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무한도전 - 내가 유재석인 줄 알아? 리얼보다 더 리얼한 역설의 재미...

까칠부 2012. 1. 22. 07:52

하여튼 그래서 이경규 역시 작년에는 '사랑과 배려'를, 올해는 '솔선수범'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욱사마 이경규와 사랑과 배려는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날방의 대가인 이경규와도 솔선수범은 맞지 않는 옷 같다. 역설이 반전이 되어 웃음을 불러온다.

 

착한 예능인의 대표였다. 누구나 말한다. 성실과 배려라고. 독설의 대명사 김구라조차 유재석의 완벽에 가까운 자기관리 앞에서는 꼬투리 잡을 만한 게 없다. 과연 저 유재석에게 저와 같은 권위주의적이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일면이 있던가? 그것은 배덕감일 것이다. 가장 순결해야 할 존재가 타락했을 때 그 역설에서 오는 쾌감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사랑과 배려'를 이야기하는 이경규보다 '내가 유재석이냐?'고 외치는 유재석이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경규는 단순한 역설이지만 유재석은 배반이며 배덕이다. 만일 실제의 유재석이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 것이다. 속았다며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마저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상상을 하는 것마저도 죄악감을 갖게 된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기에 그를 상상하는 대중의 욕망은 음험하기까지 하다.

 

하기는 그래서 유재석 역시 평소 성실과 배려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이용해 역설적인 모습을 짐짓 보임으로써 자신을 웃음의 소재로 삼고 있기도 했었다. 버럭하는 이경규는 사랑과 배려로써, 성실과 배려의 유재석은 이기와 독선과 권위주의로서. 때로 비겁하기도 때로 비열하기도 하다. 다른 누구보다 유재석이 그러하기에 더욱 웃게 된다. 전혀 그럴 것 같은 이미지가 아니기에 그것이 더 재미있다.

 

설마했다.

 

"내가 유재석인 줄 알아?"

 

설마 거기에서 길을 밀어 떨어뜨릴 줄이야. 예능과 사회는 다르단다. 자기는 유재석이 아니란다. 역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가 유재석인 것을 알고 지금 방송중인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유재석이 스스로를 부정하니 <무한도전>과 시청자 사이에는 거대한 역설이 만들어진다. 과연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무한도전>이고 지금 길을 밀어 떨어뜨린 사람이 유재석인가? <무한도전>과 유재석의 선언에 동의해야겠지만 그 전에 <무한도전>과 유재석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당황과 놀라움이 이내 웃음으로 터져나오고 만다. 이것 참 재미있다.

 

더구나 더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무한도전>과 유재석에 대한 배반이 오히려 더 강한 현실성을 띄게 된다. <무한도전>을 무한상사로 바꾸고 멤버들을 사원으로 간주했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일까? 메인MC는 남다른 능력을 인정받아 일찌감치 승진한 부서의 장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 각자의 현재 모습을 바탕으로 직급이 주어진다. 유재석은 부장, 이인자 박명수는 차장, 정준하는 만년과장이고, 정형돈, 노홍철, 하하에게도 각자의 직급이 있다. 길은 인턴이다. 현재 <무한도전>에서의 그의 비중을 보았을 때 적절한 설정일 것이다. 그러면 과연 그런 상황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인가?

 

상상해 보게 된다. 회사에서 가장 높은 관리자급은 유재석과 그를 바라보는 멤버들이. 오로지 유재석을 중심으로 유재석만을 바라보고 있다. 인지상정으로 유재석의 위치에 있다면 누구나 오만해지기 쉬울 것이다. 다른 멤버들이 오로지 그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려 한다면 거만이 몸에 밸 것이다. 독선적이 되고 독단적이 된다. 그조차도 잘 알지 못하게 된다. 유부장이다.

 

이 또한 유재석이라는 최고의 예능인이 갖는 매력일 것이다. 이렇게까지 배덕감이 강한 예능인은 아직까지 유재석 말고는 없다. 어쩌면 주위에서 흔히 보는 모습들이다. 많은 샐러리맨들에게 직장상사란 그런 이미지로 보여질 것이다. 그런데 유재석이 연기하니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다. 악마라고까지 불리우던 박명수가 한 직급 낮은 차장이 되어 눈치를 보며 아첨을 할 때, 그러면서도 평소의 박명수가 언뜻언뜻 대비되며 그러한 역설을 현실로 만들어 버린다. 역설이 강할수록 충격도 강하다. 재미는 항상 충격량에 비례한다. 웃게 된다.

 

물론 과연 그렇다고 자주 써먹을 수 있는 모습인가? 유재석의 힘은 그의 성실함과 배려에서 나온다. 착한 예능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바른 이미지에서 나온다. 이번의 역설도 그의 그러한 이미지에 힘입은 역설인 것이지 그러한 역설이 없다면 재미도 지금처럼 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제까지처럼 가끔 보이는 정도로는 재미있지 않겠는가. 충분히 재미있었다.

 

아무튼 역시 세상에 가장 재미있는 것이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라 했었다. 인간은 그렇게 천성이 악하게 태어났다. 그러면서도 남 싸우는 것을 보면 중간에서 뜯어말리고 중재해서 화해시키고 싶다. 이는 인간의 선한 부분이다. 만화에서 주인공들이 망치를 휘둘러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이내 그 망치가 뿅망치로 바뀌는 이유다. 망치가 성악설적인 폭력에 대한 욕망을 보여준다면 뿅망치는 그럼에도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고 싶지 않은 선량함을 말해준다. 딱 그 만큼만 부담없이 싸울 수 있다면.

 

참 시답닪은 싸움이었다. 하기는 동갑내기이기에 그리 싸운다. 수직적 질서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 있기에 서로 서슴없이 싸움을 걸고 받아줄 수 있다. 별 사소한 일로 싸움을 걸고, 별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승부를 겨루고. 일단 싸우니까 싸우는 것을 봐서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어느 한 쪽이 다치지 않는다는 안도가 있어 재미있다. 폭력에 대한 관음과 선량하고자 하는 자존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물론 그러자면 진지해야 한다. 진지해야 싸움에 진심으로 몰입할 수 있으니.

 

별 대단할 것도 없는 이유로 싸움을 시작한 노홍철과 하하 당사자들이나, 그것을 말리지 안고 판을 크게 벌린 제작진이나, 그것도 좋다고 찾아와 열광하며 보고 있는 관객들이나, 하지만 그것이 또한 즐거움 아닌가?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세상 일이란 그렇게 대단하게 심각할 것도 진지할 것도 없다. 노홍철과 하하의 싸움처럼 진지하지만 오히려 대단치 않을 것이다. 웃음의 원리다.

 

어쨌거나 재미있다. 별 싸울 일도 아닌데 싸우는 자체도 우스꽝스럽고, 그것을 체육관까지 빌려 판을 크게 벌린 것이 또 황당해서 우습고, 그것을 보려 몰려든 관객들이 공감가면서도 엉뚱해서 우습고, 그리고 그런 가운데 유독 당사자들이 진지해서 우습다. 이래저래 웃게 된다. 웃을 수밖에 없다.

 

역설은 웃음이다. 역설이야 말로 재미다. 반전이며 충격이다. 놀라고 당황하고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낙천과 긍정이다. 사소한 것이다. 대단치 않은 것이다. 심각할 일이 없다. 유재석이 유부장이 되고, <무한도전>이 <무한도전>을 디스한다. 거창하지만 결국 장난같은 싸움이다.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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