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브레인 - 김상철의 이강훈을 위한 마지막 선물, 마침내 긴 여정이 끝나다!

까칠부 2012. 1. 18. 11:08

이강훈(신하균 분)은 완전무결하다. 실력에 있어서도 커리어에 있어서도 그에게 문제될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이제 자신마저 뛰어넘었으니 그의 오만한 자신감 만큼이나 최고의 위치에서 더욱 최고를 향해 승승장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으로 끝인가?

 

만일 이강훈의 커리어에 문제가 생길 것이었으면 자신이 그것을 가려주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이강훈의 실력이 미치지 못해서 실수를 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그 부분을 자신이 채워주려 했을 것이다. 이강훈은 그의 과거니까. 그의 아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이강훈에게는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전혀 아무런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불안했다. 자신 또한 자신의 완전무결함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김상철(정진영 분)의 이강훈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강훈의 수술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의 수술에 허점이 있었다. 물론 그 자체로도 훌륭하기는 했지만 이강훈의 오만할 정도로 완고한 에고는 그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의사로서의 완전무결함에 흠집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돌이켜 본다. 어떻게 김상철이라고 하는 인간은 의사로서 더욱 치열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가? 그것은 죄의식이었다.

 

자신의 환자를 죽였다. 자신의 터무니 없는 실수로 무고한 환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도망치고 말았다. 자신의 실수를, 잘못을 외면한 채 단지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비겁하고 비열하게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의사로서 실격이다. 아니 인간으로서도 실력이다. 그것은 그의 원죄였다. 그래서 그는 더욱 자신의 원죄를 씻기 위해 자기 자신마저 돌아보지 않고 의사로서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죄란 항상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케 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죄를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이강훈에게 그러한 용기가 있음을 보았다. 수술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허술함으로 인해 김상철의 눈이 멀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괴로워하며 어떻게 해서든 김상철의 눈이 나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하고 있었다. 그를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도 인정할 수 있다. 자신의 커리어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의 완전무결한 의사로서의 삶에 작은 오점을 남긴다. 작은 죄의 얼룩을 남겨 앞으로도 계속해서 순조로울 그의 의사로서의 삶에 작은 턱을 만든다. 정신없이 내달리던 와중에도 잠시 덜컹거리고 나면 문득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리라.

 

그의 계산대로였다. 이강훈은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의사로서의 명성이 쌓여가며 최고의 명예와 지위가 그에게 주어지고 있었다. 새로운 기회와 더불어 그는 더욱 멈추지 않고 위를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항상 김상철과 마주해야 했다. 김상철이란 또한 이강훈의 과거였으며 완결되지 못한 자신이었다. 미처 김상철을 위해 하지 못한 모든 것들이 마음에 짐이 되어 남아 그로 하여금 멈춰서서 돌아보게 만든다. 과연 이대로 좋은가? 과연 이대로도 문제가 없는가? 여전히 그는 앞으로 달려가지만 가끔은 멈춰서서 생각하게 만든다. 아마 장차 필요한 순간 그것은 그에게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가 되어 줄 것이다. 다른 길을 찾아 돌아갈 수 있는 핸들이 되어 줄 수도 있다. 그가 남긴 이강훈에 대한 마지막 선물이었다.

 

오만해도 좋다. 거만해도 좋다. 마음껏 자신의 능력껏 욕심을 채워도 좋다. 그 또한 김상철이 바라는 바다. 그는 자신과 같지 않기를 바란다. 죄에 짓눌려 자신마저 잃어버린 채 쫓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를테면 백신이다. 사실 그렇게 문제가 될만한 대닪나 실수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어지간한 의사라면 그 자체로도 완벽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강훈의 완고함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뿐. 하지만 그것으로도 이강훈으로 하여금 의사로서의 완전무결함에 가끔은 자신을 돌아보도록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죄스러워하고, 그래서 후회하고, 그러므로 반성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그것은 김상철 자신의 눈이 보이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더 고마운 것이다.

 

진정 김상철은 이강훈의 아버지였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눈마저 희생하는 아버지였다. 스승이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던가.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같다고. 섬기는 것만 같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군주와 스승과 아버지는 모두 자식을 대하는 마음이 같다. 자신의 몸처럼 아끼고 자신의 몸을 내던져 헌신한다.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 여긴다. 사명이라 여긴다. 그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아마 이강훈의 성공을 지금 가장 반기고 있는 것도 김상철 자신이 아닐까? 어딘가에서 이강훈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성공에 못마땅한 듯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도 김상철 자신일 것이다. 그는 그의 눈의 대신이다. 그가 두고 온 의사로서의 자신의 대신이다. 이강훈의 성공이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바란다. 부디 아무 일 없기를. 그의 앞날에 전혀 아무런 문제도 장애도 없기를. 이강훈은 이강훈일 때 가치가 있다.

 

결국 아무리 후회하고 반성하더라도 이강훈은 이강훈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의식은 실패를 겪는 그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가속하도록 되어 있다. 이제까지 성공을 위해 달려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공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이강훈이다. 그것이 이강훈의 방식이다. 그 과정에 아무런 흠도 문제도 없을 것이다. 이강훈 자신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김상철에 대한 보상이다. 아니 자신에 대한 보상이다. 자신에 대한 증명이다. 아무리 누군가 비난하더라도, 그래서 윤지혜(최정원 분)이 자신을 떠나려 하더라도 그래서 그는 멈출 수 없다. 윤지혜까 차라리 자신을 따라와 주기를 바란다.

 

이강훈이 굳이 장유진(김수현 분)이 아닌 윤지혜를 선택한 이유였다. 응석을 부린 것이었다.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상대를 선택한 것이었다. 마음껏 심술을 부리고 응석을 부려도 받아줄 수 있는 그런 편한 존재를 찾았다. 항상 부족해서 마음쓰이고 보살펴주고 싶은, 그래서 항상 손을 내밀게 되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가는 길을 뒤쫓아 와야 한다. 그가 그녀를 쫓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앞만 보며 정신없이 달려가고, 문득 멈춰서서 돌아보면 그 자리에 김상철과 함께 그녀가 있다. 윤지혜의 부탁을 외면하고 자신의 길을 가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을 쫓아온 윤지혜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 이유다.

 

마무리가 상당히 급하다. 그리고 허술하다. 어수선하게 이것저것 다 꿰어맞춘 느낌이다. 하기는 그래서 완결이라는 느낌일까? 연속적이지 않은 단락된 느낌이 이제야 비로소 모든 것이 끝이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아쉬움이 있어도 그것은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이지 아직 마무리짓지 못한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김상철의 실종과 더불어 마무리되고 마치 짜투리처럼 나머지 이야기들만이 아쉬움과 함께 그 끝에 맺힌다. 다만 역시 이강훈의 드라마구나 하는 아쉬움은 진하게 남는다.

 

이강훈 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오로지 이강훈 뿐이었다. 이강훈과 김상철만이 있었다. 윤지혜조차 겉돌고 있었다. 이강훈의 라이벌이었을 서준석(조동혁 분)도 존재감을 잃었다. 중요한 소재였을 병원장 선거조차 아예 없는 이야기인 양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고 말았다. 원래 병원장 선거는 이강훈이 고재학(이성민 분) 과장과 첨예하게 갈등을 빚게 되는 중요한 계기였다. 서준석과의 관계에서도 그의 아버지가 병원장 선거에 출마한 병원내 권력자라는 점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 전혀 엉뚱한 인물이 병원장이 되는 것으로 과정없이 끝나고 말았다. 오로지 이강훈과 김상철만을 남긴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 대해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그만큼 이강훈이라고 하는 인물의 체취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강훈의 일인드라마였지만 이강훈이기에 괜찮다. 그래서 김상철이 있다.

 

아무튼 인간의 죄라는 것일 게다. 어째서 모든 종교는 하나같이 인간의 원죄를 이야기하는가.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함과 나약함과 그러함으로써 지을 수밖에 없는 죄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돌아보라는 것이다. 반성하라는 것이다. 그 죄를 짊어지고 스스로에 겸허하라는 것이다. 죄를 외면하려 할 때 인간은 비겁하고 비열하다. 비겁하고 비열하며 자기 자신의 양심마저 속이게 된다. 자신을 속이고 자신을 파괴하게 된다. 죄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 인간은 겸허해지고 솔직해진다.

 

이강훈이 그토록 강렬하게 김상철을 증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필자가 잘못 보았다. 어머니 김순임에 대한 죄의식이라 여겼는데 그 이전에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이미 죽은 이이기에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할 미안함이 있었다. 어머니에게도 그러더니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죽을 것을 알면서도 이강훈은 어머니 김순임을 놓아 보내지 못한 것이리라.

 

그것을 김상철도 알았다. 말했듯 이강훈은 김상철 자신이었으니까. 그래서 그에게 자신의 죄를 보냈다. 증오와 마주하지 못하는 이상 증오를 씻어낼 수 없다. 증오는 죄를 범한다. 이강훈이 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차라리 돌아와 자신을 베기를 바란다. 자신을 죽이기를 바란다. 그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자신의 삶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를. 그래서 자신이 후회를 남긴다. 그것은 자신의 속죄이며 스스로 자유로워지기 위한 선택이다.

 

어수선하지만 얼추 정리가 깔끔하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는 사람은 남고, 이어질 사람은 이어진다. 고재학 과장 같은 사람도 필요하기는 하다. 조직에 윤활제 역할을 한다. 이기적이고 욕심은 많지만 천성이 악하지는 않다. 그는 여전히 병원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어떻게든 사람은 살아간다. 꿈을 꾸며, 욕망하며, 사랑하며, 그리고 때로 후회하고 반성하며.

 

전혀 기대 이상이었다. 처음 시놉시스를 보았을 때는 이렇게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신하균은 축복인 동시에 재앙이기도 할 것이다. 파천황이라는 말을 이런 때도 쓴다. 드라마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는데 그럼에도 완성도가 있다. 기적이다. 좋은 기억만 남는다. 기적같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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