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패션왕 - 정재혁의 열등감과 강영걸의 증오, 이가영 울다!

까칠부 2012. 4. 17. 08:16

"나하고 너하고 같아?"


그것은 절규였다. 비명이었다. 억눌리고 일그러진 그의 진심이었다. 그토록 그가 감추고 싶어했던. 


좌절이란 모르고 살았다. 절망이란 전혀 모르고 살아왔다. 모든 것이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그를 위해 허락되어 있었다. 그렇게 믿어왔다. 나를 위해 준비된 삶이라고.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믿어왔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비참해질 줄이야.


어쩌면 정재혁(이제훈 분)이 최안나(유리 분)를 사랑한 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그를 붙잡아 세운 것은 자신의 감정이 자신의 뜻에 의해서가 아닌 어머니(이혜숙 분)의 강제에 의해 끝났다는 사실일 것이다. 김실장(김병옥 분)과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떠나고 그는 또다시 좌절을 겪는다. 정재혁이 최안나에게 접근한 이유였다.


아마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최안나를 사랑한다. 최안나를 사랑하기에 그녀를 지키고자 한다. 이제는 그녀를 지킬 수 있다. 보아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내 힘으로 지켜냈다. 아버지(김일우 분)에게 보이고 싶었고, 어머니에게 보이고 싶었고, 최안나에게 과시하고 싶었다. 그것은 그의 에고였다. 집착이었고, 그가 지키려 하던 그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뒤틀린 상처입은 자존심이었다. 파열은 예고되고 있었다.


이가영(신세경 분)이 그의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가영은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강영걸(유아인 분)이 있었다. 자기와는 도저히 비교조차 되지 않는 한심한 쓰레기같은 인간이 그녀의 곁에 있었다. 이가영은 그런 강영걸을 자신보다 더 간절히 필요로 한다. 


짓눌린 자존심은 열등감이 된다. 그럼에도 자존심이기에 그같은 열등감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제까지의 강영걸에 대한 정재혁의 감정이 순수한 자신에 미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경멸이었다면, 이제는 짓눌린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비틀린 열등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애써 자신이 지금도 강영걸에 비해 우위에 있음을, 우월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확인시키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이가영은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다.


버림받는 것이 싫다. 그보다는 무시당하는 것이 싫다. 무시란 모욕이다. 더 큰 좌절이고 절망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그를 가르쳤다. 어머니도 그를 그렇게 길렀다. 남에게 무시당하는 삶을 살지 말라. 굳이 좌절과 절망을 견디려고도 하지 말라. 그는 그래서 운다. 고함지르고, 절규하고, 그리고 쓰러져 운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그는 배우고 자라왔다. 과연 정재혁의 이가영에 대한 감정은 사랑인가? 최안나에 대한 그의 감정은 사랑이었는가? 자신감넘치는 모습에 비해 아버지 정만호 앞에서 그는 겁먹은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최안나는 어떨까? 그녀는 진정 정재혁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단지 집착은 아닐까? 누적되어 온 좌절과 절망의, 그로 인해 상처받은 그녀의 자존에 대한 보상은 아니었을까? 인정받고 싶다. 존경받고 싶다. 그것을 모두로부터 확인받고 싶다. 그래서 그녀에게 정재혁은 삶의 목표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을 더욱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재혁과의 사랑을 이룰수만 있다면 이제까지의 모든 아픔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그녀는 상처입는다. 정재혁의 결혼하자는 말에도, 정재혁이 마침내 내뱉은 본심에도. 정재혁은 이가영을 필요로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안나와 결혼하고자 한다. 결혼이란 책임이다. 완결된 책임이다. 더 이상 정재혁은 최안나를 지키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최안나와 결혼하고 그리고 다시 이가영을 자신의 가까이에 둔다. 더 이상 그는 최안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떨까? 강영걸이 최안나와 엘리베이터에서 키스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분노한 까닭은 최안나에 대한 질투였을까? 강영걸에 대한 열등감이고 증오였을까?


강영걸이 정재혁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모든 것을 가졌다. 강영걸이 가지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미 정재혁은 가지고 있다. 그것이 싫다. 그것이 밉다. 열등감이다. 그의 좌절이고 절망이다. 그렇게라도 탓하고 미워해야 하는. 그는 항상 화가 나 있다. 자신에 대한 분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그렇게 정재혁에게로 향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기와 비교되는 그에게. 그 또한 억눌리고 비틀린 젊음이다. 그렇게 두 남자의 짓눌린 열등감이 서로의 자존심을 위해 부딪히게 된다. 상처가 상처를 벼리고, 절망이 절망을 갈아댄다.


그들은 서로 화해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서로란 서로가 가장 증오하는 자기 자신인 때문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화내고 싫어하는 것은 서로를 통해 보는 뒤틀린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그래서 최안나는 그런 강영걸을 찾는다. 정재혁으로부터 상처받은 자신을 달래기 위해. 강영걸로부터 상처받으며 정재혁을 연민하게 된다. 두 남자가 중심이다. 어느새 서로에게서 가장 싫은 자신을 찾아낸 그들이다. 그들의 성장기다.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현실이다.


이가영의 갑작스런 키스가 부담스럽다. 강영걸은 무척 혼란스럽다. 강영걸에게 이가영이란 가족과도 같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녀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마치 여동생으로부터 키스받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가족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여자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강영걸 또한 이가영을 여자로 느끼고 있었다. 단지 여자라기보다는 가족으로 여기고 있었다. 미인을 아내로 두고도 한참 못한 여자와 바람피는 남자의 심정일까? 이가영은 편안하지만 최안나는 설레인다. 두근거림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가영에게는 상처가 된다.


서로 미워하는 것이 싫다. 서로 미워하며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로 인해 정작 상처받는 것은 자신들이다. 정재혁이나 강영걸이나. 어째서 고작 사소한 한 가지조차 서로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하지 못하는가. 강영걸도 불쌍하고 정재혁도 불쌍하다. 하지만 그것이 다시 강영걸에게는 상처가 된다. 그의 짓눌린 열등감을 헤집는다. 어째서 사랑음 서로를 상처입혀가며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최안나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선 다음날 강영걸의 텅빈 잠자리가 이가영을 절망케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가영은 강영걸을 사랑할 것이다. 어쩌면 가장 강한 캐릭터일 것이다. 누구보다 강하다. 누구보다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더. 가장 순수한 까닭이다. 계산없이 순수한 그녀의 진심이 어떤 순간에도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지켜준다. 그래서 더 상처입는다. 그녀는 항상 혼자 운다.


참 한심하다. 그 말이 옳다. 정재혁이나 강영걸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참으로 한심한 캐릭터들이다. 남자로서도 한심하다. 뭐 이런 인간들이 있는가 싶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모든 사람들이 내재하고 있는 현실의 좌절이고 절망일 것이다. 열등감이고 증오다. 사람은 그렇게 한심하다. 현실의 사람들은 그렇게 모두가 한심하다. 그래서 싫다. 드라마는 판타지여야 한다. 우울한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를 보고자 한다.


지나치게 디테일하다. 꼼꼼하게 입체적이다. 그래서 전혀 멋지지 않다. 멀리서 보면 그토록 아름다운데 가까이서 보면 온통 쓰레기에 낙서 천지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고자 하는 것은 쓰레기도 낙서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고자 하는 그 꿋꿋함이 아름답다. 좋은 이유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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