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혜(남상미 분)가 어려서 잃어버린 아버지가 유상준(김용건 분) 단장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딸을 찾는 유상준 단장이 있고 이정혜의 어렸을 적 사진을 들고 고아원을 찾은 사람이 있었기에 그리 추측했더니만 결국 작가에게 놀아난 셈이 되고 말았다. 이 또한 반전은 반전이다.
역시 여주인공이다 보니 무언가 하나 해내려는 모양이다. 그동안 이정혜가 하는 일이라고는 여주인공으로서 남주인공 강기태(안재욱 분)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말고는 없었다. 차라리 강기태를 위해 불철주야 노심초사 동분서주하는 유채영(손담비 분)에 더 이입될 정도였다. 그러니 이쯤해서 이정혜 역시 여주인공으로서 무언가 강기태를 위해 하나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필 강기태가 조태수(김뢰하 분)의 계획에 편승해 탈옥하려는 시점이었다. 이제 탈옥에 성공하고 나면 강기태는 탈옥수가 되어 쫓기는 처지가 되고 만다. 김재욱(김병기 분)도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그를 도와줄 수 없다. 범죄단체 조직 및 수괴죄라는 죄명은 장철환(전광렬 분)과 차수혁(이필모 분)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 하지만 탈옥은 엄연한 사실이고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죄가 된다. 그렇다면 법에 의해 쫓기게 될 강기태가 있을 곳은 어디일까?
극적인 반전이 없다면 결국 강기태는 조태수와 함께 몸을 피해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아마도 일본이 되기 쉽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누가 있는가? 바로 그때 조총련 소속이라는 이정혜의 잃어버린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70년대라면 아직 조총련이 일본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점이다. 강기태가 일본에 정착하려 할 때 그의 뒷배가 되어 줄 수 있다. 결국은 이정혜를 통해 이정혜의 아버지라는 사람과 강기태가 이어지지 않을까? 일본에서 힘을 키운 강기태가 다시 한국으로 역습해 들어온다.
다만 문제라면 그럴 경우 이야기가 지나치게 지저분해질 수 있다는 것일 게다. 차라리 초반에 일본으로 건너갔다면 보다 깔끔하게 일본에서 복수를 위해 돌아오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이미 겪을 것 다 겪고, 그리고 다시 일본에서 새로운 상황을 맞이한다. 아니면 일본을 생략하고 다시 수 년 뒤로 건너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한국내 김재욱 등의 상황이 필요 이상으로 상세하다. 최소한 10.26은 거치고 나서야 강기태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 텐데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가 되기 쉽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길이지만 가장 깔끔하게 떨어지기 힘든 선택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누군가 새로운 증인과 증거가 나타나 강기태의 무죄를 입증해 줄 수 있는가? 권력이 권력인 이유는 그같은 증인이나 증거마저도 깔끔하게 무시해 버릴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담당검사가 장철환에게 선을 대고 있다. 그에 의지해 검찰총장까지 노려보려 하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증인이나 증거가 나타난다고 강기태를 풀어주려 할까? 증거는 얼마든지 없애버릴 수 있고 증인 역시 증언을 번복할 수 있다. 장철환과 차수혁은 그만한 위치에 있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강기태가 풀려난다면 드라마에 많은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정말 의외였다. 거기에서 탈옥을 결심하다니. 감옥에서 있으면서 배후에서 신정구(성지루 분) 단장을 움직이며 다음을 기약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탈옥을 감행함으로써 전혀 앞으로를 예측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일본으로 건너가거나, 아니면 스스로 무죄를 입증하거나, 아니면 최악의 순간 직접 물리적으로 장철환에게 복수하고 산화하거나. 마지막은 선택지가 아니다. 두번째는 김재욱이 힘을 되찾기 전까지는 무리다. 그렇다면 첫번째인데... 역시 앞서 말한 문제가 있다. 과연 작가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려 하는가.
차수혁의 변신이 자못 흥미롭다. 이정혜 앞에서 그는 강기태를 친구라 말한다. 죄수복을 입은 강기태가 그를 불러세웠을 때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강기태 앞에 선다. 하지만 강기태를 구명하려는 강명희(신다은 분)의 전화는 단호히 거절한다.
아마 모두가 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강기태를 친구라 부른 것도, 강기태의 부름에 멈춰선 것도, 그럼에도 강명희의 전화를 거부한 것도. 그 순간에도 차수혁에게 강기태는 친구였을 테지만 그럼에도 야심을 위해 그가 밟고 가야 할 대상이었다. 모순되지만 누구나 마음 속에 그런 감정이 있다. 친구가 아니라서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가 아닌데 그것이 무슨 배신이겠는가? 친구이기에 배신을 한다.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말이 그래서 헛된 말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냥 끝내는 것이다. 사랑하니까 미안한 마음도 있고 더욱 독해지려는 다짐도 있다.
차수혁이 오히려 강기태에 대해 잔혹해 질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여전히 그를 친구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그에 대한 미안함이 나아 있다. 강기태의 아버지 일도 미안하고 지금 장철환의 옆에서 그를 궁지로 내몰려 하는 상황도 미안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돌이키기에는 서로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미안함마저 끊어내야 한다. 죄책감끼자 함께 떨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 강기태에게 잔혹해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강기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차수혁 또한 그렇게까지 지독스럽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양심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면 사람은 더욱 발버둥치며 지독해지려 애쓴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라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도 없다. 김재욱의 여유가 거기에서 비롯된다. 조태수 역시 자기가 우월한 입장에 있을 때는 한껏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 양심이 족쇄가 된다. 당장 벗어던지지 않으면 안되는 굴레가 된다. 김재욱이나 조태수나, 장철환 역시 그로부터 벗어난지 오래다. 조명국(이종원 분)은 단지 눈앞의 이익에만 신경쓸 뿐이다.
원래 변절자가 더 지독스러운 까닭이다. 미안함이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안함마저도 끊어버려야 하기에. 변절을 했다면 이제부터 더 잘보여야 하는 대상이 있을 것이다. 그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충성심을, 의지를 과시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과정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디테일하다. 이미 강기태를 함정에 빠뜨려 헤어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고도 그가 느끼는, 그리고 드러내는 감정들이 그래서 상당히 흥미롭다. 그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아무튼 도무지 앞으로를 모르겠다. 일본으로 갈 것인가? 국내에 도망자로서 남을 것인가? 무죄로 밝혀지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필요하다. 고난의 시간이 이어진다. 새로운 기회의 시간이기도 할 터다.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 지금의 상황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앞으로 2주가 나머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기로에 있다. 명작으로 끝나는가. 졸작으로 마무리되는가. 강기태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는가에 따라서. 명작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정혜는 너무 답답하다. 예전에는 순종적인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아니다. 마냥 바라만보는 사랑은 유효기간이 지났다. 무언가 역할이 필요하다. 지금은 그저 남주인공을 위한 인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그녀가 움직여야 할 때가 왔다.
어차피 변두리 3류 쇼단, 성공보다는 실패에 익숙하다. 영광보다는 좌절에 더 익숙하다. 강기태와 함께 그 시간들을 헤쳐왔다. 지금의 기회도 강기태가 만들어주었다. 빛나라 기획의 의리에서 기회를 본다. 어느 쪽이든 강기태는 빛나라 기획을 통해 돌아온다. 어떻게가 문제일 뿐. 기대가 크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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