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불후의 명곡2 - 대선배의 칭찬, 탄탄한 기초와 심도있는 연습량 잘 들었습니다!

까칠부 2012. 1. 29. 08:12

"선배님께 트리뷰트한다는 마음으로 하겠습니다."

 

<불후의 명곡2>를 보고 있으면 가장 마음이 흐뭇해지는 장면일 것이다. 젊은 후배들이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어느새 나이가 지긋해진 선배들이 그것을 즐거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한참 어린 후배들이 선배를 위해 그들의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트리뷰트란 말 그대로 존경하는 선배에 대한 후배들의 진심어린 마음의 선배다. 단순히 지난 역사로부터 선배와 그의 업적을 발굴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금에 맞게 나름대로 재해석함으로써 그것을 현재로 이어간다. 선배란 박제된 역사속의 기억이 아닌 지금도 역시 생생한 현재다. 선배가 있기에 후배가 있다. 선배가 이룬 결과들이 있기에 후배가 그것을 이어간다.

 

그것은 또한 세대간의 연결이이기도 하다. 송창식의 노래를 들으며 젊은 시절을 보냈던 부모세대와 샤이니에 열광하는 자식세대가 샤이니의 태민이 부르는 송창식의 '한번쯤'을 통해 서로 만나며 어우러진다. 태민의 감미로운 미성을 듣고 송창식이 부르던 멜로디와 가사의 아름다움에 심취한다. 굳이 무대의 완성도를 따질 필요는 없다.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송창식의 세대에는 그들의 음악이 있었고 샤이니의 세대에는 또한 그들만의 음악이 있다. 그것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선배와 후배가, 부모와 자식이, 시공을 거슬러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

 

<불후의 명곡2>가 갖는 진정한 가치이며 의미일 것이다. 젊은 가수들은 자신들의 기량을 뽐내고, 어느새 뒤로 물러났던 중견 이상 선배가수들은 후배들에 의해 다시 발견되고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알려진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훌륭한 음악인과 음악인들이 있다. 그동안 팝을 위주로만 들었다는 브라이언이 프로그램을 통해 예전의 명곡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인터뷰한 장면은 그것을 말해준다. 아예 그런 선배가 있는 줄도 몰랐던 사람들도 있었을 테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전혀 모르던 노래들도 어느새 자기 노래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무엇보다 선배와 후배가 한 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단순히 음반을 통해 만나는 것이 아니다. 직접 선배가 보는 앞에서 마치 재롱잔치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선보인다. 혹시나 마음에 안 들어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면서도 칭찬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설레어하는 것이 보인다. 칭찬이라도 한 마디 듣게 되면 그 장면만 계속해서 반복해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이 빈말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TV로만 보던 후배들과 직접 마주하고, 그동안 이야기로만 음반으로만 듣던 선배의 앞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고, 제아무리 중견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도 대선배 앞에서는 그들은 그저 마냥 어리기만 한 후배에 불과하다. 하늘같은 대선배가 건내는 한 마디는 그래서 매우 특별하다.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활동했던 전설 앞에 그들은 작아지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탄탄한 기초와 심도 있는 연습량 잘 들었습니다."

 

'상아의 노래'를 열창하고 난 소냐에게 송창식이 위와 같은 칭찬의 말을 건냈을 때 필자 역시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단순히 노래를 잘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편곡이 좋았다거나 무대가 훌륭했다는 칭찬의 말이 아니었다. 얼마나 그동안 노력해 왔는가. 지금의 무대에 서기 위해 노력해 왔던 시간들에 대한 말이었다. 그 시간들을 견디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대견함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송창식이 그것을 알아주고 있었다.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울까? 잘한다는 말보다 몇 배 더 기쁜 인정이었을 것이다.

 

누가 해줄 수 있을까? 팬들이 해주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프로듀서나 작곡가들이 해주는 칭찬이나 질책과도 다르다. 선배란 매우 특별하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갔던, 그것도 무척이나 큰 발자취를 남기고 간 선배의 한 마디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비단 대중음악만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권위라는 것이다. 단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격스럽다.

 

그런 점에서 <불후의 명곡2>란 시청자는 물론이고 가수들 자신들에게도 한바탕의 축제이지 않을까? 더구나 선배들과 직접 마주할 기회가 적었던 젊은 후배들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어느새 뒤로 물러나 있던 선배들의 입장에서도 그것은 그들 자신을 위한 즐거운 축제한마당이었을 것이다. 송창식이 굳이 <나는 가수다>가 아닌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하는 것이나, 젊은 가수들이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하는 것을 반기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것이 보는 입장에서도 즐겁다.

 

소냐의 '상아의 노래'는 완벽 그 자체였다. 드라마틱한 구성과 더불어 노래 그 자체에 충실한 말 그대로 '열창'이 있었다. 노래만으로도 그동안의 모든 퍼포먼스를 압도했다. 알리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노래 자체를 몸으로 표현하려는 듯보였다. 노래란 단지 목으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다. 소리로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부르고 몸짓으로 보여준다. 노래는 때로 보기도 한다. 어째서 알리가 <불후의 명곡2>의 알리인가를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노브레인은 딱 노브레인이었다. 그것이 장점이면서 또한 한계다. 린의 '담배가게 아가씨'는 원곡과는 또 다른 상큼한 유쾌함이 있었다. 자기 이야기처럼 불렀던 송창식과는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꾸며 들려주는 진지함과 장난스러움이 있다고나 할까? 태민의 '한번쯤'은 목소리가 좋았다. 다양한 악기로 대곡으로 구성했지만 간결한 중심을 놓치지 않는 점은 편곡의 승리라 할 만했다. 그러나 '한번쯤'이라는 노래에 대한 해석은 조금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필자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무대는 다름아닌 팀의 '가나다라'였다. 힘있고 드라마틱했다. 다채로운 버라이어티 그 자체였다. '가나다라'가 이렇게 즐겁고 흥겨운 노래였구나. 이렇게 재미있는 노래였구나. 원래 좋은 노래였지만 그 노래의 가사들을 무대 가득히 채워넣고 있었다. 무대 전체가 음악이었다. 몸짓 하나까지 노래가 되어 무대를 채워넣고 있었다. 팀이라는 가수의 매력에 반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그는 최고였다.

 

김구라의 거침없는 언변과 신동엽의 능글맞게 출연자를 가지고 노는 멘트들이 끈끈한 접착제구실을 하고 있었다. 긴장을 풀고 경직된 것을 흐트러 놓는다. 적절히 출연가수들의 순서를 가지고 긴장을 조성하고 경연의 결과를 가지고 다시 긴장을 고조시키지만, 그렇다고 그 긴장에 눌려 프로그램이 경직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출연가수들의 면면도 그렇지만 <나는 가수다>에 비해 <불후의 명곡2>에 대해 가볍다는 인상을 갖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편안히 볼 수 있다. 즐겁게 유쾌하게 웃으며 한 바탕의 유희처럼 즐길 수 있다. <불후의 명곡2>의 또 하나 미덕일 것이다.

 

오랜만이라기에도 최근 송창식의 방송출연이 잦다. 반가운 일이다. 지지난주 정시로만큼은 아니지만 원로들도 가끔 바깥나들이를 하며 젊은 세대들과 만나고 해야 한다. 송창식을 본떠 만든 피규어가 정겹고 귀엽다. 재미있었다. 즐거웠다. 축제는 항상 즐겁다. <불후의 명곡2>가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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