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고개가 갸웃거렸다. 어차피 사람 죽이자는 격구다. 말위에서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모습을 보자고 사람들은 저리 모여 환호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작 장시에 날붙이를 단다 하여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이미 송길유(정호빈 분)가 노비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장시가 연마되어 마치 날붙이처럼 날카롭다 말하고 있었다. 마치 그동안은 사람을 안 죽인 것처럼.
하기는 격구시합을 마치 나라를 위해 쓰일 인재를 찾아내기 위한 행사인 것처럼 묘사하는 최우(정보석 분)의 연설 또한 역설이기는 마찬가지다. 격구시합이 모두 끝난 현재 과연 경기장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이가 몇이나 되던가? 겨우 말 위에 올라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이가 김준(김주혁 분) 하나이고, 그나마 목숨마저 잃은 이가 이제까지 수두룩하다. 비록 패했지만 만일 살았다면 거란과의 싸움에서 큰 몫을 했을 장사들이다. 하지만 모두 죽었다. 인재를 고르려는가? 죽이려는가?
어차피 도방에 소속된 사병들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약속되었다. 고려의 정규군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다. 도방에서 최씨정권의 사병으로 복무하는 것이다. 그것을 고려를 위해 헌신한다 말할 수 있는 배포가 확실히 최씨정권의 후계자답다. 도방이 고려고 최씨정권이 고려다. 그렇다면 김준은 최씨정권을 무너뜨렸으니 고려를 무너뜨린 것이 될까?
최충헌(주현 분)의 변명이 소름끼친다. 모든 독재자들이 내뱉는 변명이다. 내가 아니면. 내가 아니면 누가. 그래서 오로지 자신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이외의 모두를 배척하고 배제한다. 아우인 최충수를 죽이고, 외조카인 박진재를 죽이고, 명종과 희종을 폐위시키고, 신종에게는 양위를 강요하고, 덕분에 당대의 고종은 최씨정권의 말을 충실히 따르던 허수아비왕이었다. 오죽하면 최의가 제거당하고 최씨정권의 압력이 사라지자 오히려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바로 1년만에 죽고 있었을까? 그런데도 왕을 쫓아내기는 했지만 죽이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왕을 대우해 준 것이라 한다. 그 과정에서의 모든 죽음은 혁명이라는 말로 미화된다. 그야말로 철저한 자기중심적 사고라고나 할까? 오로지 나만이 옳고 나만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
독재자다. 둘 중 하나다. 최충헌을 미화하고자 쓴 것이거나, 아니면 최충헌을 통해 독재자의 추악함을 드러내고자 쓴 것이거나. 하지만 역시 적장자인 최우를 놔두고 굳이 최향(정성모 분)을 쫓아 시류에 영합하고자 하는 최충헌의 가신들을 보았을 때 역시 신하란 주군을 닮는 법 아니겠는가. 만일 최충헌이 그의 말처럼 올곧고 청렴한 주군이었다면 그의 신하들도 최충헌을 닮았을 것이다. 아니었다면 최충헌이 용납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이제는 최충헌 자신조차 손대지 못할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적장자인 최우가 최충헌을 문병조차 하지 못한다. 김덕명(안병경 분)과 같은 이를 곁에 두고 용납하고 있다는 자체가 최충헌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 최충헌에게 너무 물이 맑아 고기가 살지 못할 정도라 한다면 최우의 수준은 어떠했을까? 물론 집권초기 최우는 최충헌이 부당하게 모은 재산을 다시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줌으로써 아버지와 다른 존재임을 주위에 과시한다. 하지만 이내 본색을 드러내 민가 수백호를 임의로 철거하고 격구장을 설치하는 격구마니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고기가 살지 못할 정도의 깨끗함이라면 최씨정권의 수준을 알 수 있으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조롱이다. 너무나 명확한 사실에 그러나 최씨정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자주 쓰이지 않아 애써 무시하고 넘어갔던 막부라는 단어 또한 지나치게 자주 쓰이며 귀에 거슬리고 있다. 무사정권을 뜻하는 막부란 일본에서만 나타난 고유한 개념이고, 그것이 하나의 일반명사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에도시대 이후의 일이다. 고려에서 무신정권이, 더구나 최씨정권이 스스로를 막부라 부른 예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일본의 막부와 비슷한 무신정권이니 부르는 이름도 일본을 쫓아 당시 쓰이지 않던 막부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는가. 졸렬하다고나 할까? 이런 것이 사대주의일 터다. 일본과 비슷하니 우리도 막부라 부르자. 도저히 적응이 안된다.
어쨌거나 격구가 끝났다. 언제 끝나나 했는데 결국 끝나고 말았다. 몇 번을 맞아도 안 죽는다. 날붙이가 달린 장시에 다른 사람은 스치기만 해도 피를 뿌리며 쓰려지더니만 김준에 이르러서는 앞뒤로 둘러싸고 때리는데 아예 말위에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모두가 죽어나가는데 김준이 피를 흘리려니 허벅지에 베인 상처가 나는 정도다. 주인공은 역시 작가신의 보호를 받는다. 만화라면 그럭저럭 클리셰로서 보아넘기겠지만 너무 생생한 영상이 드라마를 코미디로 만든다. 김준은 장시만이 아니라 갑옷마저도 아주 특출난 것을 입은 모양이다. 허무하다. 말했듯 사람 죽이는 것 보려 찾은 격구장에서 장시에 날붙이를 붙였다 해서 흥분하는 등장인물들도 우습고. 대려서 죽이는 것은 상관없고 베어서 죽이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일까?
격구가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려 한다는 기대를 한 편 가져본다. 최우와 최향이 부딪히고, 최우가 정권을 잡는 가운데 몽골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마침내 몽골과 고려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그 과정도 추악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건 또 어떤 식으로 조롱하려는지 기대가 된다. 그냥 보면 최충헌에 대한 미화지만 뒤집어 보면 최충헌에 대한 지독한 조롱이다.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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