선했다.

 

수사물의 정석일 것이다. 탐정물은 탐정 혼자서 열심히 머리를 굴려 사건을 해결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수사물은 기본적으로 팀워크를 전제한다. 경찰이란 조직이다. 구조다. 그러한 조직과 구조 안에서 철저한 협력에 의해 사건이 해결된다. 프로파일러 남예리, 발이 넓은 박민호(최우식 분), 경험이 풍부하고 직관이 날카로운 민완형사 백도식, 그리고 범죄심리학 교수로서 그들이 가져온 모든 정보를 분석하여 최적의 결론을 내놓는 팀장 여지훈, 첫회 전혀 다른 사건을 위해 출발해서 모두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였던 것처럼 때로 전혀 따로 행동하면서도 어느 순간 그들은 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 백도식이 'DOORS'라는 상호의 카페를 찾은 그 순간 남예리가 죽은 사람들에게서 전설적인 록그룹 'DOORS'라고 하는 공통점을 찾아낸 것처럼. 백도식처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여지훈 역시 백도식이 'DOORS'의 주인을 찾는 그 시점에서 그를 가장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리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다. 어느 개인의 특별함이나 뛰어남이 아니다. 박민호가 없어도 곤란하고, 남예리가 아니어도 어렵다. 백도식이 있기에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며 사건에 접근할 수 있고, 여지훈이라는 브레인이 있어 모든 것을 일관하여 지휘할 수 있다. 팀이란 그런 것이다. 이제까지 방영되었던 많은 수사물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이다. 한두 개인의 특별함만을 쫓으려 했지 팀의 힘을 보여주려 하지는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볼만한 수사물을 만났다고나 할까?

 

트릭 자체는 그다지 대단할 것이 없었다. 강의를 듣던 경찰들이 트릭을 밝혀내는 것에서 그것이 이 드라마에서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그보다는 사건을 만나고 그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보이는 대로 이 드라마는 추리물이 아니다. 그보다는 수사하는 과정과 수사관 자신을 보여주려는 수사드라마다. 어떻게 사건을 풀어가고 사건의 끝에서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가. 그 메시지 또한 상당히 심오하다. 트릭을 풀어가는 과정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있겠지만, 수사라고 하는 과정과 수사관 자신의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무척 만족하며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남예리의 매력이 대단하다. 아이처럼 순수하고 소녀처럼 천진하다. 형사라는 느낌조차 전혀 없이 해맑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 보여지는 그 섬뜩한 날카로움은 무엇인가? 감수성일까? 너무 순수해서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것일까? 조안이라는 이름의 배우에 대한 재발견일 것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배우였을 줄이야. 순간순간 짓는 표정이 보는 이의 가슴마저 설레게 만든다. 아직은 어딘가 어색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런 것조차 어느새 무시하고 말 정도로 그녀는 매력적이다.

 

삶이란 진흙탕과 같은 것이다. 자신있게 범인을 흠씬 혼내주어 죽은 후배의 원수를 갚으려 해도 정작 범인이 자신보다 싸움을 더 잘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사람을 죽이다가도 백도식이 약에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흠칫 놀라 모습을 구기고. 절룩거리며 도망가는 모습은 얄밉기보다는 가련하기까지 하다. 겨우 몇 대 때려주고는 칼을 맞고 늘어져 있는 백도식이나, 그럼에도 어느새 여지훈에게 큰소리를 치는 백도식이나,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람은 살아가지 않는가.

 

역시나 정교하게 배치된 장면들이 구미를 더욱 돋우는 드라마였다. 이야기도 훌륭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도 훌륭하다. 정석적이면서도 세련되다. 근래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다. 주제는 더욱 훌륭하다. 금요일의 즐거움이다. 아직도 설렌다. 재미있다.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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